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입니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12-13 시즌의 포스트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8월3일 열리는 결승전만 남겨 놓은 상황인데요. STX 소울의 상승세가 무척이나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프로리그를 좌지우지했던 SK텔레콤 T1을 준플레이오프에서, KT 롤스터를 플레이오프에서 2대0으로 모두 제압하면서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이번 '핀포인트'에서는 STX 소울을 결승전에 올려 놓는 견인차 역할을 했던 프로토스 변현제의 플레이오프 1차전 5세트 김대엽과의 경기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날빌'의 귀재 변현제
변현제라는 이름은 아직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익숙지 않습니다. 데뷔한 지 4년차인 변현제이지만 주전으로 기용된 지는 2년이 조금 넘습니다.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로 진행됐던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에 몇 차례 출전했고 스타1과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로 병행해서 진행된 시즌2부터 본격적으로 기용됐습니다.
당시 변현제는 스타1 대회에서 특이한 전략을 여러 차례 선보이면서 눈에 띄었는데요. 특히 테란 임진묵과의 경기에서 상대방의 본진에 파일런과 게이트웨이를 건설하며 몰래 공격을 시도했고 실드 배터리까지 지으면서 질럿의 생존력을 끌어 올리며 승리한 경기는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해설을 맡은 박태민 해설위원은 "사랑의 배터리죠"라며 변현제의 전략적인 플레이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변현제는 날카로운 빌드(상대방이 전략을 펼치기도 전에 먼저 치고 들어가서 승부를 내는 초반 전략을 뜻함. 스타크래프트 팬들 사이에서 '날빌'이라고 줄여서 부름)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특히 같은 종족 싸움에서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면서 초반 전략의 대가라고 평가를 얻었지요.
그렇지만 스타2에 들어와서는 변현제의 전략성이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았습니다. 공식전에서 사용할 만한 전략의 다양화가 완성되지 않았고 변현제 또한 스타2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지요. '날빌'의 귀재라는 칭호는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예리한 칼을 뽑아들다
김대엽과의 플레이오프 5세트에서 변현제는 스타1에서 보여줬던 날빌 카드를 다시 한 번 꺼내듭니다. 이전에 열린 SK텔레콤 T1과의 대결에서도 프로토스만을 상대했던 변현제는 '날빌'로 승부수를 띄웠다가 1승1패를 기록한 바 있지요. KT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변현제는 자신의 색깔을 살리는 플레이를 선택했습니다.
2인용 맵인 '아킬론황무지'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변현제는 본진 광물 지역 뒤쪽에 수정탑을 하나 건설합니다. 그리고 광전사를 소환해서 입구를 막으려 하지요. 2인용 맵이기 때문에 김대엽의 정찰이 늦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변현제의 생각과 달리 김대엽은 일찌감치 탐사정을 보냈고 광전사가 입구를 막기 전에 본진에 들어왔습니다.
변현제는 '아차'했습니다. 광물 뒤쪽으로 김대엽의 탐사정이 이동한다면 분명히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고 전략이 탄로날 수 있기에 광전사로 탐사정을 공격하면서 잡아내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김대엽의 탐사정은 살아 나가기 바빴고 광물 뒤쪽에 지어지던 황혼의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변현제의 전략은 단순했습니다. 황혼의회를 지은 뒤에 건설되는 암흑성소를 곧바로 이어가면서 암흑기사의 생산 타이밍을 앞당기는 전략이었죠. 스타1에서 패스트 다크 템플러라고 불렀던 전략입니다.
스타2에 들어와서는 황혼의회(시타델오브아둔)을 지은 뒤 테크트리가 두 개로 갈라집니다. 기사단기록보관소(템플러아카이브)와 암흑성소로 구분되며 암흑성소를 지어야만 암흑기사(다크 템플러)가 생산됩니다. 변현제는 암흑성소를 곧바로 지으면서 김대엽을 흔들려고 했던 것이지요.
◆전진 수정탑 '낚시'
스타2에 들어와서 프로토스가 크게 달라진 점은 본진에 생산 건물이 있더라도 맵의 아무 곳이나 병력을 소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문(게이트웨이)이 차원관문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고 소환하고 싶은 위치에 수정탑(파일런)이 건설되어 있어야 합니다.
