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호랑이 자체로도 기백은 뛰어나지만 날개라는 티핑포인트는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크레이머' 하종훈의 날개는 CJ 엔투스였다.
한국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2015 월드 챔피언십. 이후 영 보스 소속으로 출전했던 2015 KeSPA컵. 부진한 성적으로 무대를 내려왔던 하종훈이 CJ에 입단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하종훈은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2016 스프링에서 대활약했고 CJ의 보물, 희망으로 떠올랐다.
애물로 시작해 보물이 되기까지. 하종훈에게 날개를 달아준 CJ 엔투스와 비상의 무대가 됐던 롤챔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날개를 달아준 CJ 엔투스와의 만남
하종훈과 CJ 엔투스와의 인연은 2년 전, 박정석 감독을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종훈은 당시 나진 e엠파이어의 수장을 맡았던 박정석 감독에게 연습생 입단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MiG 위키드행을 선택했고, 고등학교 재학 문제로 위키드행까지 불발되며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후 플래시 울브즈에서 2015 대만 마스터 시리즈 서머를 치른 하종훈은 한국에 돌아와 2015 KeSPA컵에 출전했다. 별다른 활약상없이 방황이 길어지는 사이 박정석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이전부터 박정석 감독님한테 나진 원거리 딜러를 구할 때 말해달라고 연락은 했었어요. 그리고 CJ로 옮기신 감독님께서 저한테 따로 연락을 주셨죠. 이번에도 거절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입단하게 됐어요."
날개를 달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CJ와의 첫 만남은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집합소 같았다. 하종훈은 자신의 미숙한 운영과 낯선 환경에서 긴장하는 버릇이 드러난 롤드컵 이후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런 '겜알못'이 CJ에 입단했는데 그 곳엔 자기보다 더한 선수들이 많았다.
하종훈에게 필요한건 날갯짓을 익힐 시간이었다. 자신의 실력 향상을 일굴 시간도 필요했지만 동료들 간에 믿음을 쌓을 시간도 필요했다. 처음 한 달, 삐걱거리기 일쑤였던 CJ도 날갯짓을 익힌 후에야 조금이나마 비상할 수 있었다.
"처음 한 달은 동료들끼리 다투는 것도 많았고 불신도 많았어요. 아무래도 '매드라이프' (홍)민기형 빼고는 다들 경험이 부족했으니까요. 그러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까 서로 간에 믿음이 생기고 호흡이 맞아지더라고요. 이젠 제법 괜찮은 팀워크가 나와요."
◆'씨체원'이란 이름을 안겨준 하종훈의 봄
롤챔스에서의 데뷔. 생각보다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녹록치는 않았다. 하종훈은 "어렵다"는 한 마디로 롤챔스를 설명했다. 연습을 잠깐만 게을리해도 금세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하종훈을 옆에서 붙잡아준 건 서포터 '매드라이프' 홍민기였다. 하종훈은 홍민기를 팀의 핵심이라 꼽으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 언급했다.
"1라운드 때 제 평가가 좋았잖아요. 그런데 전 (홍)민기형의 오더를 제 것으로 만들면서 호흡을 맞춘 게 다예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가 저한테 오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처음에 조곤조곤하게 동료를 이끌던 '민기형'은 이젠 무서운 형이 됐다고 한다. 하종훈은 그 계기를 스프링 2라운드 진에어 그린윙스전으로 꼽았다. 당시 CJ는 1세트 장기전 끝에 승리를 따냈으나 2, 3세트에 무너지며 패배했다.
"원래는 민기형의 말을 잘 들었어요. 그런데 2라운드 진에어전부턴 저나 동료들이 조금씩 민기형의 말을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때부터 호흡이 흐트러졌죠."
진에어 그린윙스 전. 그 때까지만 해도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이어가던 CJ는 이후 4연패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하종훈은 여전히 그 경기에 미련이 남는다.
"진에어전에서 패배하고 정신이 흔들렸어요. 이겼다고 생각한 경기에서 지니까 '우리가 이렇게 못하나' 싶더라고요. 팀 분위기가 저조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져 연패에 빠졌죠. 동료들 전부 화를 많이 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어요."
하종훈은 자신의 롤챔스 첫 시즌을 어떻게 평가할까. 점수를 매겨달라 묻자 "80점"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하종훈은 'CJ 사상 최고의 원딜이다'라는 뜻의 '씨체원'이란 평가에도 겸손을 표했다.
"아직은 보여드릴 게 더 많아요. '씨체원'보다는 그냥 씨제이 원거리 딜러가 맞는 것 같아요. 아직 씨체원이라는 호칭은 안 어울려요."
◆"진에어 그린윙스를 반드시 꺾을 거예요"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하종훈은 자신감 회복을 가장 큰 목표로 여름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스프링 때 발견한 문제점을 고쳐가면서 연습했어요. 휴가 때는 스트레스를 풀 겸 다른 게임도 많이 했죠.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했는데 LoL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팀적인 측면이 강하다보니 배울 게 있었어요."
스프링 때는 역시 락스 타이거즈와 SK텔레콤 T1, kt 롤스터 등 강팀들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같은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서도 '뱅' 배준식과' 프레이' 김종인이 까다로웠다. 하종훈은 서머 때만큼은 강팀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문제점은 파악했다. 이젠 남은 건 극복이다.
"한 세트에서 패배하면 이후 세트에서도 무너져요. 이 부분을 줄여야 할 것 같아요. 동료들에게 얘기하면 속상해 할 것 같아서 말을 아끼고 있어요. 아마 각자 알고 있을 거예요."
목표는 역시 스프링 때 아쉽게 포기해야 했던 포스트 시즌이다. 5위가 목표라는 하종훈은 스프링 연패의 시작이었던 진에어를 꼭 꺾어야 한다는 다짐이다. 그래야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날개를 단 호랑이 하종훈의 비행은 이제 막 시작했다. 중간에 난기류를 만나 멈칫하기도 하고 때때로 고꾸라져 추락 위기에 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밑에서 받쳐주는 동료와 뒤에서 밀어주는 팬들이 있다면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