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핀포인트' 작성이 뜸했습니다. 5월 초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인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에 취재를 다녀 오느라 스타크래프트2 경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시청하려 했더니 외국에서 접속했다면서 차단 메시지가 뜨더라고요. 그래서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인 이지훈의 경기력에 관해 핀포인트로 대체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1주일이 됐는데요. 아직도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졸립고 정작 자야 할 때에는 눈이 번쩍 떠지는 등 애를 먹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시차는 별 것 아니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핀포인트에서는 시차 적응이 안된 저의 졸음을 한 번에 날려 버린 경기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19일 열렸던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5 3라운드 2주차 진에어 그린윙스와 스베누의 경기에서 나온 역대급 명경기였는데요.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아~'하고 무릎을 탁 치실 것입니다.
바로 진에어 조성주와 스베누 김명식의 대결입니다.
◇조성주와 김명식의 명경기.(영상=네이버 TV캐스트 발췌)
◆자원낭비였던 3연속 4지뢰 드롭
'데드윙'에서 펼쳐진 조성주와 김명식의 경기에서 김명식은 11시, 조성주는 5시에 위치했습니다. 대각선의 위치이기 때문에 테란의 전매 특허인 초반 의료선 견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만 조성주는 대놓고 드롭을 시도했습니다.
사신으로 김명식이 우주 관문을 건설했고 예언자를 생산하고 있음을 확인한 조성주는 모든 병력을 수비에 동원했습니다. 군수공장에 반응로를 부착한 조성주는 땅거미지뢰를 2기씩 생산했고 의료선은 한 기씩 뽑으면서 견제를 노렸지요.
첫 드롭은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12시를 경유해 김명식의 앞마당에 떨어진 지뢰 4기는 추적자 1기를 잡아내는 데 그쳤습니다. 김명식이 관측선을 대동한 상태에서 조성주의 의료선이 보이자마자 탐사정을 빼돌렸고 광자과충전으로 지뢰의 체력을 대부분 빼놓았죠. 그동안 불사조 3기를 모은 김명식은 중력자광선으로 지뢰 3기를 차례로 들어 올리면서 제거했습니다. 의료선은 덤이었죠.
조성주는 의료선이 불사조에 의해 공격 당하는 동안 2차 드롭을 시도합니다. 비슷한 경로로 의료선을 이동시켰고 지뢰를 떨어뜨렸지만 김명식은 관측선으로 다 보고 있었고 불사조로 똑같이 지뢰를 처리했습니다.
두 번의 드롭을 실패한 조성주는 또 다시 같은 방식으로 드롭 공격을 진행했습니다. 김명식이 불사조를 테란의 진영으로 보낼 정도로 허를 찌르긴 했지만 이미 김명식은 2기의 거신을 보유할 정도로 안정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세 번의 땅거미지뢰 드롭에 조성주가 들인 자원은 어마어마 합니다. 의료선 3기(광물 300, 개스 300)에 땅거미지뢰 12기(광물 900, 개스 300)를 투자해서 잡은 유닛이라고는 추적자 1기를 잡은 것이 전부입니다. 세 번째 드롭 때 김명식이 탐사정을 멀리 빼면서 일을 못한 것도 효과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고집스러울 정도로 땅거미지뢰 드롭으로 피해를 입히겠다는 조성주의 생각은 무리수였습니다. 일단 이 시점까지는 말이죠.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세 번의 땅거미지뢰 드롭을 모두 실패한 조성주는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땅거미지뢰에 연연하기 보다는 주병력인 해병과 불곰, 의료선에 집중하기로 했죠.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김명식의 체제가 거신과 불사조를 조합하는 소위 '거사조'였기 때문입니다.
김명식은 앞마당에 이어 두 번째 확장 기지까지 가져간 뒤 거신과 불사조를 계속 모았습니다. 하늘에는 불사조가, 땅에는 거신이 버티면서 최고의 화력을 보여주는 체제입니다. 테란이 해병과 불곰, 의료선으로 치고 들어오면 불곰을 불사조의 중력자 광선으로 들어 올린 뒤 거신과 잔여 불사조로 동시에 제거하는 공격 방식을 택합니다. 개스가 많이 들어가기에 추적자를 충원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광전사를 보조 유닛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성주는 하늘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해병과 불곰 드롭을 통해 김명식의 앞마당을 타격하면서 상대가 모아 놓은 불사조가 10기에 달하는 것을 본 조성주는 공중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을 지워 버렸죠. 대신 의료선을 여러 기 뽑으면서 잃더라도 또 뽑겠다는 생각으로 전환했습니다.
고인규 해설 위원이 "바이킹이 없으면 거신을 무엇으로 잡습니까, 못 잡아요"라고 말한 이후부터 조성주의 흔들기가 시작됐습니다. 의료선을 두 패로 나눠 견제를 시도한 조성주는 9시 지역에서 의료선 4기 분량의 병력이 불사조에게 발각되면서 모두 잡혔습니다. 그렇지만 12시로 보냈던 의료선 3기 분량의 병력은 중앙에 지어지고 있던 연결체를 취소시켰고 김명식의 두 번째 확장 기지로 내려와 연결체를 파괴시켰습니다.
