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는 출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김의진을 만났다. 유럽에서 최고의 선수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과 롤드컵에서 느꼈던 새로운 경험들, 북미 정복을 위해 떠나는 심정 등을 들었다.
Q 북미 팀인 임모털스로 이적이 확정됐다. 프나틱을 떠나게 된 이유가 있나.
A 2015년 프나틱 소속으로 유럽 지역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유럽 LCS)에서 활동하면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을 틀림 없다. 하지만 1년 동안 지내면서 내가 나태해지는 것을 느꼈다. 최강 팀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 때까지는 흐트러질 틈이 없었지만 서머 시즌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하면서 도전 정신이 떨어지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Q 유럽 생활이 불편했나.
A 숙소가 독일 베를린에 있어서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없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날을 거듭할수록 일상은 반복됐고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기분이 다운됐다. 서머 시즌이 한창일 때에는 '스스로 우울증이 아닐까'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나마 롤드컵에 임하기 전에 운동을 하거나 야외 활동을 하는 등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Q 허승훈과 함께 프나틱에 갔을 때 다들 '김의진은 알겠는데 허승훈은 누구냐'라는 반응이었다. 어떻게 알게 됐나.
A 허승훈과는 SK텔레콤 T1이 연습생 테스트를 함께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 때 SK텔레콤 입단 테스트를 보기 위해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지원했다. '스멥' 송경호, '피카부' 이종범도 리스트에 있었고 나를 비롯해 허승훈도 있었다.
Q 당시 IM 소속 아니었나.
A IM 소속이긴 했지만 활동을 중단한 시기였다. 마스터즈 대회가 끝나고 나서 강동훈 감독님께 한 시즌 정도 쉬고 싶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입단 테스트가 있다는 공고가 났길래 테스트 받아도 된다고 허락을 받고 도전했다. 테스트를 보면서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갔는데 우리는 꽤 오래 살아 남았고 그러다 보니 허승훈과 친해졌다. 톱 라이너였는데 나랑 호흡이 잘 맞았다. 주전 선수들과 연습 경기를 했을 때에도 케미스트리가 좋았다.
Q 프나틱에 가게 된 계기는.
A 허승훈이 연습생 테스트에서 먼저 떨어지고 나서 프나틱 쪽에서 연락이 왔다고 따로 말해주더라. 호흡이 잘 맞기도 했고 프나틱에도 정글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 즈음에 나도 SK텔레콤 테스트에서 탈락하면서 같이 가기로 했다. 강동훈 감독님도 유럽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내 생각을 이해해주셨다.
Q 허승훈과 함께 유럽을 씹어먹었다.
A 씹어먹었다는 표현은 처음 듣는데 기분 좋다. 스프링 시즌에는 우리가 뭔가를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팀 전체적인 호흡을 맞추기 보다는 한국 선수 두 명의 호흡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다가 톱 라이너로 쓸 수 있는 챔피언들의 성능이 좋아졌고 롤드컵 때에는 톱정글 메타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우리 팀의 성적이 더 좋아졌다.
Q 서머 시즌 유럽 LCS에서는 정규 시즌을 전승으로 마치기도 했다.
A MSI 때 우리 팀이 깨달은 바가 있어서 서머 시즌에 더 강해졌던 것 같다. 각 지역 스프링 시즌을 제패한 쟁쟁한 팀들이 나온 대회에서 프나틱의 실력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두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유럽 LCS 서머를 치르는 데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Q MSI 때 무엇을 깨달았나.
A 유럽 팬들조차 MSI에서 프나틱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선전했고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던 SK텔레콤을 상대로도 두 세트를 따내기도 했다. 팀적으로는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다는 뿌듯함을 얻었고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 수준의 정글러와 대결해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IM 시절의 '레인오버'는 '게임오버'였지만 프나틱에 온 뒤에는 달라졌고 세계 무대에서 처음으로 전세계 팬 앞에서 증명했다. 세계 대회에 대한 공포심도 사라졌다. 유럽 LCS에서 초반에 킬 스코어에서 뒤처지고 있어도 후반까지만 끌고 가면 뒤집을 수 있다는 믿음이 동료들 사이에서 생겨나면서 정규 시즌 전승, 스프링과 서머 결승 연속 제패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Q 스스로에 대한 믿음, 동료들 사이의 믿음이 롤드컵까지 이어진 것인가.
A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레인오버가 할 수 있다, 프나틱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었다. 롤드컵 16강 본선을 치르는 동안 여러 팀들과 연습 경기를 했을 때에도 승률이 너무나도 좋았다. 8강에서 에드워드 게이밍을 3대0으로 이긴 것도 그러한 자신감에 기반한 결과였다.
Q 그렇지만 4강에서는 KOO 타어거즈에게 0대3으로 패했다.
A 이상하게 벨기에 브뤼셀로 넘어가서는 연습 경기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팀 전체의 자신감이 떨어졌고 폼도 무너졌다. 유지만 했으면 SK텔레콤과 결승전에서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다.
