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입니다.
e스포츠 경기를 지켜보다 보면 팬들의 반응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해 낼지 기자인 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요. 그 중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기'라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아슬아슬한 승부가 계속돼 경기가 끝날 때까지 누가 이기는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두고 팬들은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기'라는 말을 씁니다. 계속 경기를 보다가 긴장된 나머지 심장이 심하게 빨리 뛴다는 표현을 재미있게 풀어낸 문구입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 경기가 자주 나온다는 것은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만큼 재미있는 경기가 많다는 이야기기도 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2로 진행된 프로리그 가운데 '심장이 가장 쫄깃해진 경기'는 지난 12일 펼쳐졌던 SK텔레콤 T1 김택용과 삼성전자 이영한과의 경기였습니다. 누가 먼저 건물을 부수느냐의 초를 다투는 싸움은 시청자들, 각 팀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해설자들마저도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e스포츠를 들썩이게 만든 '택신'의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기'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 보시죠.
◆오랜만에 보여준 '택신'의 컨트롤과 견제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에서 김택용의 저그전은 '신의 경지'였습니다. 김택용의 커세어가 뜨면 모든 저그 선수들은 두려워했고 그의 질럿 움직임에 저글링과 드론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김택용을 만나는 저그들은 우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기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초반부터 탐사정으로 일벌레를 견제하고 있는 김택용
김택용이 스타1에서 저그전을 잘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커세어였습니다. 기가 막힌 커세어 컨트롤과 운영으로 저그가 절대 공중 병력을 생산하지 못하게끔 만들었고 공중을 장악한 김택용은 질럿 견제로 저그 확장 기지에 피해를 입힌 뒤 화려한 컨트롤과 중앙 힘싸움으로 승리를 따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2:군단의심장(이하 스타2)에서 김택용은 저그전에서 예전과 같은 포스를 뿜어내지 못했습니다. 스타1과 달리 스타2의 경우 컨트롤이나 견제 보다는 수비와 병력 조합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잘하는 플레이가 통하지 않는 스타2 경기 스타일 때문에 김택용은 남 모르게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영한과 경기에서 김택용은 초반부터 마치 스타1 '택신'의 플레이를 연상시키는 듯한 화려하고 섬세한 컨트롤과 견제를 선보였습니다. 초반 프로브 견제부터 시작해 불사조. 추적자 견제는 스타1에서 저그전 신으로 불린 김택용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스타1 커세어를 연상시켰던 김택용의 불사조
초반 광전사와 추적자로 이영한의 확장 기지를 괴롭히던 김택용. 여왕이 잡힐뻔한 위기에 처했고 일벌레도 빼야 했던 이영한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그는 초반 자원을 충분히 가져가야지만 프로토스 병력을 상대할 수 있었는데 김택용이 이를 방해했기 때문이죠. 김택용이 스타1에서 저그를 괴롭혔던 그 패턴으로 이영한을 상대해 피해를 준 것입니다.
또한 불사조로 공중을 장악하며 대군주를 견제하는 모습도 스타1 김택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커세어의 스플래시 대미지로 오버로드를 '찢어' 죽이던 김택용의 영원한 동반자 커세어가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죠.
스타1을 계속 지켜봤던 팬이라면 김택용의 초반 견제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김택용만의 멋진 컨트롤이 빛을 발했던 초반이었습니다.
◆스타2서 업그레이드된 김택용
공격과 견제 위주로 플레이하던 김택용은 초반 수비에 집중해야 했던 프로토스에 적응하지 못해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틈만 나면 견제하려 했던 김택용에게 코칭 스태프는 "스타2는 수비를 잘해야 잘할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김택용은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 쉽지 않았죠.
