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열린 스베누 스타리그 시즌2 16강 D조 경기 보셨나요? '혁명가' 김택용이 '잉어킹' 구성훈을 상대로 캐리어를 사용하면서 화제가 된 경기가 열렸습니다.
지난 주에 '핀포인트'로 진영화가 보여줬던 캐리어가 깡통이 되어버렸던 경기를 분석했는데 김택용이 1주일만에 진수를 보여줬네요. 김택용과 구성훈의 경기는 단순히 캐리어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체제 전환이 어려운 종족 가운데 하나인 프로토스가 물 흐르는 듯한 변화를 통해 구성훈의 애를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왜 김택용이 지금까지 팬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택용이 테란을 어떻게 잡으면 되는지 보여주는 명품 플레이를 펼친 동영상.(영상=소닉TV 유튜브 발췌)
◆대박난 다크 템플러 드롭
김택용은 다크 템플러 드롭을 준비했습니다. 구성훈의 SCV가 정찰하지 못하도록 질럿과 드라군으로 입구를 막은 김택용은 확장 기지를 가져가면서 동시에 시타델 오브 아둔을 지었습니다. 드라군 한 기로 구성훈의 입구를 압박하면서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페이크를 넣을 발판은 다 마련한 셈이지요.
템플러 아카이브와 로보틱스를 동시에 건설한 김택용은 다크 템플러 드롭 최적화를 완료했습니다. 셔틀이 생산되는 순간 다크 템플러 2기가 탑승할 수 있도록 타이밍을 맞췄죠.
김택용의 드롭 경로는 구성훈의 머린 한 기에 의해 발각됐습니다. 구성훈이 벌처를 본진으로 밀어 넣으면서 마인을 매설했고 김택용의 다크 템플러 2기는 별 활약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택용은 셔틀을 동반하면서 다크 템플러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구성훈이 다크 템플러 근처에 마인을 매설하면 셔틀에 실어서 다른 쪽으로 내리는 등 테란을 귀찮게 만들었죠. SCV도 상당수 잡았고 서플라이 디폿을 파괴하면서 인구수 트러블도 만들어냈습니다.
◆아비터에 올인하지 않은 까닭
김택용은 아비터를 뽑았습니다. 김택용의 아비터는 선수 생활 때도 워낙 유명했죠. 정확하게 쓰여지는 스테이시스 필드를 비롯해 테란의 허를 찌르는 아비터 리콜은 명장면을 수없이 만들어냈습니다.
김택용은 구성훈을 상대로 또 한 번 아비터를 쓸 생각을 했습니다. 아비터는 주위의 유닛을 은폐시키기 때문에 테란에게는 엄청난 짜증을 유발하지요. 김택용이 아비터를 먼저 쓴 것은 맵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네오제이드'는 중앙 지역에 터렛을 지을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비터가 등장하면 테란은 곤욕을 치르지요.
아비터를 선택한 김택용은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리콜을 위한 마나 150이 찬 아비터를 옵저버와 함께 구성훈의 9시 확장 지역으로 보냈던 김택용은 병력을 소환하지 못하고 아비터가 잡혔습니다. 그 때 김택용은 구성훈이 사이언스 베슬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죠.
'네오제이드'에서 메카닉 유닛이 진군할 때 꼭 필요한 유닛이 사이언스 베슬입니다. 일일이 터렛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이언스 베슬을 대동하는 것이지요.
EMP를 사용할 경우 아비터의 마나를 깎아 내리는 기능을 갖고 있기에 김택용은 구성훈의 사이언스 베슬을 확인하고 곧바로 전략을 수정합니다.
◆자원은 많다! 캐리어 등장
김택용의 선택은 캐리어였습니다. 본진이 7시였던 김택용은 가져갈 확장 기지를 다 챙긴 뒤 5시 쪽으로 서서히 부대를 이동시킵니다. 아비터를 띄워 놓고 중앙에 병력을 배치하고 나서 5시에 넥서스를 짓기 시작하죠.
구성훈도 김택용의 확장 기지가 5시로 향할 것을 알아채고 드롭십에 탱크 2기를 태워 견제를 시도합니다. 5시 본진으로 두 차례 탱크 드롭이 떨어졌고 포톤 캐논을 때리기도 했지요.
이 과정에서 구성훈에게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조금 더 과감하게 드롭을 시도해서 넥서스를 때렸다면 아마도 근처에 있던 4개의 스타게이트를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탱크를 살리기 위해서였는지 소심하게 견제하면서 스타게이트를 보지 못했죠.
그 덕에 김택용은 안정적으로 캐리어를 8기까지 모았습니다. 광전사를 무리하게 테란의 진영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캐리어를 뽑을 인구수 공백을 만들기 위함이었죠.
캐리어를 최대한 늦게 보여주려 했던 김택용은 지상군으로만 전투를 시도합니다. 구성훈이 탱크와 벌처 중심으로 치고 내려오자 김택용은 응대하려는 제스처만 취하면서 아래쪽으로 퇴각했습니다. 병력 우위를 확신한 구성훈은 계속 치고 내려왔고 김택용의 캐리어를 맞닥뜨렸죠.
이 때 김택용이 살려 놓은 아비터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스테이시스 필드를 적중시키면서 탱크와 사이언스 베슬 등 구성훈 병력의 핵심을 얼려 버린 것이지요. 서서히 캐리어를 전장에 동원한 김택용은 지상군까지 충원하면서 압승을 거뒀습니다.
◆진영화와의 차이점
김택용은 캐리어에 올인하지 않았습니다. 더 뽑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지만 캐리어를 10기 넘게 생산하지는 않았죠. 지상군이 받쳐주지 않는 캐리어는 업그레이드가 잘된 골리앗에 의해 일거에 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리어로 맵 중앙에서 교전을 펼치면서도 김택용은 견제를 잊지 않았습니다. 구성훈이 가져가야 하는 확장 기지인 12시 지역에 다크 템플러를 몰래 배치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구성훈은 자원이 말라가고 있었기에 12시를 확실하게 지켰어야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크 템플러의 존재는 귀찮음을 선사함과 동시에 키보드에서 G자에 손을 가게 만드는 요인이었죠.
진영화가 10기 넘는 캐리어로 순회 공연을 하려다 확장 기지가 모두 무너진 것과 달리 김택용은 지상군, 특히 다크 템플러를 활용한 동반 견제를 통해 테란을 수월하게 요리했습니다.
2승을 거둔 김택용은 16강 D조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평생의 숙적 조일장과의 일전이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8강 진출은 이미 확정했기에 마음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테란을 상대하는 완전체의 모습을 보여준 김택용이 스베누 스타리그 시즌2에서 얼마나 멋진 장면을 더 보여줄지 기대가 되네요.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