Q 북미 팀인 임모털스로 가게 된 이유는.
A 1번은 나의 발전을 위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무대인가, 2번은 연봉이었다. 앞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프나틱에 허승훈과 내가 같이 있었다면 2016 시즌에도 팀은 최고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기 부여는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연봉도 북미, 중국, 한국처럼 높지 않다. 그래서 팀을 떠나기로 했다.
Q 2015 시즌까지 본 북미의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유럽은 초중반을 중시하는 전략을 자주 구사한다. 특히 프나틱은 그랬다. 초반부터 격차를 벌리기 시작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미는 슬로우 스타터 패턴을 많이 따른다. 라인전을 최대한 오래 가져가고 데미지 딜러들이 모두 성장한 후반 교전에 힘을 주는 스타일이다. 임모털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봐야 알겠지만 허승훈과 내가 초반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기에 북미 팀을 상대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Q 북미 정글러들의 실력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A 아직 잘 모르겠지만 유럽 지역과는 차이가 있다. 유럽의 정글러들은 공격적이기 때문에 초반부터 라인 개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나도 그런 패턴으로 재미를 봤다.
Q 유럽에서 너무나도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기에 북미에서도 기대가 클 것 같다.
A 임모털스가 우리를 영입한 이유도 스프링과 서머 중에 하나 정도는 우승해주고 롤드컵에 진출하기 위함일 것이다. 유럽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북미에서도 우승하고 싶다. 유럽과 북미를 동시에 제패한 선수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는데 허승훈과 힘을 합쳐 그 기록을 세워보고 싶다.
Q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김의진의 영어 실력이 상당히 좋다는 것이다. 언제 배웠나.
A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5년 동안 어머니, 형이랑 같이 사이판에서 학교를 다녔다. 사이판은 미국령이라 영어가 공용어다. 그 때는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수업 시간에만 쓰니까 많이 줄었다. 그나마 유럽에서는 인터뷰나 생활하는 데 무리 없을 정도로만 쓴다.
Q 허승훈의 영어 과외 선생님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A 허승훈이 프나틱에 갔을 때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 그 때는 일어나서 잘 때까지 모든 통역을 내가 했다. 내가 함께 팀을 옮기니까 영어 통역사를 따로 붙여주지 않더라(웃음). 필요한 문장을 몇 개 알려주고 단어를 바꿔가며 활용하는 법을 알려줬더니 허승훈이 곧잘 따라했다. 지금은 내가 없어도 영어 인터뷰가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허승훈의 성격이 쾌활하고 밝아서 금세 배운 것 같다.
Q 2015 시즌 롤드컵에서 의사소통이 잘 되는 팀들의 성적이 좋았다는 분석도 있다.
A 의사소통이 중요하긴 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은 아닐 것이다. 연습이 잘 되어 있는 팀들은 특이한 상황이 나오더라도 대처를 잘한다. 선수들이 경기 중에 길게 이야개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연습이 되지 않은 팀들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이지 의사소통 가능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수 5명으로 구성된 팀들은 물론 예외다. 어떤 상황이 되든지 한국어로 다 해결할 수 있는 개인기 좋은 5명이니까(웃음).
Q 아픈 질문일 수도 있는데, 프나틱에서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있나.
A 게임에 대한 자세, 생각, 플레이 등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한국에서 선수로 데뷔했을 때 첫 경기가 NLB였다. 그 때 정말 잘했다. 내가 봐도 잘했다. 주목을 받았고 그 덕에 롤챔스에서 IM 1팀 소속으로 뛰었다. 내가 2팀에서 1팀으로 넘어오면서 손발을 맞출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오버 플레이가 많았다. 팀이 지고 나면 나 때문에 졌다는 댓글이 많았고 다음 경기에서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또 무리했고 또 지더라. 몇 번 그렇게 지다 보니 팀은 탈락했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Q 아까부터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김의진에게 자신감이란 무엇인가.
A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 같다. 방송 경기에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연습 경기에서 많이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실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나를 트레이닝하면서 다른 생각을 갖지 않고 오롯이 게임에, 훈련에 전념해야만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원동력이라 말할 수 있다. 북미에 가려고 마음 먹은 것도 그 맥락의 연장선이다. 프나틱에서 뛰면 편하게 게임하고 우승도 보장되어 있지만 올해 그랬던 것처럼 다운되고 만족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지칠 것 같다. 나를 채찍질해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북미로 무대를 옮겼다.
Q 새로운 무대에 대한 도전이 두렵지는 않은가.
A 사람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 나는 변화를 직면했을 때 더 열심히 준비한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 좋다. 너무 편하면 발전이 없다. 상대해 보지 않은 정글러들, 상대하지 않은 팀, 새로운 경기 환경, 새로운 동료 등 북미로 가면 모든 것이 새롭지 않나. 이 모든 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동기 부여책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2015년에 경험했다. 이런 결과가 쌓이면 결국 미래의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나태해지지 않는 김의진을 위해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