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화이트는 1세트에서 SK텔레콤 K의 예상치 못한 전략에 패했습니다. '페이커' 이상혁이 미드 질리언을 택했고 '피글렛' 채광진의 트위치와 함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죠.
질리언을 금지하긴 했지만 어려운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삼성 화이트는 2세트에서 이상혁의 오리아나에게 계속 킬을 내주면서 경기 내내 끌려다녔습니다. 그러나 삼성 화이트는 2세트에서 역전승을 거뒀는데요. 그 배경에는 '임프' 구승빈의 맹활약이 있었습니다.
구승빈은 원거리 딜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 선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대규모 전투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위치에 자리한 구승빈은 마음껏 공격을 퍼부으며 역전승을 이끌었습니다.
만약 삼성 화이트가 2세트까지 내줬다면 벼랑 끝에 몰리면서 멘탈까지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삼성 화이트는 구승빈의 활약에 힘입어 2세트에서 역전을 해낸 뒤 3, 4세트를 연달아 따내면서 5시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마타' 조세형의 수난
삼성 화이트의 강점은 맵 장악을 통한 '탈수기 운영'에 있습니다. 경기 초반은 '댄디' 최인규가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정글 시야 확보를 위한 터를 닦고 '마타' 조세형이 합세해 상대의 주요 길목을 환하게 비춰놓죠.
하지만 SK텔레콤 K에게 먼저 주도권을 내준 상황에서 최인규와 조세형은 맵 장악에 나섰다가 오히려 상대에게 끊기면서 힘든 싸움을 펼쳐나갔습니다. 17분경 드래곤 시야 장악을 위해 아래로 내려가던 조세형은 SK텔레콤 K '벵기' 배성웅의 렝가에게 물린 뒤 협공을 받아 전사합니다. 이 때부터 조세형의 수난 시대가 시작되는데요.
조세형은 21분경 중앙 1차 타워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이상혁의 오리아나가 쓴 스킬 콤보에 한 번에 눕고 맙니다. 22분도 안된 시간에 '라바돈의 죽음모자', '아테나의 부정한 성배', '마법사의 장화'를 구비한 오리아나의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26분경 와드를 설치하기 위해 바론 쪽으로 이동하던 조세형은 언덕 아래에서 매복해 있던 이상혁의 스킬 콤보를 맞고 또 한 번 전사했습니다. 이미 이상혁의 오리아나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상황에서 조세형은 혼자 와드를 설치하러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또 30분에는 최인규가 SK텔레콤 K의 렝가-오리아나의 궁극기 콤보에 끊어지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삼성 화이트는 조세형과 최인규가 시야 장악을 통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지만 이미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라 쉽지가 않았습니다.
◆원거리 딜러=위치 선정
SK텔레콤 K에게 먼저 타워를 줄줄이 내주면서 삼성 화이트는 맵 장악에서 밀렸습니다. 그러면서 경기도 어렵게 풀어나갔죠. 하지만 삼성 화이트는 대규모 교전 승리를 통해 격차를 유지하며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전투 승리의 바탕에는 구승빈의 트위치가 있었지요.
원거리 딜러의 기본 소양은 전투시 죽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최대한 많은 데미지를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확한 위치 선정이 중요한데요. 구승빈은 완벽한 포지셔닝을 통해 전투마다 자유롭게 공격을 펼쳤습니다. 일명 '프리 딜'이라고 하죠. 구승빈은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전 은신을 활용해 최적의 장소를 점한 뒤 '프리 딜'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24분경 펼쳐진 드래곤 앞 전투를 보시죠. 드래곤은 이미 뺏긴 상황. 구승빈은 자신의 몸을 숨긴 채 타깃을 찾았고 '파바바박'을 켜고 채광진의 코그모에게 화력을 집중했습니다. 그리고는 두 명을 더 잡아냈죠. 5대5 대치 구도에서 구승빈은 가장 뒤에 있었습니다. 상대가 구승빈을 공격하려면 조세형, 최인규, 허원석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삼성 화이트가 드래곤을 내준 뒤 이 전투마저 대패했다면 경기는 힘들어졌을 겁니다.
다음 드래곤 전투에서도 구승빈의 위치 선정은 빛났습니다. 30분경 최인규가 SK텔레콤 K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면서 잘렸습니다. 하지만 삼성 화이트는 4대5 상황에서 전투를 열었죠. 장형석의 쉬바나가 궁극기로 파고 들면서 시선을 끄는 사이 구승빈은 앞선에 있던 배성웅의 렝가를 집중 공격, 허원석에게 킬을 안겼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 있던 이정현의 나미를 끊어낸 뒤 앞점멸로 들어가 채광진의 코그모까지 잡고 더블 킬을 올렸죠. 이 모든 게 6초만에 이뤄졌습니다.
삼성 화이트는 내줄 뻔한 경기를 원거리 딜러가 완벽하게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낸 구승빈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통한의 '공기팡'
오리아나의 궁극기인 '충격파'는 범위 내 챔피언을 가운데로 뭉치면서 데미지를 주는 스킬입니다. '충격파' 한 번에 불리했던 경기를 뒤집을 수도 있는 정말 좋은 스킬인데요.
하지만 오리아나의 궁극기가 아무에게도 적중되지 않았을 때는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합니다. 중후반 대규모 전투에서 '충격파'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파일럿의 오리아나 실력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리아나를 플레이했던 이상혁은 경기 내내 수준급 실력을 뽐냈습니다. 렝가와의 콤비 플레이는 물론 스킬 연계로 조세형의 쓰레쉬를 연달아 한 번에 잡아냈지요. 하지만 이상혁은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렝가에게 공을 달아준 뒤 도약-충격파 콤보로 '폰' 허원석의 직스를 순식간에 삭제하려고 했지만 허원석의 점멸 타이밍이 조금 더 빨랐죠. 일명 '공기팡'이 터진 뒤 전세는 단숨에 기울었습니다.
렝가와 오리아나의 궁극기가 빠졌음에도 킬을 내지 못한 SK텔레콤 K는 삼성 화이트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졌습니다. '임팩트' 정언영의 룰루가 '급성장'도 쓰지 못하고 전사했고 이정현의 나미가 쓰레쉬의 사형선고에 걸려드는 바람에 SK텔레콤 K가 유지하고 있던 진영은 한 번에 무너졌습니다. 이상혁의 오리아나도 엘리스의 고치에 맞아 힘도 쓰지 못하고 흑백화면을 보고 말았죠.
만약 반대로 SK텔레콤 K가 렝가-오리아나의 궁극기 콤보로 직스부터 자르고 전투를 시작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통한의 '공기팡'이었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