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도 항상 그렇듯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GSL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 최근에 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 하고 있는 원이삭의 성공 비결을 듣기 위해 원이삭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원이삭 특유의 발랄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인간 원이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자는 인터뷰를 하다가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눈물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원이삭의 마음 속에는 슬픔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가 이를 악물고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는 이유 역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원이삭의 악동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과연 인간 원이삭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원이삭이 앞으로 꿈 꾸는 미래는 무엇일까요? 오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고일 수밖에 없는 원이삭의 조금은 다른 고백을 함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GSL 결승 마지막 세트 채팅, 웃음 속에 감춰졌던 눈물
원이삭과 만나자마자 나눈 첫 대화는 얼마 전 열린 GSL 결승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승현과 맞대결에서 원이삭은 마지막 세트에서 이승현에게 항복을 선언하면서 '축하한다, 챔피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팬들은 챔피언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원이삭에게 박수를 보냈고 감동을 느꼈죠. 지금도 그 채팅은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다들 이승현이 무난하게 이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저는 그 예상을 깨기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래서 7세트까지 승부가 이어졌고요. 7세트에 들어가기 전 '(이)승현이가 올인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었죠. 속으로 만약 올인을 하면 그 담대함을 인정하겠다는 생각으로 올인 배제 전략을 준비했어요."
하지만 원이삭의 예상은 빗나갔고 이승현은 초반 빠른 산란못 빌드를 사용해 결국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원이삭은 이승현에게 챔피언으로서 예우를 채팅으로 보여줬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원이삭은 우승자보다 더 멋진 준우승자로 기억됐습니다.
GSL에 10번 넘게 도전하면서 결승전에 처음 올라간 원이삭은 실력과 매너 모두 인정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보였지만 원이삭은 남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우승하고 싶었던 원이삭은 꿈을 이루지 못한 슬픔에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맨 앞줄에서 환하게 웃어 주시는 어머니를 보며 원이삭은 가슴으로 수 만 방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 눈 앞에서 꼭 보여주고 싶었던 아들의 우승이었지만 그 꿈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원이삭에게 어머니는,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프로게이머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환하게 멋진 준우승을 차지했던 원이삭이었지만 뒤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눈물을 삼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꼭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원이삭. 그가 유독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프로게이머들 대부분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기도 했지만 원이삭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어 보였죠.
조심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원이삭은 순간 진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고마움과 죄송함이 뒤섞이면서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어렸기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것이 우리 삶에, 우리 가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몰랐죠. 철없이 힘들어 하는 어머니를 앞에 두고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떼를 썼어요. 어머니께서는 끝까지 반대하시다가 결국 포기를 하셨죠. 그때는 내 꿈을 이뤘다고 마냥 기뻐했어요."
원이삭은 어느 순간 아버지 없이 두 형제를 키워내기 위해 어머니가 감내해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나와 숙소 생활을 하면서 밖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자신을 키웠는지, 왜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을 반대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하는 고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달은 것입니다.
"어느 날 문득 어머니 어깨가 너무나 작아 보였어요. 그리고 내가 그동안 돌아가신 아버지께, 지금 살아계신 어머니께 얼마나 불효를 했는지 깨닫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회에 나와보니 어머니 혼자서 우리를 키우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으로 느끼게 된 거죠."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깨달아 갈 때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내드렸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커졌습니다. 중학교 1학년,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이에 간암으로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했던 원이삭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지도 몰랐죠. 그냥 그렇게 떠나 보냈던 철없는 제 모습이 아직도 후회되고 바보 같아요."
지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끼고 있는 원이삭.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원이삭은 더욱 이를 악 물었습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꿈이 곧 나의 꿈
원이삭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며 눈물을 머금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원이삭은 "어머니의 꿈과 나의 꿈이 같기 때문에 내 꿈을 이루게 되면 효도도 할 수 있게 된다"고 답했습니다. 원이삭과 원이삭의 어머니가 함께 원하는 꿈은 과연 무엇일까요?
"국내리그에서 우승하는 거에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가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무대에서 우승하는 것. 그래서 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아무리 많은 우승을 차지해도 아직도 목이 마를 수밖에 없죠. 정작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께는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승현과의 GSL 결승이 원이삭에게는 더욱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승현에게 패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닌, 어머니가 경기장에서 관전할 수 있는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인 것이죠. 하지만 원이삭에게는 아직 더 많은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를 초청해 눈 앞에서 아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 드린다면 아마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행복해 하실 것이라 생각해요. 국내 리그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그때는 웃으며 은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일찌감치 깨닫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효도를 하고 있는 원이삭. 하지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어머니의 꿈을 이뤄 드릴 수 있도록 원이삭은 오늘도 독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연습에 몰두합니다.
◆"웃으며 떠나고 싶어요"
원이삭은 인터뷰 말미에 '은퇴'라는 단어를 언급했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원이삭에게는 아주 낯선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원이삭은 "나의 꿈이자 어머니의 꿈인 국내 리그 우승을 하게 되면 왠지 은퇴할 것 같다"며 충격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물론 박수칠 때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이삭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죠. 원이삭도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최고의 위치에서 명예롭게 은퇴하는 모습은 원이삭이 꿈꾸는 프로게이머의 마지막입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은퇴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겠죠(웃음)? 하지만 왠지 국내 리그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프로게이머를 그만할 것 같아요. 사실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뛰지만 꿈을 이루고 난 후에는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원이삭은 그동안 팬만큼 많은 안티팬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 다소 거친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원이삭이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에게 쏟아진 악플과 비판의 목소리들을 오롯이 견디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었나 봅니다.
"예전 스타테일에 있을 때 '투신' (박)성준이형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성준이형이 '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가 되려면 성적과 함께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죠. 강한 도발도 좋고 자신감 표출도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성적만 잘 내는 선수보다는 성적도 잘 내고 팬들도 즐겁게 해주는 선수가 훨씬 주목 받게 되고 또 그 관심으로 인해 더 잘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원이삭은 '독한' 발언에 대해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심하게 고통 받는 선수들이 생겨나면서부터였죠.
"처음에는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나를 어필할 수 있어서 시작했던 '악동'짓이 점점 수위가 세졌죠. 팬들은 항상 재미를 기대했고 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적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영호 선수에게는 미안해요. 아차 싶었는데 이미 멀리 와 버렸더라고요. 이제는 적정선을 지키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점점 더 성숙해가는 원이삭은 자신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꿈, 나아가서는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팬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연습에 임합니다. 그저 까불거리기만 하는 원이삭이 아닌 승부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싶기에 어떤 프로게이머와 견주더라도 뒤지지 않는 성실한 자세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 드려요. 특히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요.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이제는 '악동' 이미지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진심어린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릴게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생각보다 힘들고 슬픈 일을 많이 겪으며 살아왔던 원이삭.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이 '악동'의 이미지 보다는 모범적인 청년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봅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