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라는 만화에도 페이크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능남고 윤대협과 북산고 서태웅의 1대1 대결에서는 드리블하기 전의 모션과 드리블을 통한 방향 전환, 슛 모션이 단 시간이 이어지는 3단 페이크가 나오죠. 산왕공고와의 경기에서는 눈동자의 움직임은로 상대를 속이는 아이 페이크까지 등장합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페이크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꾼 숫자만으로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 알 정도로 눈치 싸움이 치열한 프로게이머들의 경기에서 가장 확실하게 상대를 속이는 방법은 건설하던 건물을 취소하는 일이 아닐까요.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스포티비게임즈 스타크래프트2 스타리그 챌린지 프라임 김명식과 요이플래시울브즈 강초원의 경기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보여줄 수 있는 페이크의 진수를 볼 수 있던 대결이었습니다.
김명식이 두 번의 페이크로 강초원의 무릎을 깨뜨린 경기였는데요. '앵클 브레이커'로 떠오른 김명식의 활약을 분석해보겠습니다.
◆페이크의 정석 (1세트 보러가기)
'데드윙'에서 펼쳐진 1세트에서 김명식은 정보전에서 뒤처졌습니다. 정찰 보낸 탐사정이 강초원의 진영에 들어갔지만 강초원이 탐사정 2기로 포위하며 잡아낸 것이지요. 강초원은 바로 우주관문을 올렸고 김명식의 본진에 들어간 탐사정이 우주관문이 지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김명식의 연기는 이 때부터 시작됩니다. 강초원의 탐사정이 진영에서 빠져 나가자 김명식은 완성되기 직전의 우주관문을 파괴하고 관문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제어소에서 차원관문 개발을 시도하면서 관문을 4개까지 늘린 김명식은 우주관문 유닛이 아니라 차원관문 유닛으로 체제를 전환했습니다.
강초원은 김명식의 페이크에 제대로 속아 넘어갔습니다. 체제가 발각된 김명식이 택할 우주관문 유닛이 예언자밖에 없다고 생각한 강초원은 불사조를 모은 것이지요. 강초원이 불사조를 4기까지 모은 시점에 김명식은 전진 수정탑을 통해 추적자와 파수기를 소환했고 강초원의 본진까지 입성했습니다. 광자과충전을 쓰면서 공허포격기 생산 타이밍까지 버티려 했던 강초원은 김명식의 지상 병력의 숫자를 막지 못했습니다.
◆역의 역을 이용하다 (2세트 보러가기)
2세트 '만발의정원' 맵에서 김명식은 4분30초에 또 다시 페이크를 썼습니다. 강초원의 탐사정이 자신의 본진을 정찰하기 위해 들어오자 황혼의회를 지었다가 취소했습니다. 김명식이 황혼의회를 취소하는 모습을 본 강초원은 다른 체제라고 생각하고 탐사정을 귀환시켰죠.
그렇지만 김명식의 선택은 황혼의회였습니다. 같은 건물을 또 다시 지은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황혼의회를 취소하면 우주관문을 택합니다. 로봇공학시설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택하기가 어렵고 변수를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명식은 2차 페이크도 준비했습니다. 7시 지역에 몰래 빼놓은 탐사정이 수정탑을 지었고 그 자리에 암흑성소를 건설했습니다. 강초원이 점멸을 개발하면서 힘싸움을 준비했지만 김명식은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암흑기사로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이지요.
강초원의 본진에 수정탑을 건설하면서 추적자를 직접 소환할 것처럼 움직임을 취한 김명식은 강초원이 탐사정까지 이끌고 수비에 나서자 상대 앞마당 지역에 지어 놓은 수정탑을 통해 암흑기사를 소환하면서 유유히 본진에 입성했습니다. 암흑기사를 볼 유닛이 아무 것도 없었던 강초원은 '빠른 GG'를 선언합니다.
◆아이 페이크 (3세트 보러가기)
3세트에서 강초원은 일찌감치 탐사정 한 기를 김명식의 본진으로 보냈습니다. 최대한 오랜 시간 상대 진영을 돌아보면서 체제를 확인하겠다는 생각이 담긴 정찰이었습니다. 1, 2세트에서 제대로 속아 넘어갔기에 김명식이 어떤 테크트리를 타는지 확실하게 보겠다는 것이지요.
우주관문을 선택한 강초원은 점멸 추적자까지 시도하면서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예언자 견제마저도 광자과충전 공격에 의해 잡혔죠. 전진 수정탑을 통해 추적자 압박을 시도한 강초원은 김명식의 앞마당에 지어진 연결체를 깨뜨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김명식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몰래 빼놓은 탐사정으로 강초원의 앞마당에 수정탑을 짓고 광전사를 소환했죠. 강초원의 병력이 전진되어 있었기에 광전사 3기를 막으려면 본진에서 소환해야 했고 이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시선이 본진 쪽에 집중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용했습니다.
강초원의 진영에 광전사를 밀어 넣은 김명식은 불멸자 2기를 활용해 강초원의 전진 압박 라인을 밀어냈습니다. 아이 페이크 한 번으로 또 다시 강초원의 무릎을 무너뜨린 셈입니다.
확장 기지를 먼저 가져간 김명식은 자원력에서 앞서 갔죠. 불사조와 거신을 동시에 몸은 김명식은 추적자 중심으로 운영한 강초원보다 화력에서 우위를 점했고 그대로 경기를 끝내버렸습니다.
흔히 다전제를 판짜기 싸움이라고 부릅니다. 매 세트 의미가 있다는 뜻인데요. 각기 다른 세 번의 페이크로 판짜기에 성공한 김명식은 강초원의 머리 속을 백지 상태로 만들어버리면서 3대0 완승을 거뒀습니다.
KT 롤스터 시절 우주관문 유닛을 적극적으로 쓰면서 '명식류'라고 불렸던 김명식은 이제 머리를 쓰는, 또 다른 방식의 '명식류'를 창조해냈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