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오늘 멀리까지 나와서 특별히 신경 썼어요. 춘리라면 예전에 취권에 나왔던 캐릭터죠?"
"취권이요? 하하하하."
첫 만남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정찬희 특유의 유머감각과 신지혜 아나운서의 허당(?) 매력으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어색한 기운이 없었습니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스트리트파이터와 춘리를 모두 알고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취권이라고 말하면서 내내 정찬희의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 번째 지혜의 남자는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2014 시즌2 팀전에서 최초로 올킬을 기록한 비주얼 팀의 정찬희였습니다. 관계자들도 선수들 사이에서도 올킬자가 이렇게 빠르게 탄생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주인공이 정찬희일 것이라고는 더욱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것도 관록의 잇츠30.2를 상대로 올킬을 거둔 정찬희. 지혜의 남자에서 안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올킬러를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 동물원에서 만난 두 사람의 데이트는 어느 때보다 유쾌했습니다.
일단 '취권'이라는 단어 하나로 어색함이 사라진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들이 동물원으로 데이트를 오는지 알겠더군요. 동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정찬희와 신지혜 아나운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올킬을 했다고 해서 어떤 분일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화면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잘생긴 것 같아 깜짝 놀랐어요. 화면발이 잘 안 받는 것 같은데요? 얼굴은 시크해 보이는데 성격은 정말 다정다감하네요."
"오늘 신지혜 아나운서를 만난다고 해서 비비크림을 발랐거든요(웃음). 그래서 더 말끔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옷도 좀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칙칙한 색깔의 옷을 입고 와서 화사한 신지혜 아나운서 옆에 서기가 좀 민망해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더 멋지게 입고 와야겠어요(웃음)."
본격적인 동물원 데이트에 앞서 서로 좋아하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 원숭이를 좋아하는 정찬희와 토끼를 좋아하는 신지혜 아나운서는 서로 좋아하는 동물을 보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열린 동물원에 들어간 두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물들이 두 사람에게 돌진해 왔고 한 염소는 아예 정찬희에게 올라타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들고 있던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한 동물들의 혈투가 눈물 겨웠습니다.
"다른 동물들에게도 맛난 것 먹여주고 싶은데 돼지가 계속 먹을 것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다른 동물들이 거의 못 먹었어요. 돼지는 역시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열린 동물원을 지나 정찬희가 좋아하는 원숭이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두 사람 모두 원숭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두 사람은 원숭이 엉덩이가 진짜 빨간색인지 확인해 보겠다며 눈을 크게 떴습니다.
드디어 원숭이의 엉덩이 색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 신지혜 아나운서는 새끼 하나를 품고 있는 어미 원숭이를 보며 눈시울이 시큰해 지기도 했습니다. 새끼가 매달려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본 두 사람은 "역시 아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예쁜 것 같다"며 감동에 젖은 모습이었습니다.
어미 원숭이와 아이 원숭이에게 한눈 팔려 있는 사이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정찬희였습니다. 원숭이 엉덩이 색을 확인해야겠다는 일념에 원숭이가 빨리 뒤를 돌아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은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 엉덩이가 정말 빨간색이네요(웃음). 그런데 저 원숭이는 얼굴도 만만치 않게 빨개요. 항상 노래로만 불렀던 원숭이 엉덩이를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운 것 같습니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어요."
동물들을 구경하면서 올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 정찬희는 사실 올킬을 할 줄은 몰랐다고 멋쩍은 듯 웃었습니다. 미녀의 칭찬에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나 봅니다. 정찬희는 "올킬을 해서 지혜의 남자도 찍을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올킬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 생각해요. 실력도 따라줘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것인데 올킬을 했다는 것은 이번 시즌 정찬희 선수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이번 시즌 어떨 것 같아요?"
"첫 시작이 올킬이었잖아요. 사실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뀄으니 남은 단추도 잘 꿸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경기에서는 올킬은 힘들겠지만 올킬을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야죠. 그런데 올킬이라는 것이 한번 하고 나면 상대에게 심리전을 걸 수도 있는 등 좋은 것 같아요. 오늘 신지혜 아나운서를 만났으니 그 행운이 더 따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신지혜 아나운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지혜 아나운서를 만나면 챔피언십에서 탈락한다는 저주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8강에 진출한 것을 이렇게나 기뻐하는 선수에게 잔혹한 결과를 보여주기는 싫었나 봅니다.
"그런데 저를 만나면 탈락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 사실을 안다면 저를 만나는 것이 행운은 아닐 텐데 괜히 미안하네요."
"저는 징크스 같은 것 믿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그 징크스를 깬다면 더욱 강력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겠죠? 제가 신지혜 아나운서의 '구미호설'을 깔끔하게 날려 드릴게요(웃음). 올킬러가 징크스를 안 깨면 누가 깰 수 있겠어요. 저만 믿으세요!"
묘하게 믿음이 가는 정찬희는 그렇게 신지혜 아나운서를 안심시켰습니다. 동물에게 먹을 것을 모두 준 뒤 "동물에게 삔(?) 뜯긴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정찬희와 이를 즐겁게 바라보던 신지혜 아나운서는 어느 새 친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습니다.
"한 번의 올킬로 끝내기에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비록 개인전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단체전에서 좋은 성적 거둬서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에 제 발자국 하나를 남기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저도 응원할게요. 지혜의 남자 저주를 깨준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다음 팀전 8강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다크서클 때문에 데스노트에 나오는 류크 닮았다는 이야기 안 들어요?"
"아까는 엘이라면서요. 류크는 사신이에요. 괴물처럼 생겼다고요!"
"아 맞다. 엘인데 류크라고 실수했네요(웃음). 저 오늘 이름 틀려서 계속 실수만 하네요. 미안해요(웃음)."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