그러나 김택용은 이날 경기에서 멋진 수비를 보여주며 팬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적재 적소에 지어진 건물과 광자포를 활용한 심시티, 정확한 위치에 쏘아진 역장까지 김택용이 보여준 수비 능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대규모 소환으로 기가 막힌 수비를 보여준 김택용
게다가 저그가 자신의 연결체를 두드리게끔 유도한 뒤 곧바로 병력을 소환해 저글링을 모두 소모하게 만든 장면은 예술이었는데요. 저글링을 다수 생산해 김택용의 확장 기지를 견제하려 했던 이영한은 생산한 저글링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습니다.
수비까지 잘해냈던 김택용. 그러나 상대는 저그전 원톱으로 불리던 스타1 시절에서도 김택용의 발목을 계속 잡았던 이영한이었습니다. 이영한은 스타리그에서 김택용이 상위 라운드로 올라가지 못하게 괴롭히던 김택용의 전적이었죠. 이영한은 어떻게든 확장 기지를 이어가며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할 채비를 마치는데 성공했습니다.
◆'심장이 쫄깃해진' 엘리전
상황은 김택용에게 조금 유리했지만 이영한과 김택용의 병력이 엇갈리면서 경기는 알 수 없이 흘러갔습니다. 김택용이 전 병력을 이끌고 이영한의 확장 기지를 공격하러 간 사이 이영한은 뮤탈리스크로 김택용의 본진을 공격한 것이죠. 이제 싸움은 본진 바꾸기로 흘러갔습니다.
만약 스타2 초창기 김택용이라면 우왕좌왕하다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영한의 병력에 질질 끌려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택용은 스타2 이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었죠. 김택용은 대공 능력이 있는 병력이 별로 없다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차라리 엘리미네이트를 선택했습니다.
김택용은 상대 병력을 맞상대하기 보다는 저그 기지를 돌아가며 파괴하기 시작했고 프로브를 일찌감치 빼놓았습니다. 이영한은 미처 엘리전을 생각하지 못한 듯 일벌레를 충분히 대피시키지 못했죠.
그러나 이영한은 기동력이 좋은 뮤탈리스크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영한이 죽기를 각오하고 김택용의 공격을 무시한 채 몰래 지어놓은 김택용의 건물을 파괴한다면 이영한이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이때 김택용의 천부적인 센스가 발휘됩니다. 스타1에서 팬들이나 관계자들을 감탄으로 몰고 갔던 천제적인 '스타급 센스'가 드디어 스타2에서도 나타난 것이죠.
김택용은 이영한이 자신의 건물을 파괴하게끔 유도했습니다. 뮤탈리스크가 이영한이 건설해 놓은 가스를 지키지 않고 김택용의 건물을 깨러 간 사이 김택용은 거신을 몰래 숨겨 이영한의 가스가 건설된 곳으로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게 했습니다.
◇'심장이 쫄깃한' 엘리전을 펼친 김택용과 이영한
어떤 건물이 먼저 파괴되느냐의 싸움이 펼쳐졌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체력이 연결체에 비해 훨씬 약한 가스가 거신에 의해 먼저 파괴됐고 김택용은 '심장이 쫄깃해 지는 경기'로 엘리전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때 김택용이 연결체를 지키면서 시간을 끌었다면 이영한이 유리해졌을지도 모릅니다. 김택용은 대공능력 유닛이 별로 없었고 마음 먹고 이영한이 뮤탈리스크로 김택용의 연결체를 공격했다면 승자는 이영한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택용은 과감하게 상대 뮤탈리스크를 유인한 뒤 '묻지마 공격'으로 아슬아슬하게 이영한의 건물을 파괴했습니다. 자칫 실패할 수도 있었던 모험으로 짜릿한 승리를 따낸 것입니다.
김택용의 별명은 '혁명가'입니다. 그때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를 이겨 붙은 별명이었지만 나중에는 저그전 트렌드를 만들고 세상을 바꿔 놓는 혁신적인 플레이로 '혁명가'라는 별명을 더욱 빛나게 했죠. 이영한과의 짜릿한 엘리전을 계기로 김택용이 앞으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기'를 자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