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핀포인트'로 인사를 드리네요. 월드 챔피언십이 끝나고 나서 잠시 휴가를 다녀오면서 재충전했네요. 경기가 없는 비시즌이기도 하고요.
휴가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했더니 곧바로 올스타전이 열렸습니다. 2015 시즌을 빛낸 각 지역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서 다양한 모드로 경기를 치르면서 팬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전해줬는데요. 여러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개인적으로는 KT 롤스터의 정글러 '스코어' 고동빈의 플레이가 가장 빛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원거리 딜러 포지션을 맡았던 고동빈은 정글러로 변신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KT 롤스터를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까지 올려 놓았고 롤드컵에서는 그라가스로 맹활약하면서 '세그정(세계에서 그라가스를 가장 잘하는 정글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올스타전에서도 고동빈의 활약은 엄청났습니다. 특히 한국과 유럽의 지역 대항전 1세트에서 보여준 문도 박사 플레이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초석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함께 보시죠.
◆꼭 이겼어야 하는 경기
한국 올스타는 이번 올스타전에서 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됐습니다. 올스타로 선발된 5명 모두 피지컬 능력이 최고라고 평가되고 있었고 서포터인 '매드라이프' 홍민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롤드컵에서 각 포지션별로 최고라고 인정까지 받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역 대항전을 치르던 과정에서 유럽 올스타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혹시나'라는 우려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지역 대항전에서 2승1패로 팀 파이어 대표로 뽑힌 한국 팀은 이전 경기와는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마린' 장경환은 롤드컵 때 최고의 플레이를 펼친 챔피언인 피오라를 골랐고 '페이커' 이상혁 또한 자신이 가장 안정적으로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오리아나를 골랐죠. 정글러 '스코어' 고동빈의 선택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롤드컵에서 대박을 쳤던 그라가스를 고를 것이라 생각됐지만-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에-문도 박사를 가장 먼저 가져갔습니다.
문도 박사는 올스타전이 치러진 5.23 버전에서 정글러로서 엄청나게 좋은 챔피언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Q 스킬인 '오염된 대형 식칼'이야 워낙 좋았고 E 스킬인 '피학증'이 시전시 기본 공격 타이머가 초기화되고 활성화 후 다음 공격의 사거리가 늘어나며 최대 체력 5%에 해당하는 추가 피해를 입히며 스킬의 체력 소모가 대상을 타격할 때 적용되는 등 상당히 좋아졌죠.
고동빈도 5.23 패치에서 정글러로 가장 좋다는 문도 박사를 고르면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초반부터 하드 캐리
고동빈의 활약은 초반부터 돋보였습니다. 초반 인베이드 과정에서 한국 대표팀은 이상혁을 제외한 4명이 상단 수풀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유럽 팀의 톱 라이너 'Huni' 허승훈의 헤카림과 'Amazing' 마우리스 스투켄슈나이더의 리 신이 고대 돌거북을 사냥할 것이라 예상한 한국 선수들을 대기하고 있다가 허승훈을 집중 공격했죠. 홍민기의 트런들이 돌기둥을 세우면서 길을 막았고 오염된 대형 식칼을 맞춘 고동빈이 킬을 가져갔습니다.
퍼스트 블러드를 챙긴 고동빈은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장경환의 피오라가 순간이동을 타고 하단으로 가서 킬을 내던 상황에서 고동빈은 이상혁을 도와 중단을 파고 들었죠. 'Froggen' 헨릭 한센의 브랜드가 미니언을 과하게 밀고 내려가자 고동빈이 뒤쪽에서 합류했고 식칼을 맞히면서 속도를 늦췄죠. 그리고는 스킬을 연계하면서 합류한 이상혁에게 킬을 토스해줬습니다.
4대0으로 앞선 상황에서 한국팀은 허승훈을 잡기 위해 상단으로 3명이 몰려갔습니다. 하지만 허승훈을 잡을 '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죠. 허승훈이 체력이 많았을 뿐더러 포탑을 끼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 때 고동빈의 판단이 빛났습니다. 허승훈을 보좌하기 위해 뒤로 들어오는 스투켄슈나이더의 리 신을 노린 것인데요. 식칼을 맞히면서 이동 속도를 늦췄고 그 덕에 트런들의 돌기둥이 완벽히 길을 막으면서 킬을 냈습니다.
◆승기를 잡은 하단 전투 개시
0대6으로 끌려가던 유럽팀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킬을 만들어서 추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0분에 하단으로 4명이 모이면서 싸움을 걸었습니다.
한국팀도 이를 알고 대비했는데요. 유럽의 의도를 거꾸로 활용하는 데 있어 고동빈의 판단이 빛을 발했습니다. 하단 2차 포탑 지역으로 들어온 고동빈은 유럽 선수들이 숨어 있는 지역을 알고 있었고 식칼을 던지면서 맷집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매복하고 있던 리 신과 헤카림은 식칼에 연거푸 맞았고 트런드의 돌기둥에 걸리면서 허우적거렸죠. 그 뒤를 파고 든 한국 팀 장경환의 피오라, 이상혁의 오리아나가 싸우기 시작하면서 한국 팀은 대승을 거뒀죠. 식칼을 연거푸 맞히면서 싸움을 걸었던 고동빈은 어떻게 됐나고요?
잘 큰 문도 박사가 죽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거 아시잖아요!
◆어그로 대마왕과 개인기의 끝
고동빈은 12분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상혁이 킬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발판을 닦아 준 것인데요. 헨릭 한센의 브랜드가 킬 욕심을 내도록 자극한 것이지요.
이상혁이 본진으로 돌아가면서 중단이 텅 비었을 때 고동빈은 라인 커버를 들어왔습니다. 레벨이 높았던 헨릭 한센은 고동빈을 잡기 위해 모든 스킬을 다 퍼부었죠. 심지어 소환사 주문인 점화까지 걸면서 팀에게 첫 킬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력투구했습니다.
하지만 문도 박사가 어디 쉽게 죽던가요. 고동빈은 궁극기인 가학증을 사용하면서 체력을 재생시켰고 포탑 쪽으로 이동했죠. 브랜드가 마지막 스킬까지 쓰면서 잡으려 했지만 유유히 피하면서 살아 남았죠. 아이템 쇼핑을 마친 이상혁은 수풀 쪽으로 접근했고 점멸, 충격파 이후 평타 공격으로 브랜드를 잡아냈습니다. 아래쪽에 어시스트가 뜨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고동빈이 만들어낸 킬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고동빈은 문도 박사가 보여줄 수 있는 개인기의 최고봉도 보여줬습니다. 16분이었는데요. 드래곤 쪽으로 이동하던 헨릭 한센의 브랜드를 본 이상혁이 충격파를 쓰면서 체력을 빼놓고 잡으려 했지만 쓰레쉬의 랜턴을 타고 도망쳤죠. 이상혁은 마음을 비우고 중앙 1차 포탑을 파괴했는데요.
그 때 고동빈의 킬 본능이 살아났습니다. 드래곤을 지나 유럽팀의 푸른 파수꾼 쪽으로 다가간 고동빈은 점멸을 쓰면서 오염된 대형식칼을 날렸고 본진으로 귀환하던 헨릭 한센의 브랜드를 잡아냈습니다.
화면에는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문도 박사의 동그란 아이콘이 갑자기 수풀 쪽으로 점프 뛰는 모습이 미니맵을 보시면 나타납니다.
문도 박사로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고동빈을 유행어로 표현해보겠습니다.
"물 올랐다고 전해라!"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