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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포인트] 아나키, 영민하면서도 거친 녀석들

아나키 선수들이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아나키 선수들이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삼성과의 롤챔스 1R 5주차서 패기 속 계산된 스플릿 정석 선보여

스플릿 푸시라는 단어가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등장한 지 꽤 됐습니다. 2012년 처음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한국에서 리그로 진행되면서 5대5 싸움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는 객원 해설자로 잠시 등장했을 때 1-3-1, 1-4 등 포메이션을 설명하면서 스플릿 푸시라는 단어를 리그 오브 레전드에 접목시켰죠.

스플릿 푸시는 잘 큰 하나의 챔피언이 한 개의 라인을 밀어붙이는 일을 뜻합니다. 단순히 한 명의 챔피언이 가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붙는데, 1대1로 승부로 이 챔피언을 막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성장해야 할 것, 다른 3~4명이 다른 쪽을 강하게 압박해야 할 것 등의 요건이 충족돼야만 합니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열린 스베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5 서머 1라운드 5주차 아나키와 삼성 갤럭시의 2세트에서 아나키는 스플릿 푸시의 정석을 보여줬습니다.

'미키갓' 손영민의 제드가 스플릿 푸시를 통해 경기를 지배했는데요. 어떤 식의 운영법이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아나키는 삼성의 아지르를 확인한 뒤에 제드를 택하면서 스플릿 푸시를 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습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아나키는 삼성의 아지르를 확인한 뒤에 제드를 택하면서 스플릿 푸시를 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습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잘 큰 제드
삼성과의 2세트에서 손영민의 제드는 킬을 챙기면서 순조롭게 성장했습니다. 중앙 지역에서 맞상대했던 선수는 이번 시즌에 데뷔한 신예 '크라운' 이민호였는데요. 이민호는 아지르를 가져갔지요. 챔피언 선택과 금지 과정에서 삼성이 먼저 아지르를 꺼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영민은 제드를 택했습니다. 대놓고 스플릿 푸시를 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손영민의 제드는 라인전 단계에서 이민호의 아지르를 상대로 전혀 뒤지지 않았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멀리서 표창을 던지면서 데미지 교환을 했죠. 9분경에는 이민호의 아지르의 체력을 빼놓으면서 먼저 본진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손영민의 제드와 남태유의 렉사이가 만들어낸 퍼스트 블러드.(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손영민의 제드와 남태유의 렉사이가 만들어낸 퍼스트 블러드.(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아지르가 본진으로 간 사이 손영민은 삼성의 붉은 덩굴 정령 자리로 숨어 들어갑니다. 정글러 '리라' 남태유의 렉사이와 동반해 잠복해 있던 손영민은 순진하게 들어오던 삼성의 정글러 '이브' 서준철의 그라가스를 잡아냈습니다. 궁극기인 죽음의 표식까지 쓰면서 말이죠.

상단으로 이동한 손영민의 제드가 전익수의 헤카림과 함께 럼블을 잡아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상단으로 이동한 손영민의 제드가 전익수의 헤카림과 함께 럼블을 잡아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퍼스트 블러드를 가져간 손영민의 제드는 18분에 상단 지역으로 이동해서 '큐비' 이성진의 럼블을 두드렸습니다. 이번에는 몰락한 왕의 검, 주문 포식자, 야만의 몽둥이를 들고 있었기에 궁극기와 스킬 연계만으로 잡아낼 수 있었지요.

하단 지역으로 이동한 아나키 선수들이 바드를 잡아내는 장면.(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하단 지역으로 이동한 아나키 선수들이 바드를 잡아내는 장면.(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20분에 손영민의 제드는 하단으로 내려갑니다. 전익수의 헤카림, 남태유의 렉사이와 함께 포탑 사이로 밀고 들어간 손영민의 제드는 '루나' 장경호의 바드를 타킷으로 삼았습니다. 장경호가 탈진을 들고 있었지만 손영민은 궁극기를 쓰면서 잡아냈습니다.

4분 뒤에 삼성 이성진의 럼블을 잡아내면서 팀이 기록한 5킬 가운데 4킬을 가져간 손영민의 제드.(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4분 뒤에 삼성 이성진의 럼블을 잡아내면서 팀이 기록한 5킬 가운데 4킬을 가져간 손영민의 제드.(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24분에는 하단 지역 포탑을 지키기 위해 홀로 보초를 서고 있던 이성진의 럼블을 또 다시 잡아냈습니다. 뒤쪽에 이민호의 아지르가 버티고 있었고 황제의 진영에 부딪혔지만 운 좋게도 럼블 쪽으로 토스되면서 킬을 냈지요. 아나키가 가져간 5킬 가운데 4킬을 손영민이 가져가면서 완벽하게 성장했습니다.

◆드래곤과 포탑의 맞교환
아나키가 스플릿 푸시를 해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배경은 바로 포탑 철거 숫자에서 앞섰다는 점입니다. 아나키는 드래곤을 과감히 포기하고 포탑을 깨뜨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25분경 아나키는 삼성에게 드래곤을 내주면서도 상단 외곽 2차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손영민의 제드와 전익수의 헤카림이 교대로 상단 지역을 압박하면서 만들어낸 결과였는데요. 이 선택으로 인해 아나키는 삼성에게 두 번째 드래곤까지 주고 말았죠.

