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가슴이 벅찬 기분으로 핀포인트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 경기를 지켜보며 단연 최고의 경기로 꼽힐만한 멋진 대결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프로토스와 테란의 최후 전쟁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최고의 게임이었던 STX 소울 이신형과 웅진 스타즈 김유진과의 경기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엣 어떤 명경기가 나오고 '심장이 쫄깃한' 엘리전이 펼쳐져도 소소한 컨트롤과 유닛 하나, 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는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를 봤을 때의 짜릿한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9일 펼쳐진 WCS 시즌1 파이널 결승전 4세트 경기인 이신형과 김유진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경기 도중에 진화하는 괴물 이신형의 모습, 생전 처음 보는 전략을 들고 나와 이신형의 천하통일을 막으려는 김유진의 지략 그리고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를 압도하는 영화 같은 전투 장면은 스타크래프트2로 전환되며 돌아섰던 팬들을 다시 e스포츠로 불러 들이는데 손색이 없는 경기였습니다.
테란과 프로토스 최후의 전쟁과도 같았던 스타크래프트2 최고의 명경기 이신형과 김유진의 경기, 지금부터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전략으로 신을 당황시키다
스타크래프트2도 전작인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공식화된 빌드나 유닛 조합이 있습니다. 테란이 바이오닉 전략을 사용할 때는 의료선이 필수고 프로토스가 거신을 생산하면 저그는 타락귀로 대응해야 하는 등 정형화된 공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폭풍함을 생산한 김유진(위)과 바이킹으로 맞상대한 이신형(아래). 사진=곰TV 화면 캡처.
그러나 예측한 대로만 경기가 흘러간다면 이 또한 재미가 없겠죠. 김유진은 '신'으로 승격하기 일보 직전에 놓인 이신형을 상대로 폭풍함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기존 선수들이 사용한 전략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폭풍함을 사용했습니다.
그동안 프로토스들은 거신과 함께 폭풍함을 사용했습니다.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연사력이 워낙 떨어지기 때문에 거신의 보호 없이는 폭풍함이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김유진은 거신을 생산하지 않고 폭풍함과 고위기사를 생산해 새로운 조합으로 이신형을 상대했습니다.
이미 세트 스코어 3대0으로 앞서가며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이신형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풍함과 거신을 조합한 병력을 상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일주일 전 WCS 시즌1 코리아 결승전에서 이신형은 3대0으로 앞서다가 김유진과 같은 팀에 속한 김민철에게 4대3으로 역전패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풍함을 바이킹으로 맞상대했지만 고위기사의 사이오닉 폭풍 때문에 전투에서 패한 이신형. 사진=곰TV 화면 캡처.
이신형은 폭풍함을 상대하기 위해 바이킹을 다수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좋은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바이팅은 폭풍함에게 약한 상성을 지니고 있었고 사거리까지 짧아 폭풍함에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밑에서 고위기사의 사이오닉 폭풍까지 지원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신형은 점점 주도권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안에서도 진화하는 무서운 선수
이신형이 만약 일주일 전 리버스 스윕으로 패하지 않았다면 4세트에서 바이킹을 모두 잃고 항복을 선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3대0으로 이기다 3대4로 역전패 당한 경험이 이신형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4세트에서 패하면 진다는 생각으로 이신형은 어떻게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신형은 경기 도중 폭풍함과 고위기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깨달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백 경기를 넘게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선수도 있지만 이신형은 스타크래프트2 최고의 선수답게 몇 분 안 되는 경기 안에서 해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신형은 바이킹을 모두 잃은 뒤 미친 듯이 해병과 불곰 등 바이오닉 병력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으로 고위기사와 사정거리가 긴 폭풍함을 상대로 바이오닉을 주병력으로 삼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처였습니다.
그러나 이신형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곰TV 안준영 해설 위원에 따르면 폭풍함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폭풍함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네요. 폭풍함이 사정 거리는 길지만 연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수의 지상 병력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폭풍함이 해병 하나를 죽이는 시간에 해병 한 부대로 폭풍함을 잡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 해설 위원은 “연사력이 떨어지는 폭풍함은 다수 지상 병력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이라고 경기 도중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신형은 이를 알고 있지 못한 듯 폭풍함을 보자마자 바이킹을 다수 생산했고 전문가들은 이신형이 이길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는 유닛 상성이 있기 때문에 한 유닛을 이길 수 있는 조합을 갖추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김유진의 승리가 확정된 듯 보였습니다.
곰TV를 시청하고 있던 팬들은 안준영 해설 위원 덕에 해법을 알고 있었지만 다르게 플레이하는 이신형을 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죠. 아마 이신형 팬이라면 게임 안으로 들어가 귓속말로라도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신형이 갑자기 해병과 불곰 등 바이오닉 병력을 미친 듯이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스로 해법을 깨달은 듯 이신형은 이를 악 물고 해병을 다수 모으며 고위기사를 줄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고위기사가 없는 폭풍함은 무서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 보였습니다.
◇폭풍함을 해병으로 제압하는 이신형. 사진=곰TV 화면 캡처.
이신형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경기를 진행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무서운 괴물 이신형의 플레이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김유진이었습니다. 폭풍함을 다수 보유해 겉으로 보기엔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김유진이었지만 다수의 해병 병력을 이끌고 폭풍함을 쫓아 다니는 이신형의 플레이에 움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이는 해병과 폭풍함의 대결. 하지만 결국 최후 승자는 해병이었습니다. 결국 최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이 발로 뛰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모든 종족을 격침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것입니다.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경기 안에서 진화하며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이신형의 플레이에 감탄했습니다. 당황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내고 본능적으로 플레이하는 이신형에게 팬들은 드디어 '최고의 선수'라는 칭호를 붙여줬습니다.
이제는 '신'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STX 소울 이신형.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모습으로 새로운 e스포츠 주역이 되길 바라 봅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