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8일 블리자드는 2016년 스타크래프트2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WCS) 운영안을 발표했다. WCS를 GSL과 스타리그를 포함한 'WCS 코리아 시스템'와 기존의 프리미어 리그에서 업그레이드 된 'WCS 서킷 시스템' 두 부문으로 나눈 것인데, 이 중 WCS 서킷 시스템의 한국 선수 참가자격을 강화한 것이다.
블리자드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국 선수가 출전하기 위해선 해당 지역의 거주자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지의 시민권이 있거나 프로 운동 선수 비자 혹은 취업이나 학생 비자가 필요하다. 운 좋게 비자를 발급 받더라도 WCS 서킷 대회 기간 동안 5주 이상 소속 지역을 떠나있을 경우 대회 출전이 불가능하다. 대부분 한국 선수들의 해외 대회 출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물론 모든 해외 대회가 그런 것은 아니고 WCS 공인 대회만 해당하는 얘기다. 그러나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 드림핵이나 인텔 익스트림 마스터 등의 대회가 대부분 WCS 공인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의 수는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얼마 전 GSL 예선장에서 만난 선수들도 크게 불만을 표출했다. 해외 팀을 물색 중이던 한 선수는 대회 출전이 어려워지자 "국내 팀으로의 유턴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고, 해외 대회에 자주 출전하던 한 선수도 "선수들은 1년에 한두 번은 해외대회에 출전하고 싶은데, 출전할 기회가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블리자드가 WCS 운영안을 개편한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선수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한국 선수들이 해외의 모든 대회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니 해외 선수들의 설 자리가 사라졌고, 해외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다. 실제 지난해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해외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FireCake' 세바스티앙 레브와 'Lilbow' 다비드 모스체토, 'Bunny' 패트릭 브릭스 단 셋뿐이다. WCS 글로벌 파이널 16강은 16명 중 15명이 한국 선수였다. 오죽하면 해외에서 활동 중인 '폴트' 최성훈이나 '히드라' 신동원 등을 한국 선수가 아닌 '해외 선수의 희망(Foreigner's hope)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증명해야한다. 한국 선수들의 출전을 제한한다고 해서 해외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WCS 글로벌 파이널 16강 절반을 해외 선수로 채운다 하더라도 8강은 모두 한국 선수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부 팬들은 더욱 다양한 기회를 잡기 위해 해외로 떠난 선수들을 두고 '도망쳤다'고,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들과 붙으면 쉽게 질 것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 팀들의 훈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제 아무리 1대1 대결이라 하더라도 홀로 연습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 선수끼리도 이럴 진데, 해외 선수와의 격차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준 높은 한국 선수들과 대결할 기회마저 사라진다면 그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올라갈 일은 결코 없어 보인다. 규제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의 기회만 줄어들 뿐이다.
GSL이나 스타리그에서 입상하지 못하는 선수들은 해외 대회를 통해 WCS 포인트를 쌓으며 글로벌 파이널 무대에 서는 꿈을 꿨다. 하지만 해외 대회 출전 제한으로 더 이상 그 꿈을 꿀 수 없게 됐다. 한국 선수들 간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자잘한 상금을 노릴만한 마이너 대회가 많은 것도 아니다.
'이기면 된다'는 간단한 조건이 있지만 현재 스타크래프트2가 처한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2는 군단의 심장을 통해 겨우 '붐업'에 성공한 분위기다. 공허의 유산으로 넘어오면서 상승된 분위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한국 선수들의 출전이 제한됨으로 인해 해외 대회의 현지 흥행도 빨간 불이 켜졌다.
더 큰 문제는 신인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는 두말할 것 없고 해외는 더욱 심각하다. 해외 대회에 출전 중인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신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3~4년 이상 된 선수들이다. 간혹 보이는 신인들은 기존 선수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금세 사라진다.
기회를 잃은 선수들 중에선 은퇴를 고민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최근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인은 없고 은퇴 선수만 늘어난다면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해외도 예외는 아니다. 유명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은 예전 같지 않은 기량을 갖고 있고, 취미삼아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국내 한 기업 팀의 코치는 "해외에서 스타크래프트2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은퇴를 고려하는 선수들도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코치는 "일부 대회는 한국 선수들의 출전을 위해 WCS 포인트를 없애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들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해외 팬들에게 있어 한국 선수들이 해외를 방문하는 것은 메시나 호날두가 한국의 축구 팬들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다. 한국 선수들의 출전을 막는다면 대회 흥행이 저조할 수밖에 없고, 주최 측은 WCS 공인대회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일정이 짜여진 2016년은 당장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2017년엔 WCS 포인트의 의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일이다.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 해외 선수들의 경쟁력이 향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다. 여태까지 봐온, 그리고 현재 마련된 해외 팀의 연습 시스템은 절대 한국 선수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 진정으로 해외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원한다면 규제가 아닌 선수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2016년은 스타크래프트2 부흥을 위해 중요한 해다. 선수들이 희망을 찾아야 할 때에 절망부터 맛봐선 안 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WCS의 새로운 시스템이 부작용 우려는 없는지,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