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프릭스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미드 라이너 '미키' 손영민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었다. 2016 스프링 시즌에 손영민은 단점으로 지적되던 챔피언 폭 문제까지 해결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고 포스트시즌이라는 경험치까지 축적했다. 손영민에게는 '2년차'가 징크스가 아닌 '축복'이었던 셈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데뷔 두 시즌 만에 이룬 놀라운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손영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포모어 징크스까지 무력화시킨 성장 배경을 들어봤다.
◆'아나키스폰좀요' 솔로 랭크 1위의 절박함
2015년 12월, 솔로 랭크 1위의 닉네임이 시선을 끌었다. '아나키스폰좀요'. 스트리밍 계약 문제로 인해 KeSPA의 위탁운영까지 중단된 아나키의 미드 라이너 손영민의 아이디였다.
"5명이 모인 팀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혹시라도 제가 솔로 랭크 순위권에 들어서 닉네임을 바꾸면 어디서라도 제의가 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죠.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솔로 랭크 상위권에 있는 선수의 절박함 뿐이었어요."
그 간절함은 업계 관계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아나키는 2016년 1월 아프리카TV의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 프릭스로 새롭게 태어났다. 손영민은 "최정상에 오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팀과 함께 코치진도 바뀌었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오랜 기간 CJ 엔투스의 수장을 맡았던 강현종 감독과 정제승 코치를 영입했다. 레블즈 아나키의 '하차니' 하승찬 코치가 아마추어였던 선수들을 프로의 길로 인도했다면, 강현종 감독과 정제승 코치는 프로 그 이상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코치님이 오신 후 많은 게 바뀌었어요. 새롭게 배울 때마다 '이렇게 하면 더 쉽게 안전하게 이길 수 있구나'라는 걸 생각하게 돼요. 개개인의 기량도 좋아졌고요. 아나키 때는 게임이 불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젠 불리해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서 열심히하게 되더라고요."
새로운 이름과 코치진으로 똘똘 뭉친 아프리카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롤챔스 2016 스프링 1라운드의 부진을 씻고 당당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이다. 농담으로만 주고받던 포스트시즌을 치렀지만 욕심 많은 손영민은 아쉬움이 더 컸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 됐을 때 기분은 좋았죠. 하지만 엄청 기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제 목표는 4강이었기 때문에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와일드카드전에서 떨어져서 더 아쉽기도 하고요. 우승을 했다면 행복해서 웃었을 것 같아요."
◆자신감에서 해결한 챔피언 폭
'암살자'와 손영민의 관계는 오묘하다. 손영민의 이름을 알리게 해준 고마운 존재임과 동시에 "암살자 밖에 못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손영민은 롤챔스 2016 스프링에서 16개의 챔피언을 사용하며 스베누 소닉붐의 '사신' 오승주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챔피언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몇 개의 암살자 챔피언만 제외하면 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시즌 내내 저격밴에 많이 애먹었어요.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제가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 다른 선수들 입장에선 몇 개만 금지하면 제 힘이 빠진다고 생각했을 법해요. 그런데 저격밴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팀에 민폐를 끼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감이 없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려고 해도 결국엔 가장 자신있는 챔피언에 손이 갔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해 많은 것을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가 아닌 팀 전체가 함께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팀한테 맞춰야 할 단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지르나 바루스 등 다양한 챔피언을 선택했죠. 자신이 없던 챔피언들도 몇 판 해보니까 기본은 하는 것 같았어요. 팀에 도움이 되는 챔피언을 사용할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요."
◆'세체미'로 기억되고 싶다
롤챔스 2016 스프링에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미련은 남는다. 특히 손영민은 와일드카드전에서의 패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했다. 자신의 부진으로 인해 팀이 함께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SK텔레콤 T1과 락스 타이거즈의 결승전을 보고 끓어오르는 열의를 겨우 식혔다. 손영민은 서머 시즌만큼은 많은 팬들과 큰 무대가 따르는 결승전에 진출하겠단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돌아봤다.
"던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때로는 불리한 상황에서 역전할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무리한 적도 있었죠. 의도는 좋았지만 판단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서머 때는 고쳐볼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이 비웃을지 모르지만 제 목표는 월드 챔피언십 진출이예요." 손영민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다가오는 시즌의 목표를 말했다. 누가 비웃을 수 있을까. 빛나기 위해 오늘도 연습에 나설 손영민의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여태까지는 잠재력이 있지만 무언가 아쉬운 선수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열심히 노력해서 빛을 발휘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체미(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라는 말의 준말이 '세최미'이나 팬들은 '세체미'라고 쓰면서 공용어가 된말)'라는 타이틀을 건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손영민은 감사와 사과의 일사를 줄줄이 늘여놓았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진심이 묻어난 말을 지울 수 없어 그대로 옮겨본다.
"우선 감독, 코치님께 스프링 시즌에 정말 감사했고 서머 시즌도 잘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동료들에게도 지금까지 열심히 해줘 고맙고, 서머 시즌도 잘 해보자고 말하고 싶고요. 더 열심히 해서 월드 챔피언십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팬들에게도 경기에서 패배한 날 웃으면서 대해줄 수 없어서 죄송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성숙해져서 오겠습니다."
경기가 패배한 날 찡그리는 손영민을 보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더 성장하려는 손영민만의 성장통이니 말이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