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4 시즌이 대망의 결승전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역대 최강의 전려을 갖췄다고 평가되는 SK텔레콤 T1이 결승전에 올라갔고 한 자리의 주인은 KT 롤스터로 정해졌습니다.
사실 KT 롤스터보다는 진에어 그린윙스가 결승전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김유진과 조성주, 방태수 등 종족별 대표 선수를 보유하고 있고 뒤를 받치는 백업 선수들의 전력도 KT보다는 한 수 위라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반대의 결과가 나왔지요. 그 중심에는 전략적인 플레이가 바탕이 되어 있었고 에이스 선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해주는 신뢰에 대한 응답성이 자리했습니다. 특히 스타2에서 이렇다 할 타이틀을 얻지 못했던 '최종병기' 이영호가 완벽한 응답성을 보여줬습니다.
이영호는 지난 29일 열린 통합 플레이오프 4강 3차전에서 선봉으로 출전했습니다. 이영호의 상대는 진에어의 '1억원의 사나이' 김유진이었고 맵은 '아웃복서'였습니다.
김유진은 지난해 열린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 글로벌 파이널에서 최종 우승을 달성하면서 상금 1억 원을 손에 넣었고 올해 열린 IEM 시즌8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하면서 또 다시 1억 원을 통장에 넣었습니다. 스타2에서 보여준 실력이나 상금 획득 액수에서 이영호보다 한참 위에 랭크된 선수이지요. 누가 봐도 김유진의 승리가 예상됐고 중계진 7명 가운데 6명이 김유진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습관을 버린 이영호
누가 봐도 스타2에서 이영호보다 한참 위에 올라 있는 김유진을 상대하는 이영호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업그레이드를 포기하고 타이밍을 택한 선택이었습니다.
◇무난한 3병영 체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영호에게는 이 자체가 전략이었다. 공학연구소를 늦게 지으면서 공격력과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포기했고 전투자극제를 먼저 개발하며 타이밍을 단축시켰기 때문(사진=유튜브 캡처).
이영호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부터 업그레이드를 상당히 중요시하는 선수입니다. 바이오닉을 하든, 메카닉을 하든 일찍부터 공격력과 방어력을 업그레이드합니다.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된 이후 10분 안에 끝나는 경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중장기전을 대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업그레이드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스타1부터 이 습관이 몸에 밴 이영호는 스타2에서 바이오닉 체제를 시도할 때에도 공격력과 방어력을 덥그레이드했습니다.
김유진과의 경기에서 이영호는 이 습관을 버렸습니다. 앞마당에 사령부를 가져간 이영호는 3개의 병영을 건설했습니다. 기술실 1개에서 전투자극제 업그레이드를 시도했고 불곰과 해병을 지속적으로 생산했습니다.
중후반전을 도모했다면 이영호는 2개의 공학 연구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공격력과 방어력을 업그레이드했을 것입니다. 타이밍 러시도 공방업과 전투자극제, 충격탄까지 업그레이드된 뒤에 시도했겠지요.
◇김유진의 앞마당에 도달한 이영호의 병력(사진=유튜브 캡처).
이영호는 김유진을 맞아 습관을 바꾸면서 타이밍 러시를 시도했습니다. 전투자극제만 업그레이드가 된 시점에 프로토스의 앞마당으로 치고 들어간 것이지요. 해병 8기와 불곰 1기의 구성이 아니라 해병 10여 기와 불곰 3기를 동원하면서 화력과 맷집을 모두 챙겼습니다.
전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영호의 병력이 자신의 앞마당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김유진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보유한 병력이 추적자 3기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평소보다 훨씬 빨랐던 이영호의 러시에 당황한 김유진은 파수기를 뽑았습니다.
◆독이 된 김유진의 파수기
김유진이 파수기를 뽑은 이유는 이영호의 주병력을 앞마당 지역에서는 막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테란의 해병과 불곰이 전투자극제를 사용한 이후 자신의 본진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죠.
그런데 이 파수기가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이영호의 해병과 불곰이 앞마당으로 치고 들어오자 김유진은 탐사정을 아래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영호는 이를 확인하자 김유진의 본진으로 이어지는 길로 병력을 보냈는데요. 김유진은 파수기의 역장으로 테란 병력의 진입을 저지했죠.