아나키는 5대5로 정면 대결을 해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5대5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드래곤을 절대로 내줘서는 안되는데 와드만 설치했을 뿐 드래곤 지역으로는 이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성이 드래곤을 두드리고 있을 때 전익수의 헤카림은 포탑을 열심히 깨뜨렸죠.

삼성이 두 번째 드래곤을 가져갈 때 상단 2차 포탑을 파괴한 아나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삼성이 두 번째 드래곤을 가져갈 때 상단 2차 포탑을 파괴한 아나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이 선택은 스플릿 푸시를 위한 발판이 됐습니다. 드래곤 처치 횟수는 5번이 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포탑을 깨면 평균적으로 1,000 정도의 골드가 팀에게 돌아갑니다(포탑마다 돈을 주는 양이 다르고 기여한 선수들에게도 차등 지급됩니다). 드래곤은 경험치도 없고 골드도 주지 않습니다. 물론 사냥 횟수마다 효과가 주어집니다만 5중첩 때 발생하는 위상 효과가 두려울 뿐, 4중첩까지는 아이템으로 버틸 만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첫 바론 사냥에 성공한 아나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첫 바론 사냥에 성공한 아나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또 하나의 핵심은 첫 내셔 남작을 아나키가 가져갔다는 사실입니다. 삼성이 아나키의 중앙 지역을 밀어붙였고 아나키가 받아치면서 대치전을 치른 뒤 아나키는 내셔 남작 쪽으로 타깃을 돌렸습니다. 손영민의 제드가 중앙 지역을 홀로 지키는 도중 4명이 사냥에 성공했고 바론 버프를 달았죠. 바론 버프를 달고 치른 첫 전투에서 아나키는 손영민의 제드가 무리한 공격을 통해 잡히긴 했지만 네 명이 버프를 달고 있었죠.

손영민이 하단 지역을 밀어붙일 때 정글러 남태유의 렉사이가 와주면서 미니언에게 바론 버프를 전해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3명은 중앙 지역을 밀었고 전익수의 헤카림이 상단, 손영민의 제드가 하단을 계속 두드렸습니다.

◆스플릿 푸시는 우직함이 관건
스플릿 운영의 핵심은 선수들의 호흡입니다. 의사소통이 정확히 이루어져야 하며, 상대의 위치를 알려주어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5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죠. 아나키는 의사 소통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마추어답지 않은 완성도 높은 스플릿 운영을 선보였습니다.

손영민의 제드가 삼성의 하단 지역을 우직하게 밀고 있습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손영민의 제드가 삼성의 하단 지역을 우직하게 밀고 있습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이 경기의 분수령이었던 42분경 삼성의 마지막 공격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흡사 스타 크래프트의 엘리미네이트 싸움 양상을 떠올릴 정도로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한 순간이었죠. 삼성은 아나키의 스플릿 운영에 끌려다니는 것보다 게임을 끝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스플릿 운영에 집중하던 제드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샤이' 박상면이 그랬던가요? 스플릿은 우직하게 해야 한다고. 손영민은 그대로 하단 억제기를 철거하고 쌍둥이 타워 하나를 밀었습니다. 아나키의 선수들은 손영민이 포탑을 깰 시간을 벌어주려고 죽지 않는 선에서 상대의 귀환을 야금야금 방해하고 있었을 뿐이었죠.

아나키의 중앙 지역 억제기가 깨지는 와중에도 미니맵의 노란 원 안을 보면 손영민의 제드가 삼성의 하단 억제기를 깨고 있습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아나키의 중앙 지역 억제기가 깨지는 와중에도 미니맵의 노란 원 안을 보면 손영민의 제드가 삼성의 하단 억제기를 깨고 있습니다.(사진=네이버 TV캐스트 캡처)


일단 삼성 '루나' 장경호의 바드가 먼저 귀환해 운명의 소용돌이로 쌍둥이 타워 하나를 지켰습니다. 문제는 다음이었습니다. 눈치만 보면서 귀환을 방해하던 아나키가 갑자기 공격 태세로 돌변한 것이지요. 흡사 때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게릴라 부대처럼 귀환할 곳을 찾기 위해 진영이 무너진 삼성의 뒤를 치면서 결국 3억제기를 모두 철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경기는 여기서 끝난 셈이죠.

아나키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아나키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영민하면서도 거친 녀석들
개인적으로 아나키에게 '거친 녀석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을 만큼 화끈한 경기였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아나키는 제드를 중심으로 스플릿 푸시를 하겠다고 나섰고 삼성은 이를 막기 위해 이민호와 장경호가 탈진을 2개나 들었습니다. 만약 대규모 교전을 펼쳤다면 손영민의 제드가 아무리 잘 컸어도 2킬 이상 해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나키는 이러한 약점을 거친 공격과 과감한 선택을 통해 장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제드, 헤카림 등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데미지 밸런스가 무너지는 AD 조합이기 때문에 삼성의 대응에 막힐 수 있었지만 스플릿 푸시를 했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아나키는 자신의 중앙 억제기가 파괴되는 순간에도 삼성의 하단 지역을 공격했습니다. 억제기와 쌍둥이 포탑을 깨고 나서야 자신의 본진으로 돌아오는 손영민의 과감함은 철저한 계산이 서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 그리고 챔피언스에서 경기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다듬어지는 상황 판단이 합쳐지면서 아나키는 2세트를 가져갔습니다.

작전의 본질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아마추어다움과 스마트한 상황 판단이 합쳐진 아나키의 경기는 분명 서머 시즌을 꼭 보게 만드는 '매력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김지원 기자 (corpulent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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