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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포인트] 도대체 이승현이 뭘 못한거지?

진에어 그린윙스 테란 조성주.
진에어 그린윙스 테란 조성주.
KT 롤스터 저그 이승현.
KT 롤스터 저그 이승현.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5 시즌 2라운드 플레이오프 진에어 그린윙스와 KT 롤스터의 대결에서 많은 스타2 팬들이 원하는 매치업이 성사됐습니다. 1997년생 개인리그 우승자들의 대결인 진에어 조성주와 KT 이승현의 대결이었지요.

조성주와 이승현은 임요환과 홍진호의 '임진록', 최연성과 박성준의 '투괴록', 이영호와 이제동의 '리쌍록'의 뒤를 이을 테란과 저그의 라이벌 대결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매치업 이름은 '97록'이 대세이고 개인적으로 밀고 있는-그런데 아무도 동의를 해주지 않고 있는-'이조실록'이 있습니다. 슬프네요.

조성주와 이승현의 상대 전적을 살펴보면 라이벌 구도라고 하기에는 이승현이 일방적으로 앞서고 있습니다. 군단의 심장 기준으로 이승현은 조성주를 맞아 세트별 전적에서 9대6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조성주와 이승현의 공식전 상대 전적은 9대6으로 이승현이 앞서 있다.(자료=팀리퀴드 발췌)
조성주와 이승현의 공식전 상대 전적은 9대6으로 이승현이 앞서 있다.(자료=팀리퀴드 발췌)

세부적으로 보면 2013년 GSTL에서 승리했고 2014년 3월에 열린 GSL 시즌1 코드S에서 첫 대결에서는 조성주가 이겼지만 최종전에서는 이승현이 2대0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도 이승현이 승리했고 2월에 열린 IEM 시즌9 타이페이 대회 결승전에서는 이승현이 1대3으로 뒤처지다가 4대3으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우승했죠. 다전제에서 GSL 1차전에서 패한 것을 제외하면 이승현이 모두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성주와 이승현의 프로리그 2라운드 플레이오프 대결(영상=네이버 tv캐스트 발췌).

◆조성주가 메카닉을 고른 이유
조성주는 이승현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메카닉을 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단 '조난지'라는 맵의 특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경기가 치러지기 전까지 '조난지'에서 펼쳐진 프로리그 경기들을 보면 저그가 4대3으로 미세하게 앞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난지'는 저그 맵입니다.

조성주와 이승현의 경기가 펼쳐지기 전에 발표된 맵 전적. '조난지'에서 저그 동족전이 6번이나 성사됐다.(자료=한국e스포츠협회 제공)
조성주와 이승현의 경기가 펼쳐지기 전에 발표된 맵 전적. '조난지'에서 저그 동족전이 6번이나 성사됐다.(자료=한국e스포츠협회 제공)

한 맵이 어느 종족에게 유리한지 알 수 있는 데이터가 바로 동족전 횟수인데요. 이 맵에서 프로토스와 테란의 동족전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그 간의 대결은 무려 6번이나 나왔고요. 이 데이터는 한 맵에 특정 종족을 골라서 출전시킬 수 있는 프로리그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대부분의 팀들이 '조난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베스트 종족을 저그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풀이해도 됩니다.

조성주는 1대2로 뒤진 4세트에서 주성욱을 제압하기 위해 진에어가 꺼낸 카드입니다. '세종과학기지'에 출전해서 밴시로 견제한 뒤 공성전차와 해병으로 압박하고 의료선으로 마무리하면서 깔끔하게 승리를 따냈지요.

이 엔트리를 구사할 때 진에어 코칭 스태프의 고민은 바로 '조난지'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승현이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조성주가 '조난지'를 소화할 경우 어떤 방법으로 저그를, 그것도 최고의 저그라 꼽히는 이승현을 잡아낼지 머리를 맞대어 고민했고 조성주와는 다소 맞지 않는 스타일일 수 있는 메카닉을 택했습니다.

