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로, 화승 오즈, STX 소울, 소울, 마우스스포츠까지 프로게이머 생활 6년 차에 접어든 백동준이 거쳐간 게임단은 무려 5개. 들어가는 팀마다 해체를 거듭해 백동준은 선수들 사이에서 '팀 파괴자'로 불립니다. 본인은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긍정적인 성격의 백동준이지만 상황이 이 정도로 악화되면 정신력이 무너질 법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옆에서 프로게이머로 존재합니다. 그것도 우승자 프로토스로 말입니다. 마우스스포츠를 나와 방황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삼성 갤럭시 칸에 입단한 백동준은 이제야 안도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물론 삼성 소속 선수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밤 잠을 설쳤다는 웃지 못할 후문도 전해지지만 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 갤럭시 칸에 둥지를 튼 백동준. 개인리그 우승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던 백동준의 못다한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
삼성 입단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백동준은 망설임 없이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협회 기업팀 소속이었다가 1년여 동안 잠시 협회를 떠나 있었던 백동준은 비록 자신이 속했던 팀은 아니지만 협회 기업팀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해외팀과 협회 기업팀 모두 장단점이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 애매해요. 단지 제가 고향에 온 기분이 드는 이유는 사람들과 살 부대끼고 북적대면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에 왔다는 것이죠. 사람이 그리웠나 봐요."
백동준은 해외 팀에 소속돼 있으면서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빌드나 전략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물론 이제동이나 고석현 등 해외 팀 소속 선수 가운데 잘하고 있는 선수들도 많지만 백동준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그렇게 실력을 키웠기에 의사 소통을 할 동료가 없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고 합니다.
"국민 MC 유재석씨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듯 저도 그런가 봐요(웃음). 혼자 내버려 둬야 잘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음을 얻고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타입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죠. 삼성에 아는 선수 한 명 없었지만 숙소에 오자마자 마음이 안정됐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미 두 달 전부터 삼성 숙소에 합류해 연습을 시작했던 백동준은 조금씩 예전의 실력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은퇴도 고려…힘들었던 6개월
백동준은 지금까지 5개 팀에서 활동했습니다. 연습생 신분이었던 이스트로가 해체했고 이적한 화승 오즈도 막 빛을 보려 할 때 팀이 해체됐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백동준이 2년을 머문 STX 소울 역시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팀이 없어졌죠. 이쯤 되면 선수 입장에서는 정신력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백동준은 생각보다 덤덤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소속 팀 해체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최근 마우스스포츠와 결별을 하기까지의 6개월이 프로게이머 생활 가운데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스트로 시절은 연습생이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든 상관 없었어요. 화승이 해체했을 때 잠시 방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팀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었어요. STX가 해체했을 때는 성적을 잘 내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 팀에서 러브콜도 왔죠. 크게 불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죠."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었던 백동준이었기에 그동안의 역경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지만 마우스스포츠와의 결별은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고 앞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백동준은 은퇴를 결심했었다고 합니다.
"변명같지만 저는 변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에요. 스타크래프트2:군단의 심장으로 바뀐 뒤 두 번의 개인리그에서 예선도 뚫지 못하다가 바로 세 번째 시즌에서 우승한 것만 봐도 아실 것 같아요. 그런데 자꾸만 패치가 되는 통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특히 예언자 패치는 저에게 모든 종족전 개념을 흔드는 큰 사건이었죠."
백동준은 예언자 패치로 프로토스전에 애를 먹었고 계속 연패를 거듭하면서 다른 종족전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변화에 적응이 느린 것은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적응하고 난 뒤 백동준의 실력은 완벽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단점이라고만은 볼 수 없죠. 그런 상황에서 잦은 패치는 백동준에게 너무나 큰 장애였습니다.
"누군가와 의논할 수도 없이 혼자 연습하는 상황에서 성적이 점점 떨어지다 보니 팬들에게서도 잊혀져 갔고 성적이 좋을 때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말했던 소속 팀도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기도 했죠. 정말 힘들었고 이제는 프로게이머를 그만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백동준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삼성 갤럭시 칸이었습니다. 그동안 전력 보강 없이 팀을 이끌던 오상택 코치의 전화는 백동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자 기회와도 같았습니다. 백동준은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연습에 임했습니다. 삼성 숙소에 합류하면서 백동준은 마치 연습생처럼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우승자' 이름값 하고 싶어"
지금까지 그는 몇 번의 이적에도 부담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습생 신분으로, 이제 막 데뷔한 신예로 이적을 했기에 성적을 잘 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빨리 주전이 되야 한다는 설렘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삼성에 이적한 백동준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이제 '우승자' 프로토스 입니다. 삼성에서 에이스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백동준의 이적은 실패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우승자'라는 왕관의 무게가 어깨에 올려져 있습니다.
"더 이상 '팀파괴자'라는 말은 듣기 싫어요(웃음). 우승자로서 삼성의 프로리그 활약을 이끄는 선수로 거듭나야죠. 삼성이 해체하지는 않겠죠(웃음)? 그러지 않도록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없었던 이름값이 생겼기 때문에 지금껏 이적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해야죠."
얼마 전 이스트로와 STX에서 친한 동료이자 형이었던 김도우의 우승을 지켜보며 백동준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자신이 우승했을 때 "네가 우승을 하다니 말도 안 된다"며 놀라워하던 김도우가 8개월 전 자신이 섰던 자리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 놀려야겠다는 생각과 대단하다는 생각이 교차했다고 합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죠(웃음). 나중에 현장에서 만나면 '형이 우승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말해줄 생각이에요(웃음). 어쨌건 우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만이 가질 수 있는 명예죠. 이 자리를 빌어 (김)도우형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제동은 평생 롤모델
백동준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제동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어떤 프로게이머보다도 많은 팀에서 많은 선수들을 만나본 그이기에 이제동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가장 잘 아는 선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제동이형만큼 열심히 하는 프로게이머를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누구보다 정신력도 강하고요. 해외 팀에서 중심 잡고 저렇게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영원히 제 롤모델은 이제동 선수일 것입니다."
백동준은 프로게이머 평생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느끼게 한 선수는 이제동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연습생 시절 그와 게임을 하면서 수없이 좌절했지만 그래서인지 이제동의 이름은 백동준에게 항상 멘토였고 버팀목이었다고 합니다.
"(이)제동이형처럼 되고 싶어요. 연예인같은 존재이기에 감히 친하게 지낼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요(웃음). 평생의 롤모델 (이)제동이형처럼 성장해 프로게이머 생활을 후회 없이 해보고 싶어요. 응원해 주실 거죠?"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