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열린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 GSL 시즌1 코드A J조 경기에서는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경기가 등장했습니다. KT 롤스터 'Stats' 김대엽과 아주부 'SuperNova' 김영진의 승자조 경기에서 무려 두 번이나 우주모함이 등장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죠.
우주모함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 '캐리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지금도 영어 이름으로는 캐리어이지만 스타2에 와서 한글화가 진행되면서 우주모함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스타1 때의 캐리어와 스타2의 우주모함은 입지가 확실히 다릅니다. 스타1에서 캐리어는 아비터와 함께 프로토스의 최종 테크트리 유닛으로 활용도가 대단했습니다. 특히 테란을 상대할 때 캐리어는 없어서는 안될 유닛이었죠. 테란의 탱크와 벌처, 골리앗 조합을 상대로 캐리어로 치고 빠지는 컨트롤을 하면서 조이기 라인을 푸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그렇지만 스타2에서 우주모함은 '우주쓰레기'라고 불립니다. 요격기의 체력이 워낙 보잘 것이 없고 해병이나 바이킹, 토르 등 대공 유닛들을 쉽게 모을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타2의 우주모함은 스타1의 스카우트와 함께 있으나마나한 유닛으로 동일시되고 있었죠. 군단의 심장으로 넘어오면서 프로토스는 폭풍함이라는 새로운 유닛이 추가됐고 이로 인해 우주모함의 존재는 거의 잊혀져 갔습니다.
◆우주모함 아닙니까?
23일 승자전에서 김대엽은 우주모함을 사용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10분이 다 되어가도록 김대엽은 지상 유닛을 거의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우주관문에서 예언자 한 기를 생산해 테란 김영진의 본진과 앞마당 지역을 정찰했고 불사조 한 기를 뽑아 밴시 견제를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로봇공학시설에서는 관측선과 차원분광기를 하나씩 생산했고 황혼의회를 건설한 뒤에는 점멸 개발을 끝낸 것이 전부입니다.
사실 테란과 상대할 때 프로토스는 불멸자나 거신 등 강력한 화력을 갖춘 지상군을 잔뜩 모아 놓아야 합니다. 스타1과 다르게 스타2에서는 프로토스가 수비의 종족이기 때문이지요. 테란이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기에 불안한 상황에 마음을 놓으면 안되죠. 그리고 테란이 맹공을 퍼부을 때 역장을 치면서 러시 병력을 반으로 가르고 거신으로 녹이면서 수비를 해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김대엽은 굉장히 느긋하게 플레이를 했습니다. 두 번째 확장까지도 일찌감치 가져가면서 병력 생산은 등한시하다시피 움직였죠. 그랬던 이유는 바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주모함이었죠.
지상군 생산을 거의 하지 않은 덕에 김대엽은 자원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우주관문 하나를 갖고 있던 김대엽은 함대신호소를 건설하며 우주모함을 생산할 테크트리를 확보했고 곧바로 2개의 우주관문을 추가, 양산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3개의 우주관문과 함대신호소를 본 GSL 중계진들은 장난스런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상현 캐스터 "우주관문에 이어서 함대신호소를 짓고 있고 공중을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죠."
황영재 해설 위원 "우주모함 아닙니까?"
중계진 "하하하..."
그러던 차에 김대엽이 우주관문에서 생산한 유닛이 우주모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중계석은 "어, 아, 아니 이럴수가, 우주모함이 두 기, 세 기 찍히고 있어요!"라며 깜짝 놀랐습니다. 김대엽의 우주모함은 그만큼 충격적이었죠.
◆메카닉 테란에게는 특효약
김대엽의 우주모함 작전은 중계진 뿐만 아니라 상대인 김영진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스타2 초창기부터 선수로 뛰었던 김영진이지만 실전에서 우주모함을 상대한 기억은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테란의 메카닉 전략의 핵심은 화염기갑병과 공성전차, 토르 정도입니다. 특히 프로토스와 대결할 때 테란은 지상 공격에 화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토스들이 불멸자나 거신 등 화력이 좋은 유닛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공성전차로 맞불을 놓아야 하고 광전사나 집정관 등 근거리 공격 유닛을 상대로는 화염기갑병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토르는 혹시나 모를 불사조나 차원분광기에 대한 대비책입니다.
