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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장인정신과 똥고집

게임 밸런스를 해칠 정도로 강력한 프로토스 유닛 사도.(사진=블리자드 발췌)
게임 밸런스를 해칠 정도로 강력한 프로토스 유닛 사도.(사진=블리자드 발췌)
다년간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취재해왔고,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종족 밸런스에 대해 '징징'대는 소리는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서 이제는 귀여울 정도다. 스타2 커뮤니티에서도 '징징글'이 없으면 딱히 할 이야기가 없어 보일 때가 많다.스타2 게이머들 사이에서 밸런스 이야기는 만성적인 것이었고, 선수들이 새로운 전략으로 밸런스 논란을 극복할 때마다 커뮤니티에선 어김없이 'DK 천재설'이 나왔다. 그러나 공허의 유산으로 넘어오며 스타2가 처한 상황은 이전과 완벽히 달라졌다.에반게리온 팬들이 우려했던 2015년 마지막 날의 서드(Third) 임팩트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스타크래프트2가 서드 임팩트의 충격에 빠진 모양새다. 세 번째(Third) 확장팩인 공허의 유산에서 '사도'가 인간(테란)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선수들은 더 이상 징징대지 않는다. 화를 내기 시작했다. 블리자드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프로게이머들이, 블리자드를 향해 일갈하기 시작했다. 최근 취재를 갔던 GSL에서는 인터뷰에서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사도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전의 애교가 묻어나는 징징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였다.지난 15일, GSL 시즌1 코드A 경기에서 MVP 치킨마루 안상원이 스베누 최지성을 상대로 4세트에서 선보인 '땡사도' 전략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자유의 날개 시절 그 강력하다는 7차관 러시도 테란의 입구를 쉽게 부수지 못했다. 하지만 사도는 달랐다. 상대가 벙커에 건설로봇을 붙일 찰나의 틈도 주지 않았고, 너무나도 쉽게 승리를 따냈다. 마침 현장엔 블리자드 본사 임직원들도 자리해 경기를 관람 중이었다. 그들은 땡사도를 보고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두를 경악케 한 '땡사도' 전략.
안상원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사도만 뽑았더니 이겼다. 블리자드 밸런스 팀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사용한 전략"이라며 "팀원들과 연습할 때 사도로 이기면 미안하다고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프로토스가 이기고도 '프뻔뻔'이 될 수 없는 현실이다.실력으로 이기면 될 것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2는 전략 게임이다. 한 유닛만 사용해 이길 수 있다면 전략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전략 게임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게임 밸런스 조정만 하면 되는, 별 시답잖은 문제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사도 논란의 본질은 밸런스가 아닌 소통의 문제다. 선수들은 사도 논란이 있기 전부터 스타2와 관련한 건의사항이나 정책들을 블리자드 측에 끊임없이 전달해왔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이나 게임단 관계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해외대회 출전금지 조항 같은 규제만 늘었다. 한 선수는 "블리자드 코리아에서 본사로 의견을 전달해주지 않는 것 같다"며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최근 관계자들 사이에선 블리자드가 스타2에 손을 놨다는 얘기마저 심심찮게 들린다. 잘나가는 하스스톤만 챙기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자주 들려온다. 그만큼 스타2가 처한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타2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서민들은 감히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고급 레스토랑 게임이 돼버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밸런스 패치를 게을리 한 탓에 기존 고객마저 발길이 끊기게 생겼다. 오픈 이후 계속해서 지적 받아온 매칭 시스템과 영웅별 밸런스는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 13일 나온 패치노트에서도 밸런스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다. 거의 매달 패치를 진행해 밸런스를 맞추는 '옆 동네 게임'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블리자드 게임 스토리상 그렇게 많은 캐릭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추가되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소위 '블빠'를 양산하던 블리자드지만 최근엔 '찬양'보다 '비판'이 더 잦아졌다. 유저들이 점점 등을 돌리려 하고 있는 시점에도 블리자드는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장인정신으로 만들었으니 그냥 쓰라는 얘기다. 소통보다 자존심을 택한 듯한 모습이다.스타2는 신작 출시에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고, 히어로즈에는 새로운 손님이 없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옛 영광을 잃었고, 오버워치의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북미에선 몰라도 최소한 국내에선 블리자드 게임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블리자드의 위대한 장인정신을 한국 게이머들이 몰라준다고 되레 불평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명심해야 한다. 잘 돼야 장인정신이고, 망하면 똥고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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