◇파수기의 역장을 사용하면서 이영호의 해병과 불곰이 언덕 위로 올라오는 것을 차단한 김유진. 탐사정을 본진으로 빼놓고 사용했으면 어땠을까(사진=유튜브 캡처).
문제는 이 때부터 발생했습니다. 앞마당 지역에서 일하던 탐사정들이 객사하게 되는 원인을 역장이 제공했죠. 이영호는 마음 편히 탐사정을 제거했고 무려 17기나 잡아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만약 김유진이 앞마당에서 일하던 탐사정을 본진 광물 지역으로 이동시킨 뒤에 역장을 쳤다면 복구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견제는 견제일 뿐
김유진의 앞마당 지역에서 탐사정을 대거 잡아낸 이영호는 의료선을 생산해 견제에 나섭니다. '아웃복서'의 특성상 초반 견제는 본진 지역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유진이 이를 알기에 거신을 본진에 배치하면서 수비에 전력합니다.
◇김유진의 본진에 의료선 견제를 시도하지만 이영호는 무리하지 않았다. 괜히 올인하다가 병력이 잡히면 역전 당할 수도 있기에 최대한 몸을 사리는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이영호 또한 의료선으로 견제를 하긴 하지만 올인하지는 않았습니다. 12시를 경유해서 김유진의 본진에 의료선 2기 분량의 해병과 불곰을 떨어뜨렸지만 프로토스의 공격을 받자마자 다시 실었습니다.
세 차례 김유진의 본진에 의료선을 떨궜던 이영호는 수정탑 하나도 제대로 깨뜨리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드롭 때 거신 한 기가 홀로 방어하러 오면서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무리하지 않았지요.
더 많은 수의 병력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서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이영호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사이오닉 폭풍? 피하면 그만
5개의 병영에서 해병과 불곰을 생산하면서 바이킹과 의료선을 섞어 뽑은 이영호는 진출을 도모합니다. 의료선 2기에 병력을 태운 이영호는 김유진의 본진에 한 차례 드롭을 시도합니다. 프로토스의 병력은 본진을 막기 위해 주병력이 모두 이동해야 하는 단점을 이용한 것이지요.
◇김유진이 기사단기록보관소에 증폭을 걸고 있는 모습을 이영호는 스캐너 탐색을 통해 확인했다(사진=유튜브 캡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영호는 무리하지 않고 병력을 퇴각시키면서 12시 광물 지역에 먼저 떨굽니다. 그리고 본대 병력이 동시에 12시를 공격하지요.
김유진은 이영호의 바이오닉 병력을 막기 위해 거신 생산을 3기에서 멈추고 고위기사로 체제를 전환합니다. 거신도 해병과 불곰을 잘 잡지만 바이킹 숫자가 많아질 경우 무력할 때가 있기 때문이죠.
12시에서 연결체를 끼고 전투가 벌어졌을 때 김유진이 보유한 고위기사는 3기였습니다. 이영호도 공격을 시도하기 전 스캐너 탐색을 프로토스의 앞마당에 사용했고 확인한 바 있기에 병력 산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산개! 김유진의 고위기사가 사이오닉 폭풍을 연거푸 썼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이영호는 요리조리 다 피했다(사진=유튜브 캡처).
김유진이 사이오닉 스톰을 연속적으로 사용했지만 이영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하게 병력을 흐트러뜨렸습니다. 5번의 사이오닉 폭풍 가운데 제대로 들어간 것은 한 번 정도였죠.
다 아시다시피 사이오닉 폭풍은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닙니다. 마나라고 불렸던 에너지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마법 스킬이죠. 프로토스 입장에서는 테란의 병력을 모두 잡아냈어야 하지만 이영호의 침착한 산개 컨트롤로 인해 김유진의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김유진의 12시 연결체를 파괴한 이영호는 재차 병력을 모아 공격을 시도하며 항복을 받아냈다(사진=유튜브 캡처).
김유진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고위기사 체제를 무너뜨린 이영호는 유유히 병력을 모아 재차 진군하면서 경기를 끝냈습니다.
1세트에 출전한 이영호가 진에어의 에이스 김유진을 격파하면서 기세가 오른 KT는 4대1로 3차전을 가져갔고 세빛둥둥섬에서 열리는 결승전 티켓을 손에 넣었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