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대사입니다. 오대수를 15년 동안이나 감금했던 이우진이 자신을 왜 가뒀냐고 물어보는 오대수의 질문에 한 답이죠. 이우진은 질문이 잘 못 되면 올바른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굉장히 철학적인 말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피파온라인3 아시안컵을 앞둔 EA 신상린 실장 역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피파온라인3의 e스포츠 리그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항상 리그 오브 레전드와 비교하는 질문을 빼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EA는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파온라인3와 리그 오브 레전드는 분명 다른 게임이니까요. 두 게임 리그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월드컵'이라는 단어와 가장 깊게 연관이 있는 종목은 피파온라인3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을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종목이 축구를 기반으로 탄생한 피파온라인3일 수밖에 없겠죠. 어떤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갈 길은 멉니다. 단순히 축구 게임이라고 해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우리가 '롤드컵'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피파온라인3 글로벌 리그에 '월드컵'이라는 호칭이 붙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좋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좋은 대답을 내놓고 좋은 방법을 고민하는 작업. 아마도 지금 EA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피파온라인3 아시안컵을 앞두고 EA 코리아 신상린 실장을 만나 EA의 고민을 들어봤습니다.
◆글로벌 리그 필요성 인식한 인비테이셔널
EA는 운이 좋습니다. 각 지역에서 피파온라인3를 서비스하는 퍼블리셔들은 각 나라에서 최고라 불리는 기업들이니까요. 한국은 넥슨, 중국은 텐센트, 동남아시아는 가레나를 파트너로 삼고 각 지역에 피파온라인3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통합 글로벌 리그를 만드는 데 당연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 지역에서 퍼블리셔들이 원하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고 지역 대회들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리그를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힘들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글로벌을 지향하는 게임 회사들에게 e스포츠 글로벌 리그는 사명과도 같았으니까요. EA는 2014년 글로벌 e스포츠 리그의 첫발인 '인비테이셔널'을 개최했습니다.
"성과가 있었어요. 각 지역의 퍼블리셔들이 글로벌 e스포츠 대회의 필요성을 절감했거든요. 게다가 한국에게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태국이 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피파온라인3 붐이 일기도 했어요(웃음). 지난 인비테이셔널은 EA에게 '글로벌 e스포츠 대회를 하라'는 계시로 작용했습니다. 그때부터 꼬박 1년간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인비테이셔널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한번의 시도로 끝났을 글로벌 e스포츠 대회. 하지만 인비테이셔널 결승전 동안 각 지역 피파온라인3 동접자수가 최고 수치를 기록하면서 일반 유저들에게도 글로벌 대회가 얼마나 큰 반향을 미치는지 EA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퍼블리셔, 이용자들의 의중을 확인한 EA는 결국 아시안컵을 기획했습니다. 아시안컵은 국가 대항전으로 콘셉트를 잡고 진짜 '월드컵'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피파온라인3 글로벌 대회의 콘셉트는 바로 '월드컵'입니다.
◆거창하지만 지울 수 없는 '월드컵'
'월드컵'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촌 최고의 축제를 감히 따라간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월드컵'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e스포츠 리그 관계자들을 만나면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습니다. 다들 e스포츠의 '월드컵'을 꿈 꾸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겠죠.
"가장 축구와 가까운 게임인 피파온라인3가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빼고 글로벌 대회를 논하겠어요. 그럴 수는 없죠. 하지만 그 때문에 고민이 더 깊어지고 어려워 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이제는 EA가 실현 가능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신상린 실장의 답은 오는 12일 열리는 아시안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EA는 글로벌 e스포츠 리그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퍼블리셔들과 유저들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요?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리그를 직접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글로벌 e스포츠 리그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전 대륙에 서비스 해야 하는 일이 먼저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e스포츠를 위해 서비스 대륙을 넓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저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 같네요.
"진정한 글로벌 e스포츠 리그를 만들기 위해서 선행돼야 할 것들이 있죠. 당장은 리그의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쓰기 보다는 국제 대회를 정례화 시키고 서비스 지역을 넓혀가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첫 성과물인 아시안컵을 치르고 난 뒤 큰 그림을 위해 또다시 1년을 열심히 뛸 것입니다."
◆점점 성장하는 모습 보여줄 것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인비테이셔널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이번 아시안컵은 인비테이셔널보다 한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겠죠. 그리고 내년 아시안컵은 또다른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프나틱 SNS에 롤드컵 시즌1부터 지금까지의 결승전 무대 사진을 한눈에 보여준 적이 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큰 무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아니었더라고요. 점점 무대는 커졌고 멋져졌고 사람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죠. 발전하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그 게시물을 보고 희망을 얻었어요."
크고 화려한 국제 대회는 모든 e스포츠인들의 꿈일 것입니다. 하지만 외간을 성장시키기 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일이 우선돼야 무대의 스케일도 더욱 빛날 수밖에 없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전형적인 답이 오히려 갈 길을 명확하게 제시해 줄 수 있기도 합니다.
"상금의 적정 수준, 참가하는 선수들의 선발 방식 등 세부적으로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많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리그들을 아시안컵에 올 수 있는 하나의 디딤돌로 만들어야 하는 지도 고민이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글로벌 e스포츠 리그는 필요하고 그를 위해 EA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겠죠."
EA의 고민은 이제 시작입니다. 신상린 실장을 비롯해 EA 관계자와 각 지역 퍼블리셔들은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그림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아시안컵이 월드컵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