지난 23일을 끝으로 리그오브레전드 클럽 마스터즈가 막을 내렸는데요. 한 팀의 이름으로 2개 팀을 꾸리는 팀들의 구성원을 하나로 모아 출전하는 대회인 클럽 마스터즈는 열리기 전만 해도 단순한 이벤트전 성격을 띌 것이라 예상했지만 대부분의 경기가 40분이 넘어갈 정도로 상당히 치열했습니다.
2주 간에 걸친 짧은 대회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승부들이 나왔고 상대적으로 약세로 평가됐던 팀 OP와 제닉스 스톰이 연합한 제닉스 유나이티드(이하 제닉스), MVP가 결승에 오르는 등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죠.
이번 롤백에서 다룰 경기는 제닉스 유나이티드와 CJ 엔투스 프로스트의 4강 5세트 경기입니다. 대부분의 팬들은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는 CJ가 무난하게 결승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CJ가 1, 2세트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팬들의 예상이 들어맞는 듯 했지만 3세트부터 제닉스가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했죠. 제닉스는 내리 두 세트를 따내고 극적으로 승부를 5세트까지 연장시킨 뒤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는데요.
제닉스는 5세트에서 18분23초만에 넥서스를 파괴하며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그것도 블라인드 모드 100% 승률을 자랑하던 프로스트 멤버들을 상대로 말이죠. 프로스트의 블라인드 모드 무패 행진은 지난 2012년 스프링 리그 4강에서 제닉스 스톰과의 5세트 승리로 시작됐는데요. 블라인드 모드에서 제닉스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프로스트는 이후 해당 모드로 경기를 치를 때 마다 절대 지지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프로스트의 블라인드 모드 6연승의 제물이 됐던 제닉스는 자신들의 손으로 프로스트의 연승을 종결시켰죠.
제닉스의 완벽한 팀워크가 빛났던 CJ 프로스트와의 경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볼리베어+신지드? 호떡 조합!
제닉스는 프로스트를 맞아 신지드, 볼리베어, 아리, 트리스타나, 알리스타 조합을 선보였습니다. 신지드와 볼리베어는 각각 상대를 등 뒤로 넘겨버리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 조합을 지켜본 성승헌 캐스터는 '뒤집는다'의 의미로 호떡 조합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죠.
신지드야 각 대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챔피언이지만 볼리베어의 등장은 의외였습니다. 대회에서 좀처럼 꺼내기 힘든 챔피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즌3 들어 예전에는 쓰이지 않았던 레넥톤, 신 짜오가 활발히 등장하는 등 재조명을 받기 시작하는 챔피언들이 있는데요. 볼리베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최근 많은 선수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볼리베어는 지난 '롤드컵' 우승팀인 TPA의 형제팀, TPS의 정글러 '오리얼' 초우춘안이 선택해 SWL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겜빗 게이밍의 '다이아몬드프록스' 다닐 레셰트니코프 역시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볼리베어는 초반에 상당히 강력한 라인 습격력을 자랑하는데요. 이동 속도 증가와 공격시 해당 대상을 등 뒤로 넘겨버리는 천둥 몰아치기와 상대에게 최대 50%까지 둔화 효과를 부여하는 우렁찬 포효 등 강력한 군중제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 체력이 30% 이하가 되면 최대 체력의 30%를 6초에 걸쳐 회복시켜주는 패시브 스킬 덕분에 다이브에도 용이합니다.
제닉스는 신지드와 볼리베어의 넘기기 스킬에 아리의 매혹 콤보를 적절히 활용하며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7분경 '데이드림' 강경민의 볼리베어는 '매니리즌' 김승민의 아리와 함께 중앙 라인에서 미니언 사냥에 열중하던 '래피드스타' 정민성의 라이즈를 협공했습니다. 아리가 혼령질주로 라이즈와 거리를 좁힌 뒤 매혹을 적중, 스킬을 쏟아붓는 사이 볼리베어가 천둥 몰아치기를 사용해 뒤로 넘겨버려 도주를 차단하며 킬을 올렸죠.
◇아리의 매혹이 적중하자 천둥 몰아치기로 달려드는 볼리베어.
'정언영'의 신지드 역시 김승민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홀로 포탑을 수비하고 있던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의 신 짜오를 던져넘기기, 매혹 콤보로 잡아냈는데요. 이들은 곧바로 지원온 정민성까지 예의 스킬 연계로 전사시키며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닉스의 호떡 조합은 12분경 벌어진 전투에서 진가를 발휘했는데요. 중앙 2차 타워를 공략하던 중 '샤이' 박상면의 쉔이 달려들자 신지드가 뒤로 넘겼습니다. 쉔이 점멸을 사용해 빠져나가려하자 곧바로 볼리베어가 다시 뒤로 넘겨버렸죠. 그 사이 아리와 트리스타나가 막강한 화력을 쏟아내며 킬을 만들어 냅니다. 이후 CJ는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알리스타까지 공포의 뒤집기 콤보에 쓰러지고 마는데요.
◇신지드에 의해 뒤로 내동댕이 쳐진 쉔의 운명은..?
◇점멸로 빠져나갔지만 곧바로 볼리베어에게 뒤로 던져지는 쉔입니다.
