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관계자들은 혼인하기가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이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야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솔로로 살아가는 관계자들이 많은 이유다. 10년 넘도록 e스포츠 업계에서 일했던 유대현 해설 위원이 건넨 청첩장을 받고 격하게 축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 해설 위원에게 아내가 될 사람에 대해 물었더니 한 때 관계자였다고 설명했다. 2%가 채 되지 않은 관계자를 아내로 영입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드라마 같았던 만남과 6년의 연애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 초창기에 선수로 활동했던 유 해설 위원은 2006년 이승원 해설 위원의 권유로 해설 위원이 됐다. MSL의 하부리그인 서바이버 리그를 중계하면서 해설자로 뛰기 시작한 그에게 아름다운 '처자'가 메이크업을 해줬고 한 눈에 반했다.
"MBC게임 분장팀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엄청나게 미인이어서 눈에 띄었는데 방송에만 집중해야 하는 초임 시절이어서 고백할 생각도 못했어요. 마음에만 담아뒀죠."
시기를 놓친 유 해설 위원은 그 뒤로 그녀를 보지 못했다. 잠시 도와주러 왔던 그녀는 다른 일로 인해 MBC게임을 떠났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후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친분이 있던 분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MBC게임을 찾았던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고백할 시기가 없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만나보자고 했고 결혼까지 골인했죠."
유 해설 위원의 그녀는 더 이상 분장팀으로 일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한 뒤 LG 생활건강에 취업했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 출퇴근이 일정한 대기업 직원과 저녁부터 밤 늦게까지 중계를 해야 하는 해설자의 연애 방법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운동을 즐기면서 연애를 이어왔단다.
"저는 헬스 클럽을 꾸준히 다니고 가끔 농구를 하는데 아내될 사람은 클라이밍과 스쿼시를 좋아해요. 취미가 같다 보니 같이 땀을 흘리면서 시간을 보냈죠."
운동을 사랑하는 커플이다 보니 웨딩 사진에도 운동복 사진이 담겨 있다. 자유복 콘셉트를 잡아달라는 웨딩 업체의 부탁에 피트니스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어지간한 피트니스 센터 강사들이 모델로 나선 것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프로리그의 수호신
유대현 해설 위원은 오랫동안 프로리그 중계를 맡아 왔다. MBC게임에서 담당한 프로리그를 꾸준히 중계했던 유 해설 위원은 스포티비게임즈가 바통을 이어받은 뒤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이 바뀐 프로리그에서도 채민준, 고인규 해설 위원과 2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프로리그가 진행된 시간 내내 해설자를 맡았어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에서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온 이후에도 해설자로 활동하다 보니 10년 가까이 됐네요."
유 해설 위원은 프로리그의 매력을 신예의 데뷔 무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지는 개인리그의 벽은 높지만 풀리그인 프로리그는 신인들에게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연습실에서 보여준 기량을 프로리그에서 다시 발휘한다면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고 코칭 스태프에게 인정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은 레전드가 된 이영호나 이제동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두 선수 모두 개인리그 우승을 통해 팬들에게 각인됐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매년 꾸준한 성적을 거뒀거든요. 이영호 같은 경우는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된 위너스리그에서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출전해 32연승을 달리면서 '끝판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죠."
스타2로 종목이 바뀐 이후 프로리그에 등장하는 선수들이 고정화된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신예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들의 유입이 적어지면서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의 발굴이 어려워진 것.
"많은 신예가 등장해야 프로리그라는 무대가 풍성해지는데 조금 위축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CJ와 MVP, 아프리카 등에서 새로 발굴한 선수들이 프로리그에 나와서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랍니다. 이 선수들이 스타2의 미래가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방송 포맷 도전하고파
유 해설 위원은 리그 중계만 맡지 않았다. MBC게임 시절 非리그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스타무한도전(팬들에게는 스무도라는 약자로 더 알려졌다)'에서 박상현, 정인호, 임성춘, 강현종, 손대영 등과 함께 활약했다. 스타크래프트를 활용해 시청자들과 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예능 형식을 띄면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중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들어갈 프로그램이어서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이순옥 피디님 지휘 하에 자유롭게 놀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방송에 쉽게 적응했고 농담 능력이 많이 늘었죠. 게임 방송의 최대 장점이 팬들에게 실시간으로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죠."
현재 스포티비 게임즈에서는 스타2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중계를 맡고 있는 유 해설 위원은 황영재, 박진영 해설 위원과 인터넷 방송 포맷을 통해 연승전, 아케이드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스무도'를 통해 제가 배운 것은 게임은 즐거워야 한다는 거에요. 게임, e스포츠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 시청자, 팬들에게 즐거움을 계속 들이고 싶어요. 지금 유행하고 있는 포맷 이외에도 창의적인 포맷을 보여드릴 계획을 갖고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스포티비게임즈에서 채민준, 고인규와 함께 했던 '모두의 유채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시청자 참여형 프로그램을 해봤지만 함께 한 사람들이 유쾌했기 때문이다. 리그 중계에서 호흡을 맞췄던 채민준 캐스터, 고인규 해설 위원과 함께 새로운 포맷으로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보기에 고인규는 방송 천재에요. 중계 때는 정확한 정황 전달을 해주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말 잘 놀거든요. 채민준은 스포츠와 e스포츠를 오가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스타2 레벨을 올려서 예선에도 나갈 정도로 열정적이에요. 이현경 아나운서 또한 생방송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100번 넘게 연습하는 꼼꼼함이 몸에 배어 있죠."
◆자랑스런 남편 되겠다
결혼을 결심한 남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남편이 되느냐, 어떤 아빠가 되느냐다. 결혼을 앞두고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도 그런 내용이다. 유 해설 위원은 결혼 선배인 김정민 해설 위원에게 많이 의존했다.
"김정민 해설 위원이 아이 같은 제 질문에 대해 어른스럽게 답변해줬어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모든 일을 함께 하는 아내이기에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공유하고 의논하라고 하더라고요."
유대현 해설 위원은 또 "아내가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방송국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잘 들어줘요. e스포츠 업계에 대한 이해도 높고요. 자기는 든든히 둥지를 지키고 있을테니 제게 높이 나는 새가 되라고 하더라고요. 저 좋은 사람 만난 것 맞죠?"
아내 자랑하는 사람을 팔불출이라고 한다면 유 해설 위원은 100% 팔불출이다. 하지만 부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부러우면 진 거라는데 장가 가는 사람에게 지는 일만큼 기쁜 일도 없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