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아무리 뛰어난 외화라도 자막이 없으면 재미가 반감되는 법. 온게임넷은 해외 중계진을 둬 해외 팬들도 무리없이 롤챔스에 빠져들게 했다. '몬테크리스토'와 '도아'의 해설은 팬들에게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이들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는 동양인 해외 중계진이 있었으니, 바로 조한규다.
'초브라'라는 닉네임으로 팬들에게 잘 알려진 조한규는 작년까지만 해도 통역사 역할을 주로 맡았다. 하지만 늘 캐스터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조한규의 갈망은 2014년 온게임넷 공식 글로벌 캐스터라는 명함으로 돌아왔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만난 조한규는 여유와 자신감을 함께 가진 멋진 청년이었다.
◆우연 그리고 인연으로 e스포츠와 연을 맺다
조한규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만 한국에서 나왔고 이후 학창시절은 모두 미국에서 보냈다. 어릴적 게임을 좋아했던 조한규는 대학교 때 FPS 아마추어 선수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이 남자, e스포츠와 연을 맺기 전에는 참 여러가지에 손을 댔다. 방황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고3 때까지는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며 활을 들었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전공을 다섯 번이나 바꿨다. 어렵게 결정한 정치학도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아 휴학을 결정했다.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친구들이 정말 독했어요. 상상 이상으로요(웃음). 정치학이 공부도 하고 즐기기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나니 제가 그리던 방향이 없어졌고 순간 허무해 지더라고요. 그래서 휴학을 했어요. 아무 생각없이 2개월을 보냈죠. 그러 다 접한 게 LOL이었습니다."
2012년 봄 미국에서는 LOL과 도타2를 비롯한 AOS 장르 e스포츠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조한규는 선수에 대한 꿈 보다는 방송에 욕심을 갖기 시작했다. 진로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조한규에게 e스포츠는 한 줄기 빛이었다.
마음을 굳히자 조한규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LOL 아마추어 온라인 대회 캐스터를 하면서 경험을 쌓은 조한규는 다른 아마추어 캐스터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라이엇게임즈 직원들과 경기를 치르는 쇼매치를 기획하기도 했고 도미니언 대회를 열기도 했다. 물론 돈을 벌긴 힘들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이다.
그러다 2012년 여름 조한규는 기회를 잡았다. MLG를 찾았다가 현장 관계자의 눈에 든 것이다. 당시 MLG 서머 아레나에 참가한 아주부 블레이즈(현 CJ 블레이즈)의 팬이었던 조한규는 선수들 사진을 찍기 위해 MLG를 찾았다. 그 때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착한 미국 기자가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되는 조한규에게 MLG와 연결해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한규는 그 자리에서 '몬테크리스토' 크리스토퍼 마이클스와도 처음 만났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운영하는 gg크로니클 기자를 제안했다. 하루만에 두 가지 제안을 받은 것이다. 조한규는 gg크로니클 기자로 활동했고 MLG 리포터로도 활약했다. MLG에 가지 않았다면 잡지 못했을 기회다.
"한국 팬들이 저를 알게 된 건 시즌2 롤드컵 때였을 거에요. 그 때 '몬테'가 온게임넷에 가면서 MLG에 절 추천했죠. 한 달 반 정도 MLG 캐스터로 활동하다 온게임넷의 제안을 받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MLG에게는 죄송했죠(웃음). 1년 반 만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요."
◆두려움 딛고 나선 도전
조한규가 다니던 학교는 아이비 리그에 속한 명문 콜럼비아대학교다. 하지만 조한규는 e스포츠를 위해 모든 것을 놓고 한국에 왔다. 사실 범인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콜럼비아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상태에서 이를 포기하고 e스포츠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생각이라니. 그 열정은 참 대단하다. 그러한 열정이 있기에 지금의 조한규가 있는 것일 터.
"사실 친척분들은 미국의 좋은 대학에 가서 졸업도 포기하고 왜 이런 일을 하냐고 하세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제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해요."
조한규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심하게 몰두한다. 끝까지 달라붙어 어떻게든 결과를 낸다. 하지만 일에만 열중하다보니 한국에서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몬테', '도아'에게 조언을 받을 수는 있지만 고민을 마음 놓고 털어놓기는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한국 생활의 고단함이 육체의 피로와 함께 몰려왔다.
"사실 서울에서 산다는 게 두려웠어요. 리스크를 안고 생활을 하는 게 맞나 싶었죠. 하지만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웃음). 문화 차이도 있고 고민 상담을 할 친구도 없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처음에는 e스포츠 관계자들 하고만 친했었지만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죠."
조한규는 한국에 들어와서 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소중함을 배웠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도 생겼다. 캐스터 조한규와 인간 조한규는 다르다.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캐스터 조한규는 완벽하지만 인간 조한규는 뭔가 허술하고 가끔은 소심하기도 하다. 그게 조한규의 매력이다.
◆명확한 목표, 그대로 직진
조한규의 원래 목표는 통역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e스포츠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캐스터로 변신한 뒤로는 영어 캐스터 중 최고가 되는 것으로 목표가 수정됐다. 조한규는 한국에서 전용준, 성승헌 같은 경험이 많고 뛰어난 캐스터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들은 방송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팬들이 어떤 부분에 재미를 느끼는지 유심히 보고 그걸 영어로 어떻게 옮기면 비슷한 느낌이 나는지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있어요. 물론 분석도 즐기지만 '몬테'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잖아요(웃음). 전 게임 하나에 묶인다기 보다는 방송 그 자체에 재미를 느껴요.
앞서 말했듯 조한규는 방황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한 셈이다. 어린 시절에는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지금의 조한규는 다르다. 명확한 주관과 목표를 갖고 있다. 앞으로 힘차게 걸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정말 나중에는 글을 쓰던지 강연을 하고 싶어요. 제 다양한 경험들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100% e스포츠에 집중할 거에요. 음악, 정치 등에서 한이 좀 맺혔거든요(웃음). 아직도 목 말라요. 노력해야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거든요. 제가 가진 열정을 모두 쏟아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요."
글=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
사진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