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 느낌이 물씬 나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을 보면 마음도 맑아지죠. 결실의 계절이라고도 불리는 가을에 프로리그도 결실을 맺기 위한 마지막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과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넥슨 아레나에서는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5 시즌 통합 포스트 시즌 준플레이오프가 열렸습니다. 결과는 이미 알려진 듯 진에어 그린윙스가 KT 롤스터를 2대0으로 완파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죠. 이틀 모두 엄청난 경기들이 펼쳐졌는데요. 개인적으로는 22일 승자연전방식으로 치러진 2차전에서 진에어 김유진의 역올킬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중에서도 KT 이영호의 선봉 올킬을 저지한 승부수에 대해서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는데요. 김유진이 띄운 승부수를 분석해보겠습니다.
◆'끝판대장'의 부활?
이영호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 시절 엄청난 포스를 발휘했습니다. 특히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된 위너스리그에서는 팀의 마지막을 항상 지켜냈죠. KT가 3점을 실점하면-0대3, 1대3, 2대3, 3대3 등 스코어를 불문하고-이영호가 출전했죠. 어떤 스코어든지 상관 없이 이영호는 이겼고 마지막 주자로 출전했을 때 32세트 연속 승리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그 결과 끝판왕, 최종 보스 등의 별명을 얻었지요.
스타2로 넘어온 뒤에는 끝판왕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KT에서도 주성욱을 에이스로 생각하고 있지, 이영호는 중간 계주자 정도로 여겨졌죠. 그래서인지 22일 진에어와의 2차전에서도 이영호는 선봉으로 출전했습니다.
이영호는 오랜만에 잠재력을 터뜨렸습니다. 21일 패했던 조성호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후 '메카닉 잡는 저그' 이병렬을 깨뜨렸고 KT를 상대로 2015 시즌 12승1패를 기록하고 있던 조성주마저도 제압했습니다. 올킬을 눈 앞에 두고 있었고 스타2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순간을 만들어낼 기회를 잡았습니다.
◆올킬 저지 위한 승부수 '꿀광'
진에어는 이영호에게 3킬을 당하고 난 뒤 마지막 선수로 프로토스 김유진을 기용시켰습니다. 이영호와의 상대 전적에서 3대2로 앞서 있기도 했고 큰 경기 경험이 많기 때문에 김유진을 내놓았죠.
무엇보다도 김유진의 장점은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략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그를 상대로는 광자포 러시라는 큰 무기를 갖고 있고 테란, 프로토스를 맞이해서는 초반, 중반, 후반이 모두 강한 선수이기에 승자연전방식에 적합한 선수입니다.
이영호의 올킬을 막기 위해 김유진은 확장 기지를 독특한 곳에 가져가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본진 구석에 수정탑을 지은 뒤 언덕 아래쪽에 관문을 지으면서 이영호의 정찰을 피한 김유진은 앞마당에 연결체를 짓는 것이 아니라 9시 지역 풍부한 광물지대에 연결체를 건설했습니다.
풍부한 광물 지대는 일반 광물 지대보다 2를 더 가져올 수 있습니다. 총량에서는 같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빨리 떨어지는 느낌을 주지요. 하지만 떨어지기 전까지는 같은 일꾼으로 더 많은 광물을 캘 수 있기에 자원 활성화를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김유진도 이 효과를 염두에 뒀습니다. 풍부한 광물 지대에 연결체를 세운 뒤 곧바로 관문을 5개까지 늘리면서 타이밍 러시를 시도했죠. 일반 앞마당 보다 활성화가 빨라지면서 관문을 늘리기도, 병력을 뽑기도 용이했습니다.
풍부한 광물 지대에 건설한 확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김유진은 광전사로 견제를 시도했습니다. 본진이 아닌 전진해서 지은 관문에서 광전사 2기를 뽑았고 이영호의 본진으로 밀어 넣으면서 건물을 짓던 건설로봇이나 초기에 뽑아 놓은 해병을 줄이면서 시간을 벌었죠.
◆남자는 '삼세번'이지?!
김유진이 '꿀광'을 가져가는 것을 이영호는 조기에 간파했습니다. 건설로봇으로 정찰을 보냈다가 일꾼이 대거 9시 지역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고 김유진이 초반 견제를 위해 내려 보낸 두 기의 광전사를 뒤쫓던 건설로봇과 해병이 완성된 것을 봤습니다.
이영호의 대처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김유진이 추적자와 파수기, 광전사로 조기에 몰아칠 것이라고 생각되자 앞마당 입구 지역에 3개의 벙커를 지었습니다. 파수기 4기, 추적자 5기, 광전사 4기를 이끌고 김유진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이영호의 벙커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한창 완성중일 때 하나씩 완공됐고 김유진의 첫 공격은 막혔습니다.
2차 공격을 노리던 김유진은 광전사를 대거 소환했습니다. 1차 공격에서 추적자와 파수기를 살려 놓았기에 가능한 판단이었죠. 2차 공격에서 김유진은 위쪽에 건설된 벙커를 하나 깨뜨렸지만 두 개의 벙커를 남겨뒀습니다. 실적만으로 봤을 때에는 김유진이 손해를 본 것 같았지만 건설로봇 10기를 잡았다는 사실은 서서히 김유진에게 승기가 넘어오고 있다는 뜻이었죠.
세 번째 공격에서 김유진은 이영호의 벙커를 모두 깨뜨렸습니다. 두 번의 공격을 막느라 건설로봇들의 체력이 많이 빠졌고 벙커 한 동도 지어지고 있었기에 화력에서도 모자랐죠. 벙커를 수리하는 데에도 자원이 들기 때문에 의료선 충원도 늦었고요.
김유진의 집요함이 이영호의 올킬을 저지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무모한 집요함이 아니라 전진 관문, '꿀광' 확장, 추적자를 살리는 컨트롤, 안정적인 병력 조합 등 치밀하게 계산된 플레이가 이어졌기에 가능했던 승리라고 봅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