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에는 게임이 좋아서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여성들이 꽤 있었다. 스타1이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에는 여성부 대회가 정식 예선을 거쳐 16강으로 진행되기도 했을 정도로 여성들도 스타1을 즐겼다. 당시 활동했던 여성 프로게이머 가운데 한 명이 김사비나다.
프로토스로 스타1을 배운 김사비나는 테란으로 종족을 바꿔 2년 정도 활동했다. 2000년부터 공식전에 나왔던 그는 대회가 점차 사라지면서 방송으로 무대를 옮겼고 인터넷 방송국을 거쳐 MBC게임, 겜TV 등에서 리포터로 활동했다.
e스포츠와의 인연을 뒤로 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공연 제작자로 변신했다. 뮤지컬 배우로 7년 동안 활동한 노하우를 발판으로 스스로 공연을 만들고 연출하며 출연까지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은 공연이지만 새로운 분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방황을 잡아줬던 게임
김사비나는 고등학교 때 무용 공부를 하면서 대학 진학을 꿈꿨다. 예고는 아니었지만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니면서 실력을 쌓았고 군포시 청소년 무용단 소속을 활동하면서 실력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큰 돈이 들어가는 무용과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상실감이 컸다.
"대학을 포기하니까 꿈을 포기한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방황하기 시작할 즈음에 친구가 PC방에 데리고 갔고 그 때 배운 게 스타1이었어요."
스타1에 푹 빠져 지낸 김사비나는 팀플레이로 유명한 노가다 길드에 가입했다. 센스 있는 플레이를 눈 여겨본 길드 사람들이 그를 반겼고 더 즐겁게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김정민, 김갑용 등을 선수로 키워낸 매니저에게 발탁됐고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매니저들이 사비를 털어서 팀을 운영하던 시절이었어요. 대회가 열려서 상금을 타면 그걸로 운영비를 썼고요. 스타1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후원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두밥이라는 팀에서 임성춘 등과 한솥밥을 먹었죠."
두밥이 오래지 않아 해산하면서 김사비나는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등의 소속사였던 IS로 들어갔다. 게임을 활용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꿈꿨던 IS는 김사비나에게 방송 MC로 활동하는 것을 제안했고 받아들이면서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인터넷 방송부터 시작해서 막바지에는 MBC게임의 전신인 겜BBC, 스카이라이프로 나왔던 게임 채널인 겜TV까지 출연했어요. 방송 진행, 리포터, 해설자 등 여러 포지션을 맡았죠. 하지만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다시 본업으로
짧다면 짧았던 4년간의 '외도'를 마치고 돌아온 김사비나는 무용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학창 시절에 청소년 무용단으로 활동하면서 섰던 무대에 대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였다. 게이머로서, MC로서 방송 무대에 섰던 기억도 용기를 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프로게이머는 방송 대회가 무대잖아요. 4년 동안 게이머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러 방송에 나갔던 것이 도움이 됐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했던 무용으로 무언가를 이뤄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고요."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저녁에는 무용 학원을 다니면서 다시 도전을 시작한 김사비나는 6개월만에 오디션을 통과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전업했다. '그리스', '락 오브 에이지' 등 유명 뮤지컬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
"7년 동안 뮤지컬 배우로 살았어요. 무용을 전공하려고 했으니까 춤은 어렵지 않았고 남들보다 조금 나은(?) 노래 실력을 가진 덕분이었죠. 무대에 서니까 다 얻은 것 같았어요. 비록 큰 역할은 아니었어도 최선을 다했죠."
뮤지컬 배우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이유를 물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신앙을 가진 지 5년째-김사비나는 기독교 신자다-였고 하느님과 관련한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1년 전도 기획한 끝에 나온 이번 공연의 제목은 '댄스컬 마리아'다. 지난 2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바라아트홀에서 공연이 진행된다.
"제목부터 댄스컬이에요.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공현이라 넌버벌 퍼포먼스라고 보시면 돼요. 하느님과 마리아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내용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 안 알려드리려고요. 와서 직접 보세요."
◆후배 게이머들의 성공담 자주 들리길
김사비나는 요즘 후배였던 프로게이머들이 화면에 자주 나와서 기분이 좋단다. 며칠 전에 '런닝맨'에 임요환과 홍진호가 함께 나와서 라이벌 열전을 펼치는 것도 보면서 프로게이머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뿌듯했다고. 임요환과 홍진호, 이윤열은 IS 시절에 같은 팀에서 활동하면서 자주 봤던 후배들이라서 더욱 각별한 느낌을 받았단다.
"벌써 12~3년 전이네요. IS라는 팀이 만들어지고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한 팀에서 연습하는 걸 지켜보면 지금의 성격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요환은 전략 하나를 만들려고 정말 밤새도록 연구하는 스타일이고 홍진호는 약지 못하고 착하고 솔직한 스타일이에요. 이윤열은 누가 옆에서 전략을 만들면 단숨에 흡수해서 더 강력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 천재고요."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등 게임 업계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김사비나에게는 청소년기의 방황을 붙잡아준 고마운 존재였다.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프로게이머로, 방송인으로 활동할 기회를 잡았고 훗날 무용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사비나는 여성 대회가 조금더 많았다면 사람들이 e스포츠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반이 탄탄하게 다져지지 않은 태동기였기에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스타성이 보였던 여성 선수들이 많았기에 아쉬움이 더 남았다고.
프로게이머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김사비나는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을 단 것만으로도 어린 나이에 큰 성과를 이룬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프로라는 단어에 만족하지 말고 한 번의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여성 프로게이머들에게는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거든요"라고 당부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