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열린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 프로리그 12-13 시즌 준플레이오프 STX 소울과 SK텔레콤 T1의 경기를 보셨나요? STX 이신형이 왜 스타2 최고의 선수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죠. 이신형이 두 번의 경기에서 4개의 세트에 출전해 3승1패를 기록했고 그 가운데 두 번의 승리가 에이스 결정전이었기에 STX가 SK텔레콤을 제압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이신형이 주인공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인 전략을 펼친 SK텔레콤 정명훈의 활약에 초점을 맞춰봤습니다. 스타2라는 종목으로 치러진 포스트 시즌이었지만 정명훈이 펼친 경기에서는 왠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의 향수가 느껴졌거든요. 스타1 시절에는 자주 볼 수 있었던 전략이지만 스타2에 들어와서는 사장되어 버린 전략을 들고 나왔던 정명훈은 스타2를 관전하는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그 중에서도 1차전 4세트 '아킬론황무지'에서 STX 김도우를 상대로 SK텔레콤 정명훈이 선을 보인 공성전차와 해병 조이기 전략을 분석해보겠습니다.
◆왠 공성전차?
스타2에서 프로토스와 테란전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가장 먼저 공격과 수비의 역할이 변했지요. 스타1 시절 프로토스는 테란을 맞아 초반부터 압박을 시도하고 앞마당에 확장 기지도 먼저 가져갔습니다. 자원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병력을 양산, 테란의 조이기를 한 번에 뚫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셔틀을 활용한 견제나 다크 템플러를 통한 피해를 입힌다면 프로토스가 압승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테란은 벌처 견제를 통해 프로토스의 확장이 늘어나는 것을 저지하고 공격력이 충실히 업그레이드된 메카닉 병력을 구비하면서 차분히 전진하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스타2에 들어와서는 테란이 오히려 공격을 주도합니다. 테란은 병영(배럭)에서 생산된 해병(머린)과 불곰을 갖추고 전투자극제(스팀팩)를 개발하고 불곰의 충격탄을 업그레이드한 뒤에 의료선(드롭십+메딕)을 동반해 치고 나가는 방식을 택합니다. 가격이 싸면서도 의료선의 치료를 받기 때문에 효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성전차나 화염차, 토르 등 메카닉을 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군수공장(팩토리)을 건설하는 이유는 우주공항(스타포트)로 넘어가는 테크트리를 구축해야 하기에 짓는다는 표현도 일리가 있습니다.
정명훈은 김도우와의 경기에서 군수공장에 기술실을 부착했습니다. 공성전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건물 구조였죠. 정명훈의 패턴을 본 해설자들은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스타2에서 초반에 굳이 공성전차를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정명훈은 굳이 공성전차를 뽑았고 앞마당 수비에 대동합니다. 이를 김도우도 확인합니다. 김도우도 해설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공성전차를 왜 뽑았을까? 도대체 왜?
◆추억의 머린-탱크 조이기
정명훈은 스타2를 스타2처럼 플레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플레이한다면 김도우가 너무도 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스타2에서 일반적으로 테란이 프로토스를 상대하듯 병영을 대거 늘려서 해병과 불곰을 조합하고 공학연구소(엔지니어링 베이)에서 업그레이드를 돌려 타이밍을 잡는 플레이를 한다면 상대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지요. 스타1에서 테란 선수들이 너무나 자주했던 바카닉 전략의 변형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해병과 공성전차를 조합한 정명훈은 의료선이 생산되자 건설로봇(SCV)을 대동해서 치고 나갑니다. 김도우가 예언자로 자신의 앞마당 일꾼을 잡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본진에 수비할 해병 몇 기만 남겨두고 대거 내려갔습니다.
정명훈이 자리를 잡은 곳은 김도우의 앞마당 아래쪽 지역입니다. 프로토스의 앞마당이 언덕 위에 있기에 3시 지역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요. 정명훈은 건설로봇을 동원해 미사일포탑(터렛)과 벙커를 지으면서 공격 포지션을 잡았습니다. 전차를 공성모드(시즈모드)해 놓고 해병을 미사일포탑 주위에 배치한 정명훈은 벙커까지 추가하며 옹성 구축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원군이 의료선을 타고 오지요. 공성전차 한 기와 해병 2기를 태운 의료선이 도달하면서 옹성은 철옹성으로 변합니다.
언덕 아래에 배치된 공성전차 2기가 포화를 뿜기 시작했습니다. 정명훈이 의료선으로 시야를 확보하자 광물(미네랄)을 채취하고 있던 김도우의 탐사정(프로브)이 한 기씩 터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타2에서 테란을 상대하면서 거의 들어본 적 없던 공성전차의 포격 소리를 들은 김도우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저 병력을 잡아내지?
김도우는 모아 놓은 병력을 이끌고 한꺼번에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지요. 불사조의 중력자광선으로 공성전차 한 기를 들어 올린 것은 매우 좋았습니다. 포격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정명훈이 더 현명했습니다. 중력자광선으로 공성전차를 들어올린 불사조를 일점사하면서 공성전차를 곧바로 땅에 내려 놓았습니다. 벙커가 건설됐고 해병이 공격하는 상황에서 공성전차까지 공격력을 더하니 추적자가 주력이었던 김도우는 테란의 조이기 라인을 뚫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김도우의 1차 돌파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뒤 사실상 승부가 났습니다. 정명훈은 3시 지역 조이기 라인에 벙커를 하나 더 지었고 자신의 앞마당으로 이어지는 언덕 위에도 벙커를 지었습니다. 우주관문(스타게이트)을 먼저 지으면서 로봇공학시설(로보틱스) 확보가 늦은 김도우는 공성전차의 천적인 불멸자를 확보할 시점을 놓쳤습니다.
◆전략은 돌고 돈다
스타1에서 쓰였던 전략이 스타2에서 통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새로운 유닛이 추가되고 기존 유닛들과의 상성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전략이 전개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스타2에 적합하게 재구성이 된다면 통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정명훈이 제시했습니다.
정명훈의 김도우에게 쓴 전략은 스타1 때 '로스트템플'에서 자주 사용하던 언덕 드롭십과 많이 닮았습니다. '아킬론황무지'라는 맵에 언덕이 딱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명훈은 벙커를 건설하면서 언덕 효과를 냈습니다. 두 번째 확장 기지의 광물 위치 근처에 벙커를 지으면서 프로토스의 유닛들이 포위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입구를 좁혔지요. 그리고 공성모드로 전차를 배치한 뒤 의료선으로 시야를 확보하면서 광물 채취를 저지했습니다.
이 전략이 가능해진 이유는 바로 공성모드 개발 비용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블리자드는 스타2:군단의 심장으로 버전을 바꾸면서 공성모드를 연구, 개발하는 비용을 없애 버렸습니다. 광물 수급은 쉽지만 개스의 수급에 따라 전략의 타이밍이 달라지는 스타크래프트의 특성상 공성모드 개발 비용의 삭제는 공성전차의 활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스타1에서 사용되던 전략들이 스타2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과거의 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추억을 되살리듯 말이죠.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