2차 공격을 시도하던 조성주는 김명식의 '거사조'가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맞닥뜨리자 뒤로 퇴각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의료선 3기 분량의 병력을 우회시켜 김명식이 중앙 지역에 가져가려던 연결체를 취소시켰습니다.
김명식은 확장 기지에 목이 마르던 상황이었습니다. 1차 공격에 의해 두 번째 확장 기지가 깨졌고 2차 공격에 중앙 확장 기지가 무너지면서 자원줄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앞마당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김명식은 비싼 유닛인 거신과 불사조를 지속적으로 충원하기 힘들었습니다.
◆거신 일점사
조성주가 김명식을 두드리는 과정에서 유심히 봐야 하는 장면은 거신을 꼭 한 기 이상 잡아내는 모습입니다. 1차 공격에서 연결체를 파괴한 이후 잔여 병력이 생존하자 조성주는 퇴각시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살아가지 못할 병력이라 생각이 들자 일점사를 통해 거신을 잡아냈습니다.
2차 공격에서도 2기의 거신을 줄여준 조성주는 앞마당으로 들어간 3차 드롭에서도 광자포를 파괴한 이후 여유가 되자 거신을 일점사하면서 줄였습니다.
초반에 7기까지 모였던 김명식의 거신은 점차 숫자가 줄어들었고 20분대에는 4기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다급해진 김명식은 로봇공학시설을 하나 더 지으면서 거신을 충원해야 했습니다.
우주관문 2개와 로봇공학시설 2개를 동시에 운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원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는요. 하지만 김명식은 동시에 8개스를 운영해본 적이 없습니다. 조성주의 견제로 인해 2개의 확장 기지만 돌아가야 했고 이 시점에는 앞마당이 말라버렸죠.
극적인 장면은 21분에 펼쳐집니다. 병력을 9시로 보낸 조성주는 불사조와 거신에 의해 병력이 잡혔지만 그냥 두고 봅니다. 핵심은 중앙으로 걸어가던 병력이었는데요. 불사조와 따로 떨어져 거신 4기와 광전사만이 원대 복귀하려 하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거신 4기를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띄엄띄엄 매설한 땅거미지뢰 2기가 불사조에 연거푸 들어가면서 체력을 붉은색으로 만들면서 조성주가 승기를 잡았죠.
◆모방 금지
눈엣가시 같았던 불사조의 체력이 빠져 버리자 조성주는 마음껏 김명식의 기지를 누볐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업그레이드된 불곰을 앞세워 치고 들어갔고 연결체만 파괴하고 나왔습니다. 추가 병력을 전장에 동원하면서 컨트롤하지 않고 싸웠죠. 프로토스는 자원을 수급할 곳이 없었고 조성주는 3시까지 사령부를 안착시킨 상황이었습니다. 지게로봇 투하 세리머니도 시행하면서 조성주는 승리를 확정지었습니다.
고인규, 유대현 해설 위원은 경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테란이 바이킹을 뽑지 않고 어떻게 거사조를 이길 수 있죠?", "조성주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입니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조성주만 할 수 있는 플레이로 보입니다. 동시에 두 방향 견제를 시도하는 것은 테란의 기본이 됐습니다만 조성주의 플레이 안에는 차별점이 눈에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프로토스 유닛의 이동 속도를 감안한 시간차 공격입니다. 김명식이 거신과 불사조 체제를 운영하면서 간과한 부분은 두 유닛의 속도 차이가 현저하게 난다는 점입니다. '불사조를 많이 모았고 거신도 쌓여가고 있으니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성주는 두 유닛의 속도 차이를 예리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9시 지역으로 의료선을 보낸 뒤 조성주는 중앙 또는 12시로 의료선을 한 패 보냅니다. 불사조가 기분 좋게 9시로 이동하던 병력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12시의 병력은 프로토스에게 피해를 줍니다. 연결체를 취소시키든지, 거신을 한 기라도 잡든지 조금씩 갉아 먹습니다.
21분에 펼쳐진 교전이 속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인데요. 김명식이 9시를 막기 위해 거신과 불사조를 동시에 보냈고 성공적으로 막는 듯했습니다. 그렇지만 중앙으로 돌아가는 동안 거신은 느릿느릿 이동했고 불사조는 정찰을 위해 9시에 머무른 그 찰나에 조성주는 거신 4기를 잡아내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속도의 차이는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요소가 아닙니다. 조성주가 연습을 하면서 몸으로 체화시킨 부분입니다. 수많은 연습 속에서 발견한 해법을 통해 조성주는 프로토스전에서 또 다시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으로 조성주의 프로토스전 승률은 또 높아졌는데요. 3월 이후 프로토스전 24세트 중에 20세트를 이기면서 승률 83.3%를 달성했습니다. 이 중에 백동준에게 프로리그에서 패한 것을 제외하면 다전제에서 조성주가 프로토스에게 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