조성주가 구축한 메카닉 체제.(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조성주가 구축한 메카닉 체제.(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조성주의 특기는 종족을 불문하고 의료선을 활용한 기동전입니다. 해병과 불곰을 의료선에 태우고 애프터 버너를 쓰면서 상대의 아픈 곳을 치고 다니는 플레이를 좋아합니다. 저그를 상대할 때면 초반에 의료선 흔들기를 시도하다가 후반으로 넘어갔을 때 땅거미지뢰 정도를 추가하는 하는 정도의 변화만 주죠.

하지만 이승현을, '조난지'에서 만났을 때에는 다른 카드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메카닉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최선을 다했다
'97록'의 경기 내용으로 들어가보죠. 이승현은 저글링 찌르기를 시도했지만 조성주가 건설로봇으로 정찰해낸 뒤 발 빠르게 앞마당 지역에 벙커를 지은 탓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조성주의 체제를 알지 못했던 이승현은 모르는 조성주의 화염차 찌르기에 대비해 저글링의 대사촉진 진화 업그레이드를 완료했고 화염차의 존재를 확인한 이후에는 다수 생산했습니다.

조성주의 화염차가 이승현의 본진에 대거 난입했지만 이승현이 일벌레를 2기만 잃으며 슈퍼 세이브를 해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조성주의 화염차가 이승현의 본진에 대거 난입했지만 이승현이 일벌레를 2기만 잃으며 슈퍼 세이브를 해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멋진 장면이 수 차례 나왔지만 앞 부분에서 대박은 지옥불 화염차를 잡는 이승현의 저글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카닉으로 가닥을 잡은 조성주는 지옥불 업그레이드를 통해 저글링과 일벌레를 학살하려는 의도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이승현의 본진까지 들어와서 열심히 일벌레를 공격했지만 이승현의 놀라운 산개 능력에 두 기를 잡는 데 그칩니다. 오히려 이승현의 저글링에 포위되면서 화염차가 대거 잡히고 말죠.

조성주의 메카닉 병력이 진군하자 이승현이 살모사의 흑구름, 감염충의 진균번식을 사용하며 저지하고 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조성주의 메카닉 병력이 진군하자 이승현이 살모사의 흑구름, 감염충의 진균번식을 사용하며 저지하고 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메카닉 병력을 갖춘 조성주는 화염기갑병과 공성전차를 앞세워 중앙 쪽으로 슬슬 치고 나옵니다. 공성전차의 사거리에 맞춰 1, 2번 부대가 전진하는 방식을 취했고 이승현은 바퀴와 저글링으로 전진 속도를 늦추지요. 그리고 감염충과 살모사를 추가하면서 중앙 지역에서 교전을 시도했습니다.

군락으로 넘어간 이후 울트라리스크를 갖춘 이승현은 살모사의 흑구름과 감염충의 진균번식을 활용하면서 조성주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몇 차례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도 했고 테란의 메카닉 유닛을 줄이기도 했죠. 19분대에는 저글링과 울트라리스크로 조성주의 앞마당과 본진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조성주의 방어선을 뚫고 테란의 앞마당까지 난입했던 이승현의 저글링과 울트라리스크.(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조성주의 방어선을 뚫고 테란의 앞마당까지 난입했던 이승현의 저글링과 울트라리스크.(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그렇지만 조성주는 공성전차를 일거에 생산하면서 울트라리스크를 잡아냈고 또 다시 저지선을 갖췄지요. 그리고 이승현의 2시 확장 기지를 병력 손해 없이 파괴하면서 승기를 잡았습니다.

