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열린 롯데 꼬깔콘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6 스프링 1주차에서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선수가 있었는데요. SK텔레콤 T1의 원거리 딜러 '뱅' 배준식이었습니다.
1세트에서 루시안을 택한 배준식은 엄청난 플레이를 펼치면서 일당백-정확하게 말하면 일당오이지만-을 해내려 했습니다. 장자식으로 말하면 루시안이 배준식인지, 배준식이 루시안인지 모를 정도였죠.
◆무너져가던 SK텔레콤
SK텔레콤은 진에어 그린윙스와의 1세트에서 신예들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주전 미드 라이너인 '페이커' 이상혁, 정글러 '벵기' 배성웅을 쉬게 하고 미드 라이너 '스카우트' 이예찬과 정글러 '블랭크' 강선구를 기용했죠. 2016 시즌을 길게 봤을 때 신인들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진에어 그린윙스를 상대로 시험대에 올린 거죠.
이예찬은 룰루를, 강선구는 킨드레드를 고르면서 자신 있는 챔피언으로 임했지만 실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예찬은 진에어의 미드 라이너 '쿠잔' 이성혁의 코르키와의 라인전에서 밀리면서 중단 1차 포탑을 일찌감치 내줬고 강선구는 18분에 퍼스트 블러드를 내주는 희생양이 됐습니다.
SK텔레콤은 3인 매복을 통해 킬을 먼저 내려고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8분에 하단으로 강선구와 배준식, 이재완이 숨어 들어갔고 진에어 서포터 '체이' 최선호의 트런들이 와드 매설을 위해 다가오자 협공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최선호가 점멸을 쓰면서 벽을 넘어 피하면서 킬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라인 상황도 좋지 않게 흘러갔죠. 진에어의 톱 라이너 '트레이스' 여창동이 그레이브즈를 가져간 탓에 '듀크' 이호성의 탐 켄치가 라인을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거리 공격 챔피언인 그레이브즈를 상대로 근접 공격 챔피언인 탐 켄치가 버티는 건 무리였습니다. 10분만에 상단 포탑을 잃은 SK텔레콤은 차례로 중단과 하단 포탑을 잃었죠. 18분에는 드래곤 합류 싸움을 펼치는 과정에서 '윙드' 박태진의 리 신에게 강선구가 잡히면서 퍼스트 블러드까지 내줬죠.
◆핑퐁 싸움에서도 졌다
포탑 파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진에어는 SK텔레콤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중앙 지역을 교전 포인트로 잡은 진에어는 5명의 선수들이 중앙 지역으로 모였다가 라인으로 분산하는 방식을 유기적으로 선보이면서 밀어붙였죠. 뚜벅이 챔피언인 미스 포츈을 선택한 '파일럿' 나우형이 최선호의 트런들과 함께 중앙 지역을 맡았고 기동성이 좋은 코르키를 택한 이성혁이 하단의 미니언을 정리했죠. 미니언이 중앙 지역을 밀어붙이면 여창동의 그레이브즈까지 합류하면서 2차 포탑을 깨뜨리기 위해 모여 들면서 강하게 압박했죠.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의 대처도 좋았습니다. 24분에 진에어가 밀어붙일 때 정글 지역으로 빠져 있던 이예찬의 룰루가 박태진의 리 신을 일점사했고 킬까지 만들어냈죠.
하지만 진에어는 압박하기 유리한 상황을 계속 활용했죠. 그레이브즈, 코르키, 미스 포츈이라는 원거리 공격형 챔피언을 셋이나 보유한 진에어는 박태진의 공백을 활용해 밀고 내려온 SK텔레콤의 공격을 미스 포츈의 쌍권총 난사를 통해 정리하고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28분에 중앙 2차 포탑까지 파괴하면서 지리한 핑퐁 싸움에서 이득을 챙겼죠.
33분에는 SK텔레콤의 정글러 강선구가 시야 장악을 위해 내셔 남작 지역으로 다가오자 이성혁의 코르키가 두드리면서 체력을 빼놓았고 최선호의 트런들이 얼음 기둥으로 이동 속도를 늦추면서 생존을 위해 궁극기를 빼놓았죠. 정글러를 본진으로 귀환하게 만든 진에어는 내셔 남작을 사냥했죠. 추격하는 과정에서 2킬까지 챙긴 진에어는 SK텔레콤의 하단 2차, 상단 2차 포탑을 차례로 깨뜨렸고 중앙 억제기까지 밀어내며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죠.
