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 프로게이머 출신 조재걸은 2012년 LOL 선수로 옷을 갈아입자마자 나진 소드 소속으로 롤드컵 무대를 밟았다. 2013년에도, 그리고 2014년에도 롤드컵 본선에 이름을 올리면서 조재걸은 국내 선수 중 유일하게 세 번, 그것도 3연속으로 롤드컵에 진출한 선수로 기록됐다.
비록 가족들의 얼굴도 못보고 3년째 추석을 '소환사의 협곡'에서 보내게 된 조재걸이지만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다. LOL 선수라면 누구나 최종 목표로 삼는 롤드컵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전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는 꼭 '소환사의 컵'에 자신의 아이디인 'Watch'를 새기고 싶다는 나진 실드 조재걸을 만났다.
◆잘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조재걸은 운이 좋다. 게임으로 따지면 '축캐(축복받은 캐릭터)'라고 할까. 데뷔하자마자 롤드컵에 진출했고, 작년에는 롤챔스 윈터 시즌 우승 이후 본선에서 매번 떨어지고도 NLB 우승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올해도 가장 중요한 서머 시즌 8강에서 탈락하면서 롤드컵 꿈이 무산되는 듯했지만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끝내 롤드컵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라지 않는가. 그리고 실력은 노력에서 나온다. 연습에 매진하며 흘린 땀방울이야 말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조재걸은 잘 알고 있다.
조재걸은 처음 실드의 정글을 맡게 됐을 때 부담감이 컸다. 소드에 몸담았을 때 롤챔스에서 네 번이나 미끄러졌고, 마침 실드는 직전 시즌 4강이라는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고 나서 실드의 성적이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조재걸은 소드에서 실드로 소속을 옮긴 뒤 더 노력했다. 아니,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세이브' 백영진, '꿍' 유병준, '제파' 이재민, '고릴라' 강범현이 지독한 연습벌레였기 때문이다.
"처음 실드에 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소드 때 옆에서 지켜보긴 했는데 정말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웃음). 쉬는 날이 없었어요. 오직 연습만 하더라고요. 그런 동료들을 보면서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진 실드가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한 것도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변화는 두렵지 않아
이번 롤드컵 한국 대표 선발전을 지켜본 이들은 입을 모아 조재걸을 칭찬했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조재걸은 KT 불리츠, KT 애로우즈, SK텔레콤 K와의 경기에서 펄펄 날며 자신의 플레이를 팬들의 머리 속에 아로새겼다.
SK텔레콤 K와의 경기에서 조재걸은 빼어난 리 신 실력을 보여줬다. 그동안 리 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조재걸의 플레이가 돋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팀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피글렛' 채광진의 베인을 정확히 아군에게 배달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그동안 조재걸은 팀을 지원하는 스타일의 플레이를 펼쳤다. 백영진이나 유병준을 최대한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플레이한 것이다. 그러나 한계는 금방 드러났다. 지난 서머 시즌 16강 조별 예선에서 3무에 그쳤고, 결국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8강에서 고배를 마신 후 조재걸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게 맞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팀이 더 강해질 수 있을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스타일을 '캐리형'으로 바꾸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가 롤드컵 진출권이다.
"8강에서 떨어지고 나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동료들도 잘 맞춰줬죠. 워낙 호흡이 잘 맞다보니 제가 스타일을 바꿔도 금방 적응하더라고요. 이 페이스만 잘 유지하면 팬들에게 인정받는 정글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조재걸은 스타일을 바꾸면서 삼성 갤럭시 화이트 '댄디' 최인규의 움직임을 많이 참고했다. 조재걸은 다른 정글러들의 영상을 보며 배울점과 특징을 캐치하는데 최인규의 플레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최인규의 실력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조재걸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플레이 스타일이 고착화되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최인규는 변화무쌍하면서도 점점 실력이 늘더라고요. 최인규의 플레이를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세계 최강 정글러로 주목받고 있는 최인규와 높은 곳에서 만나보고 싶네요."
◆이제 롤드컵 우승만 남았다
조재걸은 이번 롤드컵 한국 대표 선발전을 치르면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KT 애로우즈를 3대0으로 이긴 나진 실드는 흐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3일 내내 같은 행동을 취했다.
"동료들은 물론 감독님까지 3일 동안 속옷과 양말도 갈아신지 않았어요. 첫 날 8층 식당에서 먹었던 메뉴도 똑같이 3일 내내 먹었죠. SK텔레콤 K를 꺾고 나서야 다 옷을 갈아입었어요. 비록 땀에 절은 유니폼이었지만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얻은 롤드컵 진출권이다. 조재걸은 이번에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정말 큰 기회를 두 번이나 놓쳤기 때문이다. 시즌2에는 '막눈' 윤하운, '프레이' 김종인 등 당대 최고의 전력들이 모여 세계 무대 정복을 노렸지만 8강에서 '맛집'으로 치부됐던 TPA에게 일격을 당했다. 시즌3에는 SK텔레콤 T1 K와 5세트까지 가는 혈전을 벌였지만 4강에서 아쉽게 고개를 떨궜다.
조재걸은 두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 번째 실패는 하고 싶지 않다. 동료들과 피땀 흘려 얻은 롤드컵 진출권으로 반드시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조재걸은 작은 욕심이 있다. 세계 최고의 정글러라는 명성을 얻는 것이다.
"롤드컵에 두 번이나 나갔는데 해외 팬들이나 선수들이 절 많이 기억하진 못할 거에요. 예전엔 주목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팀이 승리하는 것에만 집중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달라요. 플레이 스타일도 달라졌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플레이들을 통해 승리를 쟁취한다면 자연스레 주목을 받지 않을까요(웃음). 남자라면 한 번쯤은 정상에 서봐야죠."
조재걸은 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롤챔스 우승, NLB 2회 우승 등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제 롤드컵 우승만 남았다. 롤드컵만 제패하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인 셈이다.
"이 순간을 위해 아끼지 않았던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 하고 있어요. 롤드컵까지 좀 더 힘을 내서 꼭 소환사의 컵에 제 아이디를 새기고 싶어요. 그리고 실드 동료들이 스킨을 참 좋아해요. 각자 자신의 스킨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클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야겠죠. 우리의 노력이 롤드컵에서 경기로 보여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응원해 주실거죠(웃음)?"
데일리e스포츠 강성길 기자 gillnim@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