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에서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선수들이 꽤 있다. 2014년 CJ 엔투스에서 솔로미드로 자리를 옮긴 '러스트보이' 함장식이 대표적이다. 함장식이 합류하면서 솔로미드는 북미 지역 서머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8강에 오르는 등 팀과 선수 모두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자 한국 선수들이 속속 미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피글렛' 채광진, '임팩트' 정언영 등 유명 선수들을 포함해 현재 20여 명 정도가 미국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비단 선수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의 미국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솔로미드의 코치로 '로코도코' 최윤섭이 뛰고 있고 임펄스에는 김상철이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최윤섭과 김상철이 코치라면 감독으로 미국에서 뛰고 있는 사람도 있다. CJ 엔투스 프로게임단의 감독을 역임했던 김동우 감독이다. 김 감독은 2012 시즌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CJ 엔투스를 우승시킨 명장. 2013년 CJ 엔투스를 나온 김동우 감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외국으로 눈을 돌렸고 미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인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 이하 TDK)를 만들어 챌린저 시리즈를 통과 챔피언십 시리즈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LoL, 미국, 모험적
2013년 CJ 엔투스를 떠난 김동우 감독은 e스포츠계에서 누구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1년 동안 암중모색하면서 새 아이템을 준비하던 김 감독에게 흥미로운 제안이 왔다. 미국에서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던 사람들로부터 러브콜이 온 것. 미국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을 꾸리고 북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LCS)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는 기업 프로게임단 체제가 확고했기에 치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지만 미국은 이제 막 시스템을 갖춰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김 감독은 도전 의지가 불끈 솟아났고 오케이 사인을 했다.
김 감독의 첫 미션은 선수들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CJ에서 감독직을 맡았을 때 LoL 팀의 초창기 세팅 과정을 알고 있었던 김 감독에게 팀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2014년 10월 한국 선수들로 5명을 구성했고 미국으로 날아갈 준비까지 마쳤다. 순탄하게 마무리되려는 순간 비보가 날아들었다. 라이엇게임즈가 외국 국적 선수가 뛸 수 있는 한계를 2명으로 줄인 것.
"미국 쪽에서 중국 선수 5명으로 팀을 꾸렸던 LMQ의 사례까지 들면서 한국 선수들로 5명을 다 구성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월드 챔피언십이 끝난 이후에 인원 구성 규정이 바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한국 선수 5명을 맞췄죠. 티켓까지 다 끊어 놓았는데 청천벽력이 떨어진 거죠."
김 감독은 3명의 선수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함께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선수가 필요한 국내 프로게임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해줬다. 미국에 가겠다고 확고하게 마음을 먹은 선수들과 미국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CLG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세라프' 신우영이 1년 이상 LCS에서 뛰면서 국적과 상관 없이 활동할 수 있었어요. 나머지는 미국 현지에서 시민권이 있는 선수들과 접촉해서 팀을 완성했죠."
그래도 여건은 불안했다. 리그를 한참 뛰고 있는 타이밍에 '미소' 김재훈을 커즈게이밍이 영입해가면서 위기를 맞았고 서포터 케빈 권 또한 다른 팀으로 옮기면서 불안불안하게 리그를 치렀다. 모든 것이 모험이었다.
◆당황스러웠던 룰
김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LCS는 선수 영입에 대해 당황스런 룰을 갖고 있다. 시즌 중에 언제든지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다는 규정이지만 하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팀들에게는 가혹한 규정이기도 하다.
상위 리그인 LCS에 속한 팀은 하부 리그인 챌린저 시리즈에서 뛰고 있는 팀의 선수와 마음만 맞으면 빼갈 수가 있다. 하지만 하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팀은 LCS 선수를 영입할 수가 없다. 상위 리그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하부 리그 팀들은 주축 선수 한 명이 빠지면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기도 한다고.
"솔로미드의 하부 팀인 TSM 다크니스라는 팀이 있어요. 챌린저 시리즈 스프링에서 초반에 성적이 좋았는데 정글러 'Azingy' 앤드류 자마리파를 디그니타스에서 영입한 거에요. TSM 다크니스는 그 뒤로 성적이 급전직하하면서 4강에도 들지 못했어요. 강력한 우승 후보였는데 말이죠."
김 감독의 팀인 TDK가 겪은 사례도 있다. 팀의 초창기 미드 라이너를 맡고 있던 김재훈이 커즈 게이밍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이적료까지 주겠다고 제안했기에 TDK는 김재훈을 이적시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지만 커즈 게이밍이 리퀴드와 합병되면서 이적료에 대한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다. 법인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전에 합의했던 내용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북미 지역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까 이제는 당황스럽지도 않더라고요. 선수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라이엇게임즈의 방침이니까 따라야죠. 하지만 하부 리그에 있는 팀들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북미 LCS 제패한 첫 한국인 감독 되겠다
김동우 감독이 이끄는 TDK는 며칠 전 서머 시즌에 나서는 팀을 가리는 승강전에서 윈터폭스를 3대1로 꺾으면서 LCS 진입에 성공했다. 에네미 e스포츠와의 챌린저 결승에서 이겼다면 당장 올라갔겠지만 패했고 승강전까지 경험하면서 LCS에 올라갔다.
김 감독은 새로운 기록을 썼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미 LCS 본선에 올라간 팀을 지도하는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 한국인이 코치로 활동하면서 팀을 우승시킨 사례는 있었지만 한국인이 이끄는 팀이 LCS에 오른 것은 최초다.
김 감독의 목표는 한국인 최초의 북미 LCS 우승 감독이 되는 것이다. 서머 시즌부터 LCS에 참가하는 TDK는 솔로미드, 클라우드 나인 등 내로라하는 팀들을 상대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과제가 있지만 김 감독은 자신 있다.
"이번 서머 시즌에 우승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2년 안에는 TDK를 북미 LCS의 정상에 올려 놓겠습니다."
김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는 e스포츠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잡아 놓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서서히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미국을 표현할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하잖아요. 한국에서 e스스포에 대한 기본기를 배웠고 이를 미국에 접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요."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