테란이 지상군 중심의 메카닉을 운영했을 때 우주모함이 등장하면 난감해집니다. 공격 유닛의 2/3이 지상만 공격할 수 있는 병력이기에 우주모함을 두드릴 유닛이 부족해지는 것이지요. 김영진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김대엽이 노린 것도 바로 테란이 갖고 있는 대공 유닛의 부재입니다.
15분에 김영진이 병력으르 이끌고 치고 나왔을 때 구성을 보면 메카닉 테란의 약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인구수 191 중에 건설로봇은 66기입니다. 125의 공격 유닛 가운데 해병 19, 화염기갑병 14, 공성전차 5, 토르 3, 바이킹 8, 밴시 1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땅거미지뢰 2기는 본진에 배치된 것이기에 공격 유닛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해병이 많기는 하지만 거의 필요 없는 유닛이라는 점이지요. 공격력과 방어력 업그레이드가 거의 되지 않았고 전투방패도 들지 않았습니다. 메카닉 전략인만큼 무기고를 중심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으니 해병은 무의미한 유닛이었지요. 해병 19기를 제외하면 대공 능력을 갖고 있는 유닛은 바이킹 8기, 토르 3기 뿐입니다.
그렇지만 김영진의 공격은 예리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당시 김대엽의 인구수가 146이고 이 가운데 우주모함이 3이었기에 김영진은 공격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죠.
◆테란을 귀찮게 만든 추적자
김대엽은 추적자를 생산해서 모자란 시간을 벌었습니다. 우주모함을 주병력으로 삼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상군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시너지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황혼의회를 건설해서 점멸을 개발한 김대엽은 추적자를 10기 정도 뽑았고 중앙 지역에 배치했습니다. 테란이 치고 나오는 타이밍을 확인하고 여차하면 빈집 털이를 통해 이득을 챙기겠다는 것이지요.
김대엽의 계산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15분경 김영진의 주병력이 김대엽의 9시 확장기지 근처에 당도했을 때 김대엽은 추적자로 테란의 3시 확장 기지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김영진이 주병력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멈칫멈칫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김대엽은 우주모함 3기가 요격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9시 연결체를 파괴하고 앞마당으로 들이닥친 김영진은 우주모함 6기가 발사하는 48기의 요격기에 의해 병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바이킹과 토르의 충원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주모함 6기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추적자의 활약은 한 차례 더 나옵니다. 우주모함이 테란의 앞마당 지역을 들이닥칠 때 김영진은 바이킹으로 정면 대결을 선언했습니다. 김영진이 바이킹으로 우주모함을 한 기씩 일점사하면서 파괴했을 때 추적자는 점멸을 사용하며 언덕 위로 올라왔고 바이킹을 줄였습니다. 자원이 말라가던 김영진은 바이킹을 모두 잃고 항복하고 말았지요.
◆컨디션 저하가 나은 새 전략
김대엽은 경기를 마친 이후 "우주모함 전략을 한 번도 연습한 적이 없다"고 말해 취재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배틀넷에서 연습 경기를 하는 동안 테란의 메카닉 전략을 자주 만났다는 김대엽은 2개의 로봇공학시설을 건설하면서 불멸자와 거신으로 대응했다고 합니다. 김영진과의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해야 했지만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던 김대엽은 '스타1 때처럼 우주모함으로 대처하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라고 막연한 생각만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김영진과의 대결이 성사됐고 예언자, 관측선으로 병력을 확인해보니 메카닉으로 구성되어 있자 김대엽은 손에 익지 않은 우주관문 전략을 택했고 김영진을 제압했습니다.
2세트를 내주고 난 뒤 3세트에서 김대엽은 또 다시 메카닉에 대항해 우주모함 전략을 사용했는데요. 1세트보다 더 멋지게 들어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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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