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바(A.V.A)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클랜히트 화이트(이하 히트)의 리더 이승호는 한 클랜에서만 15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클랜의 흥망성쇠를 몸소 겪었고, 세계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따내며 클랜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이승호는 지난 2002년 히트 소속으로 카운터 스트라이크 대회에 출전하며 프로게이머의 삶을 시작했다. 2007년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아바에 뛰어들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하던 시절부터 실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입담까지 자랑했기에 많은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당시 FPS 게임 붐이 일어 많은 게임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대회 출전을 위해 게임사가 아닌 일반 직장으로 입사를 택했다.
시스템 엔지니어인 그는 대회 기간에 일주일 중 4일 정도를 연습에 할애하고 있다. 퇴근 후 3시간씩 팀 연습을 가지는 것. 그리 많지 않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히트는 2015년 열린 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국내에서는 아바 챌린지 오픈 윈터와 서머에서 연속 우승했고, 국제 대회에서는 아시안컵과 인터내셔널 챔피언십, 월드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했다. 그야말로 '히트의 해'였다.
히트는 지난해 상금으로만 약 1억 원을 벌어들였다. 5인이 나누고 세금을 제하더라도 직장인에게 꽤 짭짤한 수입이다. 성공한 부업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밤을 샌 적도 많았고요. 사원이고 바쁘니까 아바를 많이 하지도 못했고, 대회도 재미로 나갔죠. 대리로 승진하면서 여유가 생기고 게임을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에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엔 과장으로 진급했고요. 회사일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대회 출전으로 터치하는 일은 없어요. 거의 모든 대회가 주말에 열려 큰 영향도 없고, 연차를 대회 때 쓰기도 하고요. 상금 받으면 한턱 쏘기도 합니다."
전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연습 시간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닌데 어떻게 히트는 세계 최강의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끈끈한 팀워크였다. 클랜 자체에서도 오프라인 모임을 자주 즐기고 있고, 대회 팀인 히트 화이트의 경우엔 2주에 한 번씩 회식을 진행한다. 지난해부터 외식 프랜차이즈 스푼더마켓으로부터 정식 후원을 받아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작년부터 스푼더마켓으로부터 활동비를 지원받게 됐어요. 회사 관계자께서 평소 아바를 좋아하셨고, 저희의 열악한 환경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국가대표인데 스폰서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도움을 주셨죠. 후원사를 홍보 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데 고마울 따름입니다. 덕분에 팀원들끼리 펜션도 놀러가고, 레스토랑도 가면서 팀워크를 다졌죠. 자주 만나고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팀 안에 분쟁거리가 없어요.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한 선수에게 비난이 향하기 마련인데, 저희 팀은 그런 게 없어요."
히트는 84년생인 리더 이승호와 막내 선수의 나이차가 10살이 넘는다. 세대 차이가 느껴질 법도 한데, 오히려 많은 나이차이로 인해 동생들이 형들을 잘 믿고 따라준다고. 리더인 이승호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성격이 모난 선수는 일부러 뽑지 않는다"고 팀을 이끌어가는 비결을 전했다.
"팀에 성격이 모난 친구가 없어요. 그런 친구들은 일부러 뽑지도 않고요. 지금 팀원들이 톱클래스라 우리 팀에 온 것은 아니에요. 잠재력은 있는데 상위 팀에 가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믿음이 필요하거든요. 지금 당장 못하더라도 잘 하고 있다고 하는 선수들은 어느 순간 잠재력이 폭발해요. 나이든 형들이 밀어주고, 어린 선수들은 그 믿음에 보답하려고 더 열심히 하죠. 히트도 처음부터 완성된 팀은 아니었어요."
실제로 히트가 처음부터 우승을 밥 먹듯이 한 것은 아니었다. 2013년 출전한 대회에서는 라이벌 아스트릭에 밀려 전부 준우승에 머물렀다. '만년 2위 히트'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2014년부터 우승하기 시작해 '오픈 챌린지 최초 2회 연속 우승'과 '최초 연속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혹자는 나이가 들면 반응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30대가 넘어가면 FPS 게임이 어려워진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승호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됐다. 팀에서 스나이퍼 포지션을 맡고 있는 그는 공격 시에도 최전방에 설 때가 많다. 아바 리그의 한현우 해설은 "이승호 선수는 나이를 먹을수록 게임을 더 잘하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 반응속도가 좀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있어요. 하지만 게임을 오래 하다보면 직관력이 생겨요. 머릿속에 상대의 움직임이 다 그려지는 거죠. 저는 스나이퍼인데 제가 더 자주 뚫는 편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대회 성적이 더 좋아지고 있어요. 저도 신기해요. 즐겁게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승호는 2016년에도 챔피언 타이틀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2016년 목표를 묻자 "2015년 만큼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 술 더 떠 전 대회에서 한 맵도 지지 않고 전승 우승을 하는 것이 목표라 했다. 물론 본인 스스로도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2015년 히트가 보여준 활약상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 대해선 걱정이 앞섰다. 일본에선 나날이 아바 리그의 규모가 커지고 있고, 대만에서는 오는 3월부터 프로리그를 개최한다. 타이페이 어쌔신, ahq e스포츠 등 유명 팀들이 참여하고 일본의 데토네이션 게이밍도 대만 프로리그에 출전할 예정이다. 팀 수준과 리그 규모에서 한국은 일본과 대만에 한참 뒤처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승호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내주는 건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저희도 대만 프로리그에 나가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만약 주말에만 대회를 한다 해도 비용 최소화를 위해 경기 당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다녀와야 하죠. 우승 상금이 3천 5백만 원 수준이라 들었는데, 우승해도 비행기 값으로 다 나갈 것 같네요. 정상 컨디션이라면 우승할 자신이 있는데, 현지에서 반기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해외 팀들의 성장만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점점 좁아지는 국내에서의 입지도 큰 걱정거리였다. 때문에 아바를 서비스하는 네오위즈게임즈에 바라는 바가 많았다.
"사실 8년이나 된 FPS 게임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대단한 일이죠. 2012년이나 2013년에 온게임넷 대회 때는 현장 관람객이 500씩 오기도 했고, 당시 PD님에게 들은 말로는 시청률도 롤챔스 다음이라고 들었거든요. 헌데 그 많던 유저들이 떠났어요. 국내 사정이 매우 안 좋지만, 남미와 동남아에서 잘되고 있는 만큼 네오위즈게임즈가 국내 유저들의 의견도 반영하고 마케팅에 더욱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홍보와 마케팅에 더욱 힘써달라는 주문인데, 리그 최정상에 군림하는 팀의 리더가 하기에는 부담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아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인터뷰 말미에 몇 살까지 게임을 할 거냐고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겠다는 것. 오래오래 챔피언으로 남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 좋은 걸 왜 관두겠어요. 우승 못할 때까지 할 겁니다. 남한테 져서 은퇴하는 것은 보기 안 좋은 것 같아요. 선수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를 대체할 스나이퍼가 나오면 은퇴할 수 있겠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계속 해야죠. 2016년에도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