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한국시각)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에서는 스타크래프트2로 진행되는 세계 최대의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WCS)의 글로벌 파이널이 열렸습니다. 한국 선수가 15명이나 참가하면서 한국인들의 잔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WCS 글로벌 파이널의 결승전에는 웅진 스타즈 소속 프로토스인 김유진과 EG 소속 저그 이제동이 출전했습니다.
이름값으로 봤을 때나 스타2에서 이룬 성적, 그리고 북미 지역에서 열리는 글로벌 파이널이었기에 팬들의 응원은 이제동에게 쏠렸습니다. 2012년 EG로 임대된 이후 해외 대회에 주력하던 이제동은 무려 4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제 한 번 우승할 때가 됐다'라는 판단이 많았고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부터 쌓은 커리어를 우선시하면서 이제동이 스타1과 스타2를 동시에 제패하는 첫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원하는 팬들이 많았지요.
또 이제동이 WCS 내내 아메리카 지역에서 뛰었고 상위 랭크를 유지하면서 결승까지 올라왔기에 블리즈컨 현장을 찾은 팬들은 이제동의 아이디인 'JD'를 연호하면서 우승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동의 결승 상대인 김유진은 상상 외로 강했습니다. 지난 시즌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12-13 시즌 페넌트 레이스 동안 30승 이상을 기록하면서 다승 톱5 안에 든 선수였고 이번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도 송현덕, 최성훈, 조성주 등 지역 파이널 우승자만 꺾고 올라온 패기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스타2 팬들이라면 다들 아시다시피 김유진이 이제동을 4대1로 제압하고 최종 우승자가 됐습니다.
김유진이 이제동을 꺾을 수 있었던 발판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광자포 러시였는데요. 초반부터 광자포 러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이제동의 부화장이 늘어나는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김유진이 선택한 광자포 러시의 위력을 '핀포인트'를 통해 만나 보시지요.
◆2단 광자포
결승전 1세트에서 김유진은 광자포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광자포를 짓기 위해서는 제련소가 필요한데요. 자신의 앞마당 지역에 수정탑을 건설한 이후 김유진은 곧바로 제련소를 지었습니다. 제련소를 건설하기 이전부터 김유진은 광자포 전략을 시도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련소를 짓기 이전에 탐사정 한 기가 이제동의 앞마당 아래에 위치하면서 수정탑을 지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김유진의 전략은 이제동의 부화장이 늘어나는 것을 한 번에 막아내는 것이었죠. 1세트 맵이 '아킬론황무지'였는데요. 이 전장은 저그가 확장을 늘리기 수월한 맵입니다. 본진 아래 지역에 앞마당 확장을 가져갈 수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두 번째 확장 기지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초반에 견제하지 않는다면 저그가 본진까지 포함해 3개의 부화장을 가져가면서 일벌레를 늘린 뒤 파괴 가능한 바위까지 파괴하면서 4개의 광물과 8개의 개스를 수급할 수 있는 맵입니다.
김유진의 생각은 확실했습니다. 3층 구도로 되어 있는 맵에서 저그의 본진인 3층을 제외한 2층과 1층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광자포를 지어 이제동을 흔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지요. 그래서 김유진은 이제동의 앞마당이 아니라 두 번째 확장 기지 지역에 수정탑과 광자포를 지었습니다. 완성될 즈음에는 앞마당 쪽 언덕으로 탐사정을 보내 이어짓기를 성공시켰습니다.
이와 같은 광자포 배치는 이제동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앞마당 지역에만 광자포가 있었다면 이제동은 여왕과 저글링으로 일점사를 통해 파괴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덕 아래까지 광자포가 있다 보니 감히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그 결과 이제동은 앞마당 부화장을 최소하면서 자원을 낭비했습니다.
김유진 또한 광자포 하나를 취소했기에 자원이 날아갔지만 이제동이 본 피해보다는 훨씬 적었습니다. 이제동은 앞마당에 부화장을 펼치지 못했고 파괴 가능한 바위 쪽으로 일벌레를 이동시킨 뒤에야 첫 확장 기지를 건설했으니까요.
미니맵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제동의 첫 부화장과 김유진의 연결체가 건설되는 시점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프로토스가 자원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광자포와 수정탑 소환의 조화
1세트가 쉽게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광자포 러시로 인해 부화장을 펼치지 못했다고 해서 초반에 무너질 이제동이었다면 결승전까지 올라오지 못했겠지요. 이제동은 부화장 대신 테크트리 건물을 올렸고 바퀴와 히드라리스크로 체제를 갖춘 뒤 광자포 라인을 무너뜨리고 4개의 확장을 돌리는 체제를 가져갔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자원을 통해 울트라리스크와 살모사 조합을 이뤄냈지만 김유진 또한 큰 견제를 당하지 않은 탓에 힘싸움에서 위력을 발휘하면서 이제동을 제압했습니다.
