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됐던 SK텔레콤 T1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연승 행진이 14에서 멈췄습니다. 무적함대, 폭주기관차에 비유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던 SK텔레콤의 연승에 브레이크를 건 팀은 CJ 엔투스였는데요.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CJ는 SK텔레콤을 상대로 1, 2세트를 따냈지만 내리 세 세트를 잃은 적이 있죠. 당시 CJ의 기세를 본 SK텔레콤 관계자들은 "언젠가 우리의 연승이 끊어진다면 CJ와의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4일 SK텔레콤 관계자의 우려가 현실이 됐죠.
SK텔레콤의 연승을 저지시킨 바로 그 장면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지요.
◇CJ 엔투스가 SK텔레콤 T1의 서머 전승을 저지하던 경기의 하이라이트.(영상=네이버 TV캐스트)
◆직진하는 CJ
CJ는 초반부터 크게 앞서 나갔습니다. CJ는 상단 지역으로 이동한 '트릭' 김강윤의 누누가 SK텔레콤 T1 톱 라이너 '마린' 장경환의 문도 박사에게 맞아주는 연기를 펼쳤고 '샤이' 박상면의 라이즈가 공격을 퍼부으면서 퍼스트 블러드를 가져갔습니다.
CJ는 6분에 하단으로 SK텔레콤 선수들 4명이 모이면서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스페이스' 선호산의 코그모가 잡혔지만 '뱅' 배준식의 코르키를 제압하면서 킬을 냈죠.
CJ는 17분에 중앙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신진영의 아지르가 이상혁의 트위스티드 페이트에 의해 잡혔지만 박상면의 라이즈가 합류하며 이상혁을 제압했습니다. 이어진 전투에서 홍민기의 브라움이 뇌진탕 펀치를 적중시킨 뒤 불굴로 SK텔레콤의 공격을 다 막아내면서 3킬을 추가, 7대4로 킬 스코어에서 앞섰습니다.
◆맞받아치는 SK텔레콤
CJ의 상단을 공격하던 SK텔레콤은 1대4를 시도하던 장경환의 문도 박사가 잡혔고 연이어 상단을 공략하던 이상혁의 트위스티드 페이트까지 제압당하면서 CJ에게 킬 스코어 5대10으로 끌려 갔습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저력이 있었죠. 29분에 선호산의 코그모가 홀로 드래곤을 사냥하자 와드를 매설하기 위해 내셔 남작으로 이동하던 CJ 선수들을 끊어내기 위해 매복을 시도했습니다. 홍민기의 브라움이 다가오자 이상혁이 골드 카드로 스턴을 걸었고 5명이 두드리면서 순식간에 잡아냈습니다.
CJ 선수들이 내셔 남작 지역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전투가 벌어졌고 장경환의 문도 박사가 김강윤의 누누, 선호산의 코그모, 신진영의 아지르를 홀로 마크하는 동안 박상면의 라이즈에게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으면서 잡아냈습니다.
김강윤의 누누가 절대영도를 쓰면서 체력을 빼놓긴 했지만 5명 모두 살아서 도망갔고 뒤쫓아 들어오던 신진영의 아지르와 선호산의 코그모를 제거하면서 킬 스코어를 10대10 타이로 만들었죠. 홍민기가 부활하긴 했지만 SK텔레콤은 내셔 남작을 가져가면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SK텔레콤의 연승이 보인다?
경기를 뒤집은 SK텔레콤은 유리한 전황을 더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포탑을 하나씩 밀어냈고 CJ 진영에 있는 푸른 파수꾼과 붉은 덩굴의 전령 등을 쏙쏙 빼먹으면서 격차를 벌렸죠. 킬을 추가로 내지는 못했지만 골드 획득량은 6~7,000 정도로 벌어졌습니다.
37분에 펼쳐진 전투에서 SK텔레콤은 3킬을 따내면서 완승을 거두는 듯했습니다. CJ의 미드 라이너 '코코' 신진영의 아지르가 본진으로 돌아간 사이 장경환의 문도 박사가 중앙 깊숙히 매설된 와드를 타고 순간이동으로 넘어왔고 위에서 4명, 뒤에서 1명이 포위하는 형국을 만들었습니다.
문도 박사가 3명 사이를 파고 들어 비비기 시작했고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골드 카드까지 던지면서 코그모를 제압했고 브라움, 누누까지 제거하며 서머 시즌 전승을 이어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역전의 시작은 내셔 남작
SK텔레콤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내셔 남작을 두드렸지만 CJ는 박상면의 라이즈가 '뱅' 배준식의 코르키를 공격하면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상혁의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골드 카드를 던지면서 저지한 탓에 비록 배준식을 잡아내지는 못했지만 내셔 남작 사냥은 막았죠.