변현제는 암흑기사의 생산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차원관문으로 변환시켰고 탐사정 한 기를 9시 지역으로 내보내 수정탑을 건설합니다. 탐사정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김대엽의 추적자와 조우할 뻔하지만 김대엽이 확인하지 못하면서 변현제는 9시에 안전하게 수정탑을 건설했습니다.
이 수정탑이 승부를 결정짓는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수정탑을 건설한 뒤 변현제는 탐사정을 김대엽의 본진 쪽으로 보내는데요. 김대엽이 이를 추적자로 잡아낸 이후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탐사정이 9시에서 왔다면 분명히 전진해서 수정탑을 지었을 것이라는 느낌이지요.
김대엽은 이 수정탑을 사전에 파괴하기 위해 추적자 3기를 보냅니다. 수정탑이 파괴되기 직전 변현제는 2기의 암흑기사를 성공적으로 소환하게 되지요. 김대엽이 추적자 3기로 수정탑을 깨뜨리긴 했지만 암흑기사 2기가 전진 배치되면서 변수를 만듭니다.
◆암흑기사 합체 페이크
변현제의 암흑기사가 소환된 것을 확인한 이후 김대엽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암흑기사가 자신의 본진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을 것입니다. 아직 로봇공학시설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토스는 자신의 입구를 역장으로 막으면서 암흑기사의 난입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파수기가 본진에 생산되어 있었지만 혹시나 모를 실수에 대비해 김대엽은 파수기를 추가 생산했습니다. 그러면서 변현제의 암흑기사가 자신의 본진으로 들어오는 것을 일단 막았습니다.
입구가 역장으로 막혀 있을 때 프로토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역장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거나 집정관을 만들어 치고 올라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거신으로도 돌파가 가능하지만 로봇공학시설을 건설하지 않은 변현제의 테크트리상 제외했습니다).
한숨 돌린 김대엽은 2차 대응에 들어갑니다. 변현제가 병력을 추가해서 돌파하는 것을 막아야 했지요. 추적자 3기로 9시 수정탑을 파괴한 김대엽은 변현제의 추가 병력의 진군을 막으려 했습니다. 변현제가 암흑기사를 집정관으로 합체했을 것이라 예상하고 추적자로 치고 빠지는 공격을 한다면 병력 충원을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변현제는 암흑기사 2기를 합체하지 않고 대기시켰습니다. 김대엽의 추적자 공격에 대비해서 남겨 둔 것이지요. 마음을 놓고 공격하던 김대엽은 암흑기사의 칼날 공격에 큰 피해를 입고 3기의 추적자를 모두 잃었습니다. 점멸 업그레이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큰 병력 손실을 본 것이지요.
추적자 3기를 잡아낸 변현제는 암흑기사 2기를 집정관으로 합체시키고 공격을 시도합니다. 김대엽이 역장으로 입구를 막으려 했지만 집정관으로 밟아 파괴하면서 가뿐히 입구를 돌파한 변현제는 집정관을 맷집 삼아 추적자와 광전사, 파수기를 대동해 경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만약?
김대엽이 추적자 3기를 살려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을까요? 가정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점멸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 추적자 3기는 언덕을 넘어 무사히 본진으로 살아 들어왔겠지요. 변현제가 집정관을 앞세워 공격을 시도하더라도 좁은 길을 올라와야 했기에 추적자를 넓게 펼쳐놓았다면 화력이 꽤 강했을 것입니다.
추적자 3기가 잡히지 않았다면 언덕 위를 지키는 김대엽의 병력은 추적자 5기와 파수기 3기였을 것이고 변현제의 집정관 1기, 추적자 3기, 광전사 3기, 파수기 2기 분량의 병력을 언덕 위에서 저지하면서 병력 추가를 기다릴 수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변현제가 집정관을 먼저 만들지 않고 암흑기사인 상태로 김대엽의 추적자 3기를 잡아내는 판단을 해내면서 김대엽의 방어진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변현제가 순간의 판단으로 던진 한 수가 승리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된 것이지요.
이 판단은 변현제를 1차전 MVP로 만들었고 탄력을 받은 변현제는 2차전에서도 주성욱에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플레이오프의 MVP가 됐습니다. MVP를 타려면 이 정도의 판단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