조성주가 밴시와 바이킹 등 공중 유닛을 추가했지만 이승현은 대공 유닛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조성주가 밴시와 바이킹 등 공중 유닛을 추가했지만 이승현은 대공 유닛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이승현은 저글링과 울트라리스크를 지속적으로 뽑으면서 조성주의 공성전차와 화염기갑병을 줄이려 했지만 자원력이 부족했습니다. 방어선을 갖춰 놓은 조성주는 바이킹과 밴시를 추가하면서 공중과 지상을 동시에 장악했습니다. 바이킹으로는 살모사를 줄여주고 밴시로는 울트라리스크와 저글링을 잡아내면서 이승현의 11시 쪽 확장 기지를 연파하고 항복을 받아냈죠.

◆이승현의 잘못은 없다
'97록'에서 조성주가 승리한 이후 스타2 관련 게시판은 불이 붙었습니다. 이승현과 조성주의 경기력에 대한 칭찬이 많았습니다만 눈에 가장 많이 띈 단어는 군단숙주였습니다. 프로리그 2라운드 7주차부터 군단숙주가 하향된 패치로 공식전이 치러지고 있는데요. 저그 선수들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군단숙주의 무용론도 함께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군단숙주의 하향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패치 이전 군단숙주는 테란의 메카닉을 상대로 저그가 시간을 끌 수 있는 유일한 유닛이었습니다. 잠복 해놓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생성되는 식충을 앞세워 테란의 전진을 막을 수 있고 자원력을 키운 이후 공중 유닛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닛이었죠. 군단숙주로 경기를 끝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군단숙주 이후의 군락 유닛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도록 시간을 끌 수 있었습니다.

만약 군단숙주가 너프되지 않았다면 조성주의 몇 기 되지 않는 공중 유닛에 이승현이 경기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만약 군단숙주가 너프되지 않았다면 조성주의 몇 기 되지 않는 공중 유닛에 이승현이 경기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이승현과 조성주의 대결이 군단숙주 너프 이전 버전으로 치러졌다면 어떤 양상이 벌어졌을까요.

이승현은 아마도 감염충 생산을 줄이고 군단숙주를 7~8기 가량 생산하면서 대치선을 구축했을 것입니다. 저글링과 바퀴로는 확장 기지로 들어오는 화염차 견제를 막았겠지요. 11시까지 부화장을 펼치는 속도가 빨라졌을 것이고 8개스, 10개스에서 채취되는 자원으로 타락귀 또는 뮤탈리스크를 생산했을 것입니다.

조성주의 대응도 달라졌을 겁니다. 바이킹 숫자를 늘렸을 것이고 밤까마귀를 섞어주면서 추적 미사일을 가동시켰을 것입니다. 국지방어기를 깔기도 했겠죠. 지상 병력은 공성전차 위주로 생산하면서 대공 유닛 중심으로 모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그가 군단숙주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성주는 굳이 공중 유닛을 대거 뽑을 필요는 없었죠.

군단숙주를 너프시키면서 블리자드는 밤까마귀의 국지 방어기의 유지 시간을 줄이면서 하향시켰습니다. 하지만 군단숙주라는 주력 유닛의 너프와 보조 유닛인 밤까마귀의 너프가 갖는 체감적인 차이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이승현이 군단숙주를 뽑기는 했다. 하지만 테란의 진군을 막기 위한 일시방편일 뿐이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이승현이 군단숙주를 뽑기는 했다. 하지만 테란의 진군을 막기 위한 일시방편일 뿐이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이승현이 군단숙주를 뽑기도 했습니다. 조성주의 압박이 심하게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자원을 쏟다 보니 군단숙주까지 동원해야 했던 거죠. 한 차례 식충을 던지고 공성전차와 화염기갑병에 의해 산화되는 군단숙주를 보면서 이승현을 포함한 저그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승현의 경기력에는 문제도, 잘못도, 오판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주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모두가 기대하고 고대하던 '97록'의 재미를 떨어뜨린 건 게임 개발사인 블리자드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블리자드가 현재 상태의 군단숙주를 되돌릴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군단의 심장이 서비스된지 2년 정도 지나면서 선수들이 어렵사리 맞춰 놓은 밸런스를 블리자드가 망가뜨린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됩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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