2세트 '외로운파수꾼' 맵에서도 김유진은 광자포 러시를 시도했습니다. 이 맵에는 언덕 지역을 활용할 자리가 없었지만 김유진은 지능적인 플레이를 통해 이제동을 흔들었습니다.
김유진은 광물 지역으로 탐사정을 밀어 넣었고 광물 사이에 수정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입구를 좁힐 용도로 또 다시 수정탑을 지었지요. 탐사정의 이동이 이제동의 대군주 시야에 들어갔기에 초반부터 일벌레를 대거 동원해 수정탑이나 탐사정을 공격할 수 있기에 사전에 입구를 좁혀 놓은 것입니다.
김유진은 먼저 지은 수정탑이 완성되자 광자포를 지으면서 나중에 짓기 시작한 수정탑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뒤쪽에 광자포를 하나 더 지었지요. 탐사정으로는 이제동의 일벌레를 공격하는 듯한 액션을 취한 김유진은 이제동의 일벌레 2기가 안쪽의 광자포를 공격하기 위해 들어가자 수정탑을 지어 가뒀습니다. 정확한 시점에 완성된 김유진의 광자포는 갇혀버린 일벌레 두 기를 잡아냈고 추가로 동원된 일벌레 9기는 퇴각해야 했습니다.
광자포로 위력 시위를 펼친 김유진은 이제동이 일벌레를 후퇴시키고 앞마당에서 지어지고 있던 부화장마저 파괴하자 광자포와 수정탑을 취소시켰습니다. 대신 광물 앞쪽에 지어지고 있던 광자포는 유지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얼마 뒤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동이 저글링으로 수정탑 또는 광자포를 깨뜨리려 하자 김유진은 수정탑 근처에 광전사를 소환하면서 막아냈습니다. 저글링과 여왕으로 광자포 라인을 무너뜨리려던 이제동은 병력을 빼야 했고 광자포 러시는 공격 베이스의 역할까지도 해냈습니다. 이제동은 앞마당을 포기하고 9시와 6시에 부화장을 폈지만 이 곳은 이미 허리를 잃은 상황이기에 견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죠.
◆프로토스에게 광자포란?
1, 2세트에서 김유진의 선택은 냉철하면서도 정확했습니다. 3세트에 몰래 확장 전략을 시도하다가 이제동의 물량 공세에 의해 한 세트를 내주기도 했지만 4, 5세트는 광자포 러시를 염두에 둔 이제동이 확장 기지 늘리는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 한 트라우마를 남겼으니까요.
프로토스에게 광자포란 무엇일까요? 방어의 수단이자 디텍팅의 수단이긴 하지만 스타1보다는 역할이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스타1 시절에는 저그와의 장기전에서 광자포를 수도 없이 지으면서 확장 기지를 보호하는 '강민식 꽃밭 토스' 전략이 유행했지만 스타2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수정탑 때문인데요. 광자포로 1, 2초만 시간을 벌면 차원관문을 통해 수정탑 주위에 병력을 소환할 수 있기에 굳이 광자포를 많이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후반에 활용도가 떨어진 방어건물을 김유진은 초반 공격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수정탑을 지어야 하고 광자포를 소환하려면 광물이 250이나 듭니다. 초반에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비용이지요. 그렇지만 스타2는 워낙 광물 획득 시간이 짧기 때문에-다른 종족들도 같은 시간에 같은 자원을 얻습니다만-위치만 잘 잡는다면 광자포 전략이 통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일부 선수들은 프로토스의 초반 광자포 러시를 스타1 시절 테란의 벙커링에 비유합니다. 스타1 시절 테란이 저그를 상대할 때 벙커링은 필수 요소가 됐습니다. 저그의 앞마당 지역에 벙커를 지으면서 드론을 수비에 동원하도록 강제하거나 저글링을 뽑으라고 강요하면서 자원 낭비를 시키는 것이 스타1에서 전진 벙커 전략의 핵심이었는데요. 스타2에서 프로토스가 저그를 상대할 때 광자포 러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그가 무난히 확장 기지를 가져가고 일벌레를 늘리기 시작하면 프로토스는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거신과 추적자, 고위기사를 조합한 조합을 통해 밀고 나올 수도 있지만 저그가 애벌레 펌핑을 통해 병력 순환을 시키기 시작하면 자원 피해를 주지 못하고 병력 바꾸기만 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전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진 광자포 러시입니다. 1세트처럼 확장 기지의 건설 타이밍을 줄인다든지, 2세트처럼 광자포 2개가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는다면 저그는 연결 고리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초반부터 저그의 힘을 빼버린다면 프로토스가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겠지요? 김유진이 이제동의 숨통을 끊으면서 시작했기에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