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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tory] 임수라 "우연에서 운명이 된 e스포츠"

[HerStory] 임수라 "우연에서 운명이 된 e스포츠"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표현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에게 씁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고정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 가운데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기 때문이죠.

드물지만 나이를 별로 먹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산전수전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만나보게 될 바로 그녀에게 사람들은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e스포츠에 종사하는 여자 가운데 가장 많은 경험을-정확히 말하면 직업 체험을-가진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선수, 코치, 감독, 사무국에 이어 이제는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리그를 담당하는 사무관으로 자리잡기까지 어떤 사람도 그녀처럼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연히 발을 들여 놓은 e스포츠가 자신의 평생 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오늘도 그녀는 운명처럼 다가온 e스포츠와의 인연에 신기해 합니다.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협회) 사업팀에서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를 위해 발로 뛰고 있는 그녀는 바로 임수라 사원입니다. 아마도 얼굴을 보면 사람들이 "아, 이 선수"라고 무릎을 딱 칠 수도 있겠죠. 스페셜포스 프로리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임수라를 모를 수 없을 것입니다.

올해 막 서른의 나이로 접어 든 임수라는 고민도 많고 꿈도 많습니다. 그녀의 꿈이 e스포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그녀가 협회에서 펼칠 꿈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프로게이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의 직업이 e스포츠와 관련될 것이라고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e스포츠는 그저 TV에서 나오는 먼 세계였습니다. 스페셜포스를 즐겨했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e스포츠와 인연을 맺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e스포츠를 만난 것은 MBC게임 히어로 하태기 감독 덕분이었습니다. 스페셜포스 프로리그 런칭으로 팀을 창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태기 감독은 독특하게 남성과 여성이 섞인 혼성팀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임수라를 만났죠.

당시 하태기 감독은 눈빛이 강렬하고 프로게이머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여성 선수를 찾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느낌의 김진유과는 반대 이미지를 가진 멋진 여전사 느낌이 나는 선수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HerStory] 임수라 "우연에서 운명이 된 e스포츠"

그리고 임수라가 선발됐습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임수라는 망설였다고 합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여성이기에 외모로만 평가 받는 분위기가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나중에 하태기 감독님이 저를 왜 선발했는지 듣고 웃었어요. 사실 인상이 날카로운 편이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날카로운 인상이 제 인생을 바꾼 것이잖아요. 만약 제가 귀엽게 생겼거나 평범하게 생겼다면 지금처럼 특별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날카로운 제 인상이 싫었는데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우연히 시작하게 된 프로게이머 생활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죠. 외모 비하 댓글은 그녀에게 상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힘든 점을 극복해 나가면서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 시작했습니다.

◆코치에서 감독, 그리고 사무국까지
임수라는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면 e스포츠와의 인연도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게이머 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러나 MBC게임에서 그녀는 선수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맏언니로서 선수들을 잘 이끄는 모습을 본 MBC게임 사무국은 그녀를 코치로 임명했습니다.

"처음에 코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나서 당황했어요. 한번도 제가 누군가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적격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요. 한참을 고민했는데 사람이란 원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움직이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 해보자는 생각에 승낙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중간 관리자 역할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무국과 선수들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특유의 친화력과 카리스마로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임수라는 코치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HerStory] 임수라 "우연에서 운명이 된 e스포츠"

"이제 코치 역할에 익숙해질 무렵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어요. MBC게임단이 해체를 결정했거든요. 파란만장했어요(웃음). 이대로 e스포츠와 인연은 끝이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어요. 이제 e스포츠는 단순히 직업을 넘어 꿈을 키워가고 싶은 곳이 됐었거든요."

아쉬워하던 임수라에게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스페셜포스2 프로리그가 새롭게 시작하면서 IT뱅크가 새롭게 창단을 했고 임수라에게 감독직을 제안한 것입니다. 감독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남자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임수라는 감독직을 제안 받자 두세 번 확인할 정도로 놀랐다고 합니다.

"농담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진짜더라고요. 이번에는 코치직을 제안 받았을 때보다 고민을 덜 한 것 같아요. 한번 해보고 나니 두 번째는 두려움이 작아졌다고 할까요? 아무튼 기분은 좋았어요. 누군가가 내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말이니까요."

임수라에게 닥친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즌을 끝으로 스페셜포스2 프로리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죠. 이제 그녀는 진짜 e스포츠와는 작별이라는 생각에 다른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에서 운명이 된 e스포츠
그녀에게 e스포츠가 운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다른 일을 알아보던 도중 협회에서 제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직원 한 명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돼 급하게 사람이 필요한데 혹시 협회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였습니다.

e스포츠에서 꿈을 키워왔던 그녀에게 이 같은 제안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e스포츠에 종사하면서 제대로 된 여성 리그가 없다는 사실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여자도 남자처럼 프로게이머로 인정 받고 공식 리그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을 무렵 협회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진 찍는 내내 전화를 받아야 했던 임수라.
사진 찍는 내내 전화를 받아야 했던 임수라.

"이 정도 되면 운명 아닐까요?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e스포츠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계속 주어지더라고요. 만약 그때 협회 직원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저는 e스포츠와 영원히 작별을 했겠죠. 우연히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e스포츠가 내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협회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면서 그녀는 e스포츠 업무를 하나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선수에서 코치, 감독, 사무국 일까지 그녀가 했던 모든 경험은 협회에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 사업팀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바로 경험이었습니다.

"리그 담당 일을 하게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운이 좋게도 저는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사람들의 위치에서 한 번씩 일을 해봤잖아요. 그 사람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니 조율하는 것도 어렵지 않더라고요. 결국은 협회에서 일하기 위해 그 많은 경험들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이제 자신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녀는 꿈꾸던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여성부 리그가 필요합니다. 배구와 농구, 축구 등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여성부 리그가 진행되는 것처럼 말이죠.

[HerStory] 임수라 "우연에서 운명이 된 e스포츠"

"e스포츠에 제대로 된 여성부 리그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어요. 지금 여성부 리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코스가 완성이 되면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 받는데 가속도가 붙는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을 두고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하죠(웃음)? 개인의 꿈이 제가 속한 분야의 꿈과 일치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제 꿈과 e스포츠 꿈을 향해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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