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는 기자인 저는 한타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타라는 말 대신 대규모 교전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아마 독자님들께서도 데일리e스포츠의 리그 오브 레전드 기사에서 '한타'라는 단어를 거의 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호불호 때문이라기 보다는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타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핀포인트'에서는 한타라는 단어를 꼭 써야겠습니다. 그 단어가 꼭 들어맞는 경기가 나왔기 때문인데요. SK텔레콤 T1이 스베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5 서머 시즌의 1라운드에서 9전 전승을 확정지었던 2세트 경기에서 한타라는 단어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느껴 보시지요.
◇SK텔레콤 T1과 진에어 그린윙스의 롤챔스 2세트 풀영상.(출처=유튜브)
◆낙승 예상
SK텔레콤은 1분만에 퍼스트 블러드를 만들어냈습니다. SK텔레콤 T1의 정글러 '벵기' 배성웅의 이블린이 진에어의 정글러 '체이서' 이상현의 그라가스를 물었고 이상혁의 라이즈, 장경환의 마오카이가 함께 공격을 시도하면서 킬을 만들어냈죠.
라인전에 돌입한 SK텔레콤은 배성웅과 이상혁이 진에어의 미드 라이너 '쿠잔' 이성혁의 아지르를 집중 공략하면서 체력을 빼놓았고 본진에 돌아가도록 강제했습니다. 유리하다고 판단한 이상혁은 상단으로 이동했고 '트레이스' 여창동의 럼블을 잡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성혁이 안정적으로 미니언을 사냥하도록 허용했죠.
6분부터 SK텔레콤은 묘하게 진에어에게 끌려 갔습니다. 상단으로 이동한 배성웅의 이블린이 진에어의 톱 라이너 여창동의 럼블을 쉽게 잡아낼 것 같았지만 여창동이 이퀄라이저 미사일을 절묘하게 쓰면서 배성웅을 데리고 갔죠. 여창동이 배성웅을 잡아간 덕에 진에어는 드래곤도 손쉽게 가져갔습니다.
9분대에 SK텔레콤은 미니언 사냥 숫자에서 진에어 선수들보다 앞선 선수가 장경환의 마오카이 밖에 없었습니다. 진에어가 장경환만 잡아낸다면 역전할 수 있다고 판단, 여창동의 럼블과 이상현의 그라가스, 이성혁의 아지르까지 3명이 포위 공격을 시도하면서 장경환을 잡아내려 했지만 포탑 어그로 끌기에 실패하면서 역습을 맞았습니다.
주인공은 이상혁이었죠. 장경환이 공격을 받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올라온 이상혁은 장경환이 버텨내면서 역습을 시도하자 유체화를 켰고 궁극기인 필사적인 힘까지 쓰면서 달려왔습니다. 첫 타깃인 이상현의 그라가스를 룬감옥으로 묶어 놓은 이상혁은 과부하를 넣으면서 지속적으로 공격, 잡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SK텔레콤 선수들이 정글 쪽으로 합류하면서 포탑 안쪽으로 여창동을 밀어 넣자 장경환의 마오카이가 포탑의 데미지를 받아주는 사이 합류한 이상혁의 라이즈는 또 다시 스킬 콤보를 통해 여창동을 제압했습니다. 이성혁의 아지르가 궁극기인 황제의 진영을 통해 밀어내려 했지만 점멸로 피한 이상혁은 여창동을 잡아냈고 사거리 안에 있던 이성혁의 아지르까지 배성웅의 이블린과 함께 잡아냈습니다. 킬 스코어 5대1로 앞선 SK텔레콤은 완승을 거둘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죠.
진에어의 그라가스와 럼블에 의해 추격을 당하던 배성웅의 이블린이 챔피언에 의해 데미지를 입지 않은 채 포탑에 맞아 잡힌 것도 SK텔레콤에게는 호재였습니다.