◆'뱅윤발'의 분노
SK텔레콤은 배준식에게 중책을 맡겼습니다. 진에어가 압박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미니언을 배준식이 챙기도록 배려했죠. 그 덕에 배준식의 CS는 400을 훌쩍 넘었고 코어 아이템을 하나 더 뽑을 수 있었죠. 정수 약탈자, 무한의 대검, 고속 연사포에다 도미닉경의 인사까지 갖춘 배준식은 치고 나갈 채비를 갖췄습니다.
배준식이 중앙으로 나갈 생각을 가진 이유는 단지 자신의 아이템이 잘 나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동료들이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SK텔레콤의 챔피언 구성을 보면 배준식을 위한 조합이기도 합니다. 이예찬의 룰루, 이호성의 탐 켄치, 이재완의 알리스타에다 강선구의 킨드레드까지 갖췄죠.
챔피언별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킬들을 보죠. 룰루는 '변덕쟁이'로 이동 속도를 올릴 수 있고 '도와줘 픽스'를 통해 보호막을 씌워줍니다. 궁극기인 급성장은 몸집을 키우고 추가 체력을 제공합니다. 탐 켄치가 '집어삼키기'를 통해 아군의 챔피언을 삼키면 지정 불가상태로 만들죠. 궁극기 '심연의 통로'는 아군이 탐 켄치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이동이 가능해지는 스킬입니다.
알리스타는 '승리의 포효'를 통해 주위에 있는 아군의 체력을 채워주고 킨드레드는 궁극기인 '양의 안식처'를 통해 일정 시간 동안 무적 상태를 만들 수 있죠.
배준식이 코어 아이템 4개를 갖춘 상황에서 SK텔레콤의 각본은 이랬을 겁니다. 룰루가 이동 속도를 높여주고 실드까지 걸어주며 루시안이 치고 나가서 공격했다가 체력이 빠지면 알리스타가 체력을 채워주는 방식입니다. 그러다가 진에어가 싸움을 걸어와서 루시안이 죽을 위기까지 맞는다면 룰루의 급성장을 통해 1차로 살리고 탐 켄치가 심연의 통로를 활용해 뒤쪽으로 빼냈을 겁니다. 그래도 위험하다 싶으면 킨드레드의 양의 안식처를 통해 무적 상태로 만들어서 생명력을 증대시키는 거죠.
SK텔레콤의 이 작전은 굉장히 그럴싸했습니다. 41분에 내셔 남작을 가져간 SK텔레콤은 바론 버프를 앞세워 포탑을 밀기 시작했죠. 중앙 지역을 두드리던 SK텔레콤은 진에어의 정글 지역으로 난입했고 룰루의 후원을 받은 배준식은 이성혁의 코르키를 잡아내면서 킬까지 냈죠. 이후 포탑 3개와 드래곤을 두 번 잡아낸 SK텔레콤은 골드 획득량 차이도 2,000까지 좁혔습니다.
◆아, 바론
'뱅윤발 쇼'의 마지막은 패배였습니다. 내셔 남작을 가져갈 타이밍이 왔다고 판단한 SK텔레콤은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했죠. 49분 중앙 교전에서 진에어의 서포터 챔피언인 트런들의 체력을 3/4까지 떨궈 놓은 SK텔레콤은 중앙 포탑을 공격하지 않고 타깃을 내셔 남작으로 바꿨습니다.
SK텔레콤의 작전은 성공하는 듯했지만 진에어가 적절한 위치에 매설한 와드 하나에 의해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SK텔레콤 선수들이 내셔 남작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와드(동그라미)에 의해 확인한 진에어는 방향타를 내셔 남작쪽으로 돌렸죠. 그리고 나서 가장 뒤쪽에 있던 나우형의 미스 포츈이 쌍권총 난사를 통해 SK텔레콤 선수들의 체력을 모두 빼놓았고 한 명씩 끊어 내면서 에이스를 띄웠습니다. SK텔레콤이 내셔 남작을 잡긴 했지만 버프를 단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에 그대로 경기가 끝났죠.
만약 SK텔레콤이 내셔 남작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진에어 선수들은 배준식의 루시안이 엄청나게 '들이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경기석에서 나눴다고 하더군요. "다음에 루시안이 들어오면 원거리 딜러 챔피언들도 같이 맞으면서 싸우자"라고요.
포탑을 더 압박하면서 여유를 가졌더라면 배준식의 '뱅윤발쇼'는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이야기한 스킬 사용의 흐름이 구현되면서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루시안이 전장을 지배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바론 버프를 두르고 밀어붙여햐 한다는 조급증이 '뱅윤발' 배준식의 루시안에게 호접지몽을 선사하고 말았습니다.
두산백과에서 호접지몽을 풀이한 해설의 마지막 문구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라고요.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