박상면의 희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 드래곤을 네 번이나 잡아내면서 위상까지 1스택만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죠.
CJ는 SK텔레콤 이상혁이 상단 지역의 미니언을 정리하고 본진으로 돌아간 타이밍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내셔 남작 지역으로 몰려 들어간 CJ는 사냥을 시도했고 순식간에 내셔 남작을 잡아냈습니다. SK텔레콤의 바론 버프 획득을 저지한 것은 물론, 역으로 바론 효과를 가져가면서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냈죠.
◆위상 효과를 미끼로 쓰다
CJ가 내셔 남작을 사냥했을 때 드래곤이 곧 재생된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잡히기 시작합니다. 바론 버프를 내준 SK텔레콤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본진으로 돌아갔고 드래곤 싸움을 위한 마지막 정비를 시도했죠.
SK텔레콤은 드래곤을 가져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증거는 서포터 '울프' 이재완의 움직임인데요. 동료들 근처에서 체력을 채워주고 탱커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드래곤 뒤쪽 언덕으로 돌아 들어가면서 CJ의 뒤를 노리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였죠. 나머지 4명의 선수들은 드래곤을 두드리면서 위상 효과를 가져가고 효과가 발동되면 교전을 시도하겠다는 의도였죠.
SK텔레콤의 뜻대로 경기가 풀리는 듯했습니다. CJ는 드래곤 뒤쪽 언덕에 시야가 전혀 없었기에 이재완의 후방 습격에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김강윤의 누누는 드래곤을 스틸하기 위해 드래곤 굴 안에 들어가 있었기에 이재완의 알리스타가 점멸을 통해 들어가고 분쇄를 쓰는 타이밍에 탱커 역할을 해줄 만한 챔피언이 없었죠.
이재완의 알리스타가 정확하게 파고 들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선호산의 코그모를 노리고 들어갔던 이재완은 홍민기의 브라움을 박치기로 밀어냈죠. 이 때부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습니다.
◆'실피'의 '트릭'에 빠지다
이미 뒤쪽에 빠져 있던 신진영의 아지르를 모래병사를 세워 놓고 달려 드는 SK텔레콤 선수들의 체력을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홍민기의 브라움은 이재완의 알리스타에게 빙하균열을 쓰면서 탱커 역할을 하지 못하게 방해했죠.
핵심은 김강윤의 누누였습니다. SK텔레콤이 위상 효과를 가져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드래곤 굴에 있던 김강윤은 배준식의 코르키에 의해 체력이 대부분 빠졌죠. 궁극기라도 써야 겠다고 생각하며 뒤로 빠진 김강윤이 절대영도를 쓰는 동안 SK텔레콤은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실낱같은 체력을 갖고 있던 김강윤을 제거하기 위해 이상혁의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신진영의 모래병사에 의해 순식간에 잡히면서 전황은 급속히 CJ에게 넘어갔습니다.
박상면의 라이즈를 마크하던 '벵기' 배성웅의 렉사이가 절대영도에 의해 체력이 급속도로 빠지면서 잡혔고 이재완의 알리스타 역시 선호산의 코그모에게 잡히면서 남아 있던 화력 담당은 배준식의 코르키밖에 없었죠. 장경환의 문도 박사도 체력이 거의 없던 상황이었기에 CJ는 마음 편하게 코르키 사냥에 나섰고 신진영이 황제의 진영을 쓰는 여유까지 보이면서 제압했죠.
장경환이 살아 돌아가기는 했지만 4명이 살아 남았고 화력을 담당하는 라이즈, 코그모, 아지르가 존재했던 CJ는 중앙 돌파에 성공하면서 SK텔레콤의 챔피언스 21연승, 서머 시즌 14연승을 저지했습니다.
만약 SK텔레콤이 위상 효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CJ의 내셔 남작 효과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장기전을 시도했으면 어땠을까요. 후반이긴 하지만 골드 차이가 1만까지 벌어졌기에 SK텔레콤이 주도권을 가진 채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SK텔레콤의 판단을 탓하기 보다는 CJ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던 상황에서 내셔 남작을 내주지 않고 오히려 챙기면서 변수를 만들었고 마지막 교전에서 보여준 집중력이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SK텔레콤의 전승 행진을 멈춰 세운 CJ의 경기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