◆역전 허용
그렇지만 SK텔레콤은 곧바로 위기에 처합니다. 12분에 중앙 지역에서 미니언을 잡던 이상혁의 라이즈가 이성혁의 아지르에 의해 황제의 진영으로 밀쳐지면서 진에어 선수들의 품으로 안겼죠. 방금 전 3킬을 따내는 과정에서 유체화와 점멸을 모두 썼던 이상혁은 도망갈 방도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상혁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있던 '울프' 이재완의 케넨까지 '체이' 최선호의 노틸러스가 던진 닻줄 견인에 끌려가면서 잡혔다는 점이지요. 두 명이 잡힌 SK텔레콤은 중앙 지역 1차 포탑을 파괴당하면서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단 지역 포탑의 체력도 빠지면서 아슬아슬했던 SK텔레콤은 드래곤을 가져가면서 분위기 전환을 꾀했습니다. 일단 잘 큰 라이즈를 비롯해 트리스타나, 이블린이 모여 순식간에 일점사하면서 잡아내긴 했지만 세 방향에서 포위하고 들어온 진에어 선수들에 의해 3명이 잡히면서 킬 스코어와 골드 획득량 모두 역전당했습니다.
추격을 당하던 이상혁을 살리기 위해 순간이동을 쓰면서 넘어온 장경환의 마오카이는 운 없게도 진에어 선수들 사이에 배치된 와드를 타면서 애꿎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드래곤 중첩 숫자에서 뒤처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시도했던 용 사냥이 SK텔레콤에게 족쇄가 된 셈이었죠.
◆추격 개시
7대5로 킬 스코어에서 뒤처졌고 골드 획득량 또한 3,000 가량 격차가 벌어지자 SK텔레콤은 끊어내기를 시도했습니다. 은신형 챔피언인 이블린이 상단으로 가서 장경환의 마오카이와 함께 여창동의 럼블을 끊어낸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18분에 SK텔레콤은 또 다시 추격했습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상단으로 이동한 이블린이 전투를 걸었죠. 하지만 진에어도 그라가스를 매복시켜 놓으면서 맞받아쳤습니다. 2대2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졌고 이블린이 먼저 잡혔지만 SK텔레콤은 케넨이 합류하면서 2명을 모두 잡아냈습니다. 이재완의 케넨이 멀리에서 달려왔고 날카로운 소용돌이로 2명을 묶은 것이 효과를 발휘했죠.
하지만 같은 시간에 하단에서 라인을 밀고 있던 이상혁의 라이즈를 3명이 받아치면서 진에어도 이익을 챙겼습니다. 점멸을 쓴 뒤 룬감옥으로 묶으려 했지만 '캡틴잭' 강형우의 시비르가 주문을 풀어내는 스킬을 쓰면서 피해를 입지 않았고 노틸러스와 아지르가 합류, 라이즈를 제거하고 드래곤도 가져갔습니다.
SK텔레콤의 중앙 외곽 2차 포탑을 두드리던 진에어는 뒤쪽으로 병력을 뺐습니다. 이블린을 잡으려다가 궁극기를 2개나 썼기 때문인데요. SK텔레콤은 오버 플레이를 시도했습니다. 장경환의 마오카이가 진에어의 붉은 덩굴 정령을 가져가려다가 5명에게 둘러싸이면서 잡힌 것이지요. 맷집을 담당하던 마오카이가 잡힌 탓에 SK텔레콤은 중앙 외곽 2차 포탑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판단 미스
SK텔레콤은 추격의 고삐를 바짝 당기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듯했습니다. 25분에 내셔 남작 지역으로 이동하던 여창동의 럼블을 잡아내면서 드래곤을 챙길 기회를 잡은 것이지요. 4명이 드래곤 근처에 자리를 잡은 SK텔레콤은 장경환의 마오카이가 순간이동으로 넘어오면서 진에어 선수들의 뒤를 잡으려 했습니다.
배성웅이 드래곤 뒤쪽 수풀에 미리 깔아 놓은 와드를 타고 장경환이 넘어왔지만 엄청난 판단 실수였죠. 진에어 선수들이 드래곤을 치다 말고 장경환을 잡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마오카이와 케넨이 잡혔습니다. 그나마 드래곤을 챙기고 3명이 살아간 것은 다행이었죠. 하지만 이 판단 실수 한 번에 SK텔레콤은 진에어에게 내셔 남작을 내줬고 반격의 여지를 만들기까지 시간을 줘야 했습니다.