이 교전에서 뒤집기 콤보로 압승을 거둔 제닉스는 13분만에 중앙 억제기를 파괴하며 승기를 잡게 되죠.
◆ 트라우마 벗어던진 김승민의 아리
지난 2012년 스프링 리그 4강전은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는데요. 바로 CJ 프로스트(당시 MiG 프로스트)와 팀 OP(당시 제닉스 스톰)의 경기였죠. 팀 OP는 5세트에서 중앙 억제기를 파괴한 뒤 경기 내내 프로스트를 압박하며 승리하는 듯 했지만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 바로 '매니리즌' 김승민입니다.
당시 김승민의 아리는 제닉스 스톰의 중심에서 화력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후반 대규모 교전에서 쉔의 그림자돌진과 소나의 크레센도 콤보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사하며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는데요. 만약 김승민이 수은 장식띠를 샀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한동안 수은 장식띠는 김승민의 또 다른 아이디인 '영관'과 합쳐져 '영관 장식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김승민은 이번 경기에서 당시와 똑같이 아리를 골라 프로스트에게 제대로 설욕전을 펼쳤습니다. 김승민은 높은 매혹 적중률을 선보이며 매 협공마다 킬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스킬을 사용하는 모습에서 김승민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신지드가 라이즈를 넘겨주자 침착하게 매혹을 적중시키는 김승민.
또 김승민은 아리의 아이템 트리로 리치베인 빌드를 선보였습니다. 주문력과 이동속도를 향상시켜주고 스킬 시전 후 기본 공격에 추가 마법 피해를 더해주는 리치베인은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주로 쓰는 아이템인데요. 아리는 도란 반지 이후 쿨타임 감소를 위한 모렐로의 사악한 고서나 라바돈의 죽음모자가 보편적인 빌드지만 김승민은 특이하게 리치베인을 선택한 것이죠.
아리는 논타기팅 스킬을 두 개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스킬을 적중시키지 못했을 경우 딜로스가 발생하는데요. 김승민은 리치베인을 선택함으로써 딜로스를 극복했습니다.
김승민은 내셔 남작 사냥 중 주위를 서성이던 '샤이' 박상면의 쉔을 홀로 상대하며 전사 직전까지 몰고 갔는데요. 덕분에 제닉스는 바론 버프 획득 후 곧바로 교전을 열어 압승을 거두고 그대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죠. 지난 프로스트전에서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던 김승민은 이 경기에서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결정적인 역할했는데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김승민은 승리 후 홀가분한 표정으로 활짝 웃어보였습니다.
◆ 'SBS' 배지훈이 트리스타나를 고른 까닭은?
제닉스의 원거리 딜러로 나선 'SBS' 배지훈은 트리스타나를 선택했습니다. 대회에서 트리스타나를 보기란 쉽지가 않은데요. 트리스타나는 전형적인 후반 지향형 챔피언으로 초중반 라인전을 버티기가 힘듭니다. 스킬을 쏟아부어 순식간에 데미지를 입히는 그레이브즈나 이즈리얼, 미스 포츈에 비하면 주된 데미지가 평타 기반인 트리스타나의 초반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하지만 트리스타나는 13레벨을 달성했을 경우 전 챔피언을 통틀어 가장 긴 사정거리를 보유하게 되고 코어 아이템을 갖췄을 때 어떤 원거리 딜러보다 캐리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초반보다는 후반에 강한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배지훈은 이점을 노려 트리스타나를 선택했다고 하는데요. 배지훈의 예상대로 경기가 장기전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죠.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요. 배지훈은 교전마다 멀티 킬을 기록, 9킬을 쓸어담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5분경 하단 라인에서 펼쳐진 난전에서 더블 킬을 기록한 배지훈은 중앙 2차 타워 앞 교전에서 트리플 킬을 올립니다. 덕분에 14분만에 무한의 대검을 보유하게 된 배지훈은 15분경 벌어진 교전에서 또 더블 킬을 기록하죠. 신지드, 볼리베어, 알리스타가 앞에서 맷집 역할을 충실히 해준 덕분에 배지훈의 트리스타나는 마음껏 화력을 퍼부을 수 있었습니다. 잘 성장한 트리스타나는 마지막 교전에서 트리플 킬을 기록하며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마지막 교전에서 트리플 킬을 기록하며 경기를 마무리지은 트리스타나.
또 배지훈은 자신만의 트리스타나 스킬 트리를 선보였는데요. 바로 속사 선 마스터 빌드입니다. 대부분 폭발 탄환을 먼저 마스터하지만 배지훈은 트리스타나의 초중반 약한 타이밍을 없애기 위해 공격 속도를 7초 동안 최대 90%까지 증가시켜주는 속사에 먼저 포인트를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 효과는 직접 경기로 입증했죠.
비록 이번 경기에 나선 제닉스가 지난 스프링 리그에서 CJ 프로스트에게 패배했을 당시의 멤버 전원은 아니었지만 '매니리즌' 김승민, 'SBS' 배지훈, '임팩트' 정언영에게는 의미가 있었던 경기라고 생각됩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프로스트의 블라인드 모드 연승을 종결시켰기 때문이죠.
아무도 막지 못했던 프로스트의 블라인드 모드 100% 승률 행진은 결국 제닉스의 결자해지로 막을 내렸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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