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철권 팬들에게 그는 이미 '수호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인기 높은 e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였던 철권 리그가 잠정 휴업에 들어가면서 선수들과 팬들은 설 자리를 잃었죠. 일본 등 세계대회를 보며 대리만족을 해야 했던 그들에게 철권 리그를 부활시켜 준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액션토너먼트를 팬들의 축제로 변모시킨 독특한(?) 연출의 대가 스포티비 게임즈 이병국 PD. 이번에는 잠자고 있던 철권 팬들을 한 자리에 모은 '테켄크래쉬'를 연출하면서 철권 수호신을 넘어 '격투게임 수호신'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아 보입니다.
테켄크래쉬를 함께 한 출연진, 중계진 및 연출진과 비공식적으로 MT를 떠나기 전, 데일리e스포츠와 만난 이병국 PD의 표정은 설레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마치고 떠나는 여행처럼 꿀맛 같은 여행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처럼 멋진 사람들이 힘을 합해 만드는 리그는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최고의 게임, 최고의 연출진, 최고의 선수들, 최고의 출연진들이 함께 한 테켄크래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지금부터 함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후원사 '트위치 TV'
사실 e스포츠는 열정만 가지고 리그를 만들기는 힘듭니다. 가장 문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돈'이죠. 물론 돈을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리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방송국도 자선 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만큼 인기 게임이 아니라면 리그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국 PD를 철권리그 수호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이병국 PD는 철권 리그 부활을 위해 직접 트위치 TV의 후원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병국 PD의 철권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트위치 TV는 최고의 후원사였어요. 무엇보다 철권 리그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후원만 하는 것이 아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이해해주고 함께 만들어갔죠. 트위치 TV로 많은 분들이 테켄크래쉬를 지켜보셨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윈-윈 효과가 있었을까 싶어요. 이 자리를 통해 트위치 TV에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트위치 TV의 적극적인 후원 덕에 이병국 PD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더 큰 세계를 꿈 꿀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 덕분이었죠. 웬만한 e스포츠 리그 동시 시청자수를 훌쩍 넘는 숫자에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최고의 중계진, 출연진 그리고 선수들
이번 철권 리그의 성공적인 부활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철권 리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중계진과 출연진, 연출진 그리고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고 이병국 PD는 이보다 더 편하고 즐겁게 일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서운한 사람들로 채워졌어요. 중계진부터 시작해 연출진, 심지어는 테켄걸들까지 말이죠. 다들 워낙 철권 리그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이다 보니 자진해서 찾아왔고 스스로 움직였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중계진들과 출연진들은 심지어 출연료가 얼마인지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철권 리그는 리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병국 PD까지 합쳐 이들은 '철권 어벤저스'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 그들 덕에 이병국 PD는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출연진들 동선까지도 일일이 확인해야 했지만 이제는 알아서 잘(?)하는 출연진들과 연출진들 덕에 다른 그림들을 그릴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된 것이죠.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철권 리그를 국가대항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특히 한일전으로요. 어떤 스포츠에서건 한일전이 가지는 의미는 크잖아요. 특히 철권에서 한일전은 마치 태권도나 유도의 한일전과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어벤저스 덕분에 불가능할 것 같은 한일전 개최를 고민하고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오랜만에 출전한 선수들도 펄펄 날았습니다. '전설'의 무릎 배재민부터 시작해 첫 출전 만에 결승에 진출한 '랑추' 정현호까지 적절한 신구 조화와 이변의 연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적인 '전설'의 우승까지 모든 경기들이 드라마였다.
"선수들까지 도와주니 리그가 흥행될 수밖에 없죠.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싶지만 지금까지 철권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아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이 운이 다음 시즌 그리고 다다음 시즌까지 이어져서 테켄크래쉬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수 있게 되면 정말 좋겠어요."
◆e스포츠 리그의 다양화를 꿈 꾸며
이병국 PD는 한국 게이머들의 특성 때문에 e스포츠 종목의 다양화가 다른 나라보다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는 것 보다는 다수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모바일 게임도 카카오나 페이스북 기반 게임들이 많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 즐기지 못하면 게임을 하는 데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한국e스포츠 미래를 생각한다면 e스포츠 종목이 다양화 돼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특성상 한 게임이 인기를 모으면 다른 게임들의 성적이 좋지 않기에 리그의 다양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이루기 힘든 숙제이기도 하죠.
최근 국산 종목들도 힘을 내고 있고 철권, 피파온라인3 등도 리그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격투게임 수호신' 이병국 PD가 e스포츠 PD로 남아있는 한 e스포츠 다양화를 위한 시도는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e스포츠 메인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를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묻더라고요. 참 재미있는 질문이에요. 사실 어떻게 보면 문화 콘텐츠에서도 게임과 e스포츠는 변방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거기서 또 메인과 변방을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요? 한국에서 중심은 리그 오브 레전드일 수도 있지만 국경 없는 온라인 세계에서는 어떤 게임도 e스포츠 종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머리를 탁 치는 발언이었습니다. 한국 팬들의 관심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 집중해 있지만 e스포츠 종주국인 우리나라가 굳이 한국 팬들의 기호만 맞춰 리그를 제작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e스포츠 종목의 다양화는 남들과 다른 시선에서 시작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깨달음을 이병국 PD와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게임과 e스포츠가 문화 콘텐츠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때 어떤 종목이 가장 인기가 높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진정한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전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게임이 메인인지 따지기 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게임들을 먼저 선점하고 리그화 시킨다면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명예를 어떤 나라에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성도 꿈도 생각도 확실하지만 항상 열정과 희망을 잃지 않는 이병국 PD. 공중파 PD를 그만두고 e스포츠로 돌아오는 과감한(?) 선택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우리 같은 범인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그를 보며 10년 후 문화 콘텐츠 메인에 우뚝 서는 e스포츠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테켄크래쉬는 계속 진화할 겁니다. 선수들도 중계진도 연출진도 말이죠. 팬들은 그냥 저희와 함께 놀면 되요(웃음). 4일 개막하는 액션토너먼트 역시 팬들과 노는 리그가 될 겁니다. 팬들이 재미있게 놀아 주면 그게 바로 e스포츠 종목 다변화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요? 저희랑 함께 놀아 보자고요!"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