하단 2차 포탑을 파괴당한 SK텔레콤은 5명이 모여서 중앙 지역을 돌파했습니다. 진에어 선수들이 상단 쪽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뱅' 배준식의 트리스타나를 앞세워 중앙 1차 포탑을 깨뜨린 SK테렐콤은 2차 포탑까지 노렸습니다. 그렇지만 진에어 선수들이 허리를 끊고 들어오면서 SK텔레콤은 손해를 봤죠. 마오카이가 잘 파고 들었고 케넨의 날카로운 소용돌이도 잘 들어갔지만 럼블의 이퀄라이저 미사일에 의해 체력이 대부분 빠졌고 2킬을 허용하고 말았죠.
바론 버프를 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서 무리한 공격을 시도한 탓에 SK텔레콤은 중앙 억제기까지 깨지면서 손해를 봤습니다.
◆한타 대승
킬 스코어 14대10, 골드 획득량 5,000 차이로 끌려 가던 SK텔레콤은 32분57초에 이상혁의 점멸 한 번으로 대역전승을 거둡니다. 진에어 선수들이 중앙 지역으로 몰려 가고 있었고 최선호의 노틸러스가 이상혁의 라이즈를 확인한 뒤 점멸을 쓰면서 앞으로 나갔고 닻줄견인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지만 이상혁이 언덕 위로 점멸을 쓰면서 피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4명의 동료들이 일점사를 통해 순식간에 잡아냈죠.
진에어 선수들은 최선호가 잡히고 나자 일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도망칠 수 없었지요. 상단에서 미니언을 정리하던 장경환의 마오카이가 순간이동으로 넘어왔고 그라가스를 물었습니다. 진에어 선수들이 반격하자 SK텔레콤은 산개하면서 전투를 그만할 것처럼 페이크를 썼지요.
재교전의 불씨를 당긴 선수는 이상혁이었습니다. 진에어 선수들이 강 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수풀에 숨어 보고 있던 이상혁은 유체화를 쓰고 달렸습니다. 뒤쪽에 빠져 있던 배성웅의 이블린은 고통스런 포옹을 3명에게 적중시켰습니다. 장경환의 마오카이는 정당한 영광으로 아군의 이동 속도를 높였기에 이동 속도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죠. 배준식의 트리스타나가 앞쪽으로 로켓점프를 쓰면서 공격을 시도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진에어는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 와중에 이재완의 케넨은 날카로운 소용돌이를 4명에게 적중시키면서 대박을 냈죠.
마무리는 이상혁의 라이즈였습니다. 럼블의 이퀄라이저 미사일을 거의 맞지 않은 이상혁은 여창동의 럼블을 먼저 잡아냈고 이성혁의 아지르와 강형우의 시비르를 동시에 잡아냈습니다. 정글 쪽으로 달아난 이상현의 그라가스를 배준식의 트리스타나가 잡아내면서 SK텔레콤은 에이스를 띄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SK텔레콤 선수들 5명이 모두 살았다는 것입니다. 포탑 철거의 달인인 트리스타나만 살아 있어도 진에어로서는 위협적이었겠지만 5명 모두 살아 있었기에 진에어는 속절 없이 넥서스까지 내주고 말았죠.
◇SK텔레콤 T1과 진에어 그린윙스의 롤챔스 2세트 하이라이트.(출처=네이버 tvcast)
◆한타의 묘미
어떠십니까. 한타의 묘미가 느껴지셨나요. '대규모 교전에서 압승을 거뒀다'라는 표현으로는 다 전달할 수 없었기에 한타라는 단어를 남발하기로 했습니다. 최선호의 스킬을 이상혁이 피하면서 만들어진 1분간의 드라마를 일일이 글자로 적어내기란 쉽지가 않네요.
제 표현이 서툴고 묘사력이 떨어져서 진면목을 세세하게 전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첨부한 동영상 파일과 캡처한 사진을 보시면서 글로 전해지지 않는 놀라움과 재미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멋진 한타를 보여준 SK텔레콤 선수들에게는 9전 전승이라는 타이틀이 돌아갔죠. 2라운드에서도 좋은 경기, 멋진 장면을 보여줄 것이라 믿고요. 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진에어 선수들도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고장난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손뼉도 맞닿아야 소리가 난답니다. 한 쪽만 잘해서는 명경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