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라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와 e스포츠 업계를 이끌어간 장수 게임이다. 축구라는 영원 불멸의 소재를 게임의 타이틀로 삼은 피파는 매년 PC 버전으로 게임이 출시됐고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으로 변신을 시도, EA와 넥슨이 피파온라인3를 서비스하고 있다.
피파온라인3 대회가 지속적으로 대회가 열리면서 피파 초창기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선수들이 속속 복귀를 선언하고 있다. 그 가운데 피파 원년 멤버인 김두형은 은둔 생활 8년을 정리하고 선수로 돌아왔다.
◆피파의 산증인
PC 버전으로 열린 피파 대회 초창기에는 여러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지훈과 김두형, 박윤서, 최대한, 황상우 정도가 이름을 날렸다. 대회가 열리기 시작할 즈음에 최고의 선수로는 이지훈(현 KT 롤스터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이었다. 2000년에 열린 대회를 싹쓸이한 이지훈을 보고 자극을 받은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김두형이었다.
"축구는 원래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축구 선수가 되겠다면서 시간만 나면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섰죠. 그러다가 게임 방송이 하나씩 생기면서 게임으로 축구를 중계하더라고요. PC방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피파로 전향했죠."
2001년은 김두형의 해였다. 배틀탑에서 5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고 SBS 사이버 사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낭중지추로 떠오른 김두형은 월드 사이버 게임즈 한국 대표 1위와 그랜드 파이널 금메달을 따내면서 최고의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2002년에도 WCG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두형은 해설자와 선수 생활을 겸했다.
"2003년에 군에 갈 생각을 하면서 선수 생활을 잠시 접었는데 청력 검사를 받던 도중 면제 판정을 받았어요. 한쪽 귀의 청력이 0에 가까웠던 거죠. 남자라면 군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몰래 입대 원서를 넣었는데 면제가 된 거에요. 그 뒤로는 해설자 7, 선수 3 정도로 살았어요."
20033년 WCG 해설위원으로 해설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MBC게임을 통해 해설위원으로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때가 될 때마다 대회에 출전해 상위 입상하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다.
"제 동생도 피파 선수였어요. 이름은 김관형이죠. 올드 팬들은 아마 아실 거에요. 2006년 관형이가 데뷔전을 준비하는데 제가 연습 상대가 되어줬죠. 동생은 MBC게임 피파 대회에 출전하고 저는 해설을 했어요. 그러다가 온게임넷에서 열린 질레트 대회에서 제가 3위를 하면서 '노장은 죽지 않는다'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죠."
◆아, 아버지
2006년부터 피파 대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기가 올라갔지만 축구 게임인 피파는 PC 버전과 온라인 버전이 각각 다른 회사에서 개발과 서비스를 맡으면서 주인이 없는 e스포츠 종목이 되어 버렸다. 해설자로 뛸 자리가 줄어들었고 선수로 나설 대회도 거의 사라졌다. 그러던 차에 김두형은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아버지가 2008년에 돌아가셨어요. 시쳇말로 '멘붕'이었죠. 가장이라는 자리를 제가 대신해야 하는 상황에 닿으니 앞이 막막했어요. 게임을 즐길 여유도 없었죠."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은 기업팀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을 시기에 피파 선수들은 오히려 출전할 대회가 줄어들고 있었으니 김두형 또한 생계를 위해 나서야 했다. 게임은 들여다 볼 틈도 없었고 가족들의 생활을 위해 주유소에 취직했다. 주유 업무부터 시작한 그는 4년 동안 승진을 거듭해 총무까지 맡았다.
◆현실 축구와 직결된 피파온라인3
주유소에서 일하면서도 김두형은 현실 축구를 놓은 적은 없다. 직접 공을 차러 가지는 않았지만 야간에 벌어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그까지 중계가 되는 축구 대회는 모두 봤다. 월드컵이 열릴 때에도 시선은 언제나 TV 브라운관에 가 있었다.
"'축덕'이라는 말 있죠? 딱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외국과 한국의 시차가 있으니까 주유소 업무를 보던 저는 축구 중계 보기가 정말 좋아요. 손님이 적어지는 밤 10시부터 각종 대회가 열리니까요."
현실 축구를 보며 김두형은 '게임의 기술이 저들의 활약을 그대로 구현하는 날이 올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가장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피파온라인3가 출시되고 인기를 끈다는 말을 듣고 접속한 김두형은 궁금증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현실에서 보여지는 선수들의 개인기와 각 팀의 전략, 전술이 내 손 안에서 다시 구현되는 모습을 경험하고는 재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활이 안정될 즈음 예전부터 같이 피파 선수로 뛰던 후배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넥슨이 큰 대회를 열 것이고 후배들이 대거 출전할 거라고요.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가 결승전에 후배들이 올라갔다고 해서 가봤더니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관중의 한 명으로 앉아 있던 김두형의 심장에 불이 당겨졌다. 그 때 스쳤던 생각. 바로 '슬램덩크'의 정대만이었다.
"농구가 정말 하고 싶어서 안 감독님 앞에서 무릎 꿇고 울던 정대만과 지금의 제 처지가 오버랩되더라고요. '피파가 정말 하고 싶었고 그래서 축구를 놓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나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올드의 저력 보여주고 싶다
김두형은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2회 대회에 과감히 지원했다. 2,048강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예선을 통과할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해온 피파를 8년만에 다시 잡았기에 어색할 수도 있지만 노련미와 노하우로 밀어 붙여 보겠다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두렵죠. 요즘 잘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지난 시즌에 개인전에서 1, 2위를 했던 김민재, 원창연 같은 선수들과 온라인상에서 만나면 제가 질 거에요. 그렇지만 방송 체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무대에서라면, 단판에 모든 것을 거는 승부라면 제가 이길 것 같아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어요. 올드만 가질 수 있는."
김두형에게 대회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피파온라인3 리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올드 게이머들이 더 뛰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분명하다. 과거의 영광일 수도 있지만 프로게이머로, 기업팀에 들어가서 연봉을 받았던 적이 있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8년만에 돌아온 이유로 너무나 거창한가요. 그렇지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멀고 험난한 길이겠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 그리고 선배가 끌어줘야 한다는 말을 실천해보려고요."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