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서 프로게이머라는 캐릭터를 만난 것도 새로운데 묘사가 섬세했다. 손가락을 퉁퉁 튕기는 버릇부터 드론을 활용해 '섬'이라는 경기장을 휘두르는 모습. 작가가 프로게이머에 대해 상당한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본 김우준 작가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흔히 '블빠'라고 하던가. 김우준 작가는 블리자드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명산'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김우준 작가는 기자도 잘 알지 못하는 선수 이름을 나열하며 e스포츠 '덕후'임을 증명했다.
웹툰이라는 계기로 만난 한 명의 'e스포츠 팬'과 대화를 나눠봤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 3P에 대한 스포일러(?)도 살짝 들을 수 있었다. 추억을 되새기기에 더없이 즐거웠던 인터뷰를 공개한다.
◆스타크래프트와 블리자드의 영원한 팬, 김우준
가장 먼저 좋아한 게임은 워크래프트2. 이후 스타크래프트1과 디아블로1을 즐겼다. 현재는 오버워치에서 한조랑 위도우메이커를 쏠쏠하게 즐기고 있다. 김우준 작가는 말 그대로 '블리자드빠'였다.
"블리자드 게임의 컨셉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블리자드만의 밸런스와 특색도 좋아하고요. 오버워치로 오면서 게임이 가벼워지긴 했는데 원래 블리자드는 대중보단 '게임 덕후'들을 겨냥한 컨셉을 사용했어요. 그게 저를 저격했죠."
블리자드 게임을 주로한 만큼 e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스타크래프트였다. 특히 스타크래프트2 초창기에 e스포츠를 즐겼다는 김우준 작가는 선수 이름을 줄줄 읊을 정도로 기자 못지 않은 지식을 자랑했다.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리그(이하 GSL) 오픈 시즌 때 김원기 선수의 결승전을 봤어요. 굉장히 인상 깊었고, 이후에 e스포츠를 챙겨봤죠. 2012년, 2013년에 가장 많이 본 것 같은데 당시에 제가 좋아했던 선수는 거의 은퇴했어요. 박현우, 안홍욱, 김상철, 최지성 등이요. 이상하게 2인자를 좋아했어요. 저그 중엔 홍진호 선수와 박수호 선수를 좋아했죠."
김우준 작가가 e스포츠에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요컨데 그가 연재중인 웹툰이 가진 매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줄거리, 때론 멍하게 만드는 엉뚱함 혹은 소름 돋는 반전. 모든 것이 e스포츠에도 있다.
"매 판마다 다양한 전략과 선수들의 재치를 볼 수 있잖아요. 게임 안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에 대한 대처를 보는 게 흥미로워요. 개개인의 선수가 주목받는 스포츠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e스포츠는 선수마다 성향이 달라서 각각 다른 그림을 만들어 내거든요. 10분-20분 안에 각기 다른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워요."
◆"명산은 3P의 끝판왕 같은 존재"
과거부터 지략이 뛰어난 캐릭터들은 학자나 수학가, 혹은 체스 플레이어나 바둑 기사였다. 하지만 김우준 작가는 프로게이머를 선택했다. 판단력과 직관력이 뛰어나고, 판을 짜는 능력이 뛰어난 프로게이머의 특성이 명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으로 캐릭터를 설정한 후엔 '롤 모델'이 필요했다. 김우준 작가는 워크래프트3의 장재호와 스타크래프트2의 임재덕을 연상했다.
"장재호 선수와 임재덕 선수가 가장 큰 모티브였어요. '황제'라는 별명은 임요환 선수한테 가져왔죠. 홍진호 선수에게도 아이디어를 얻으려 했는데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섞을 수 없었어요."
"명산은 타인의 심리를 읽는데 능한 캐릭터예요. 그건 임재덕 선수에게서 영감을 얻었죠. 임재덕 선수가 스타크래프트2에서 활동할 당시의 별명이 '명탐정 재덕'이었어요. '전지적 재덕 시점'이라고도 불렸죠. 임재덕 선수가 상대방의 생각을 읽듯 명산에게도 그런 능력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건 싸이코패스 캐릭터인 지원에게 없는 능력이죠. 지원이 명산을 존경하게 된 이유기도 하고요."
프로게이머 명산에게 '하이드 앤 시크'는 하나의 경기다. 섬은 경기장이고, 드론은 명산의 눈이 되어준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유닛과 같다. 가장 정적인 캐릭터면서도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명산을 김우준 작가는 '끝판왕'이라 표현했다.
"명산은 쉽게 말해서 끝판왕이예요. 참가자 중 최고 지략가죠. 명산은 다른 참가자들을 유닛처럼 조종하면서 판을 풀어가요. 티를 내지는 않지만요. Lv28화를 보면 수의사 캐릭터가 미식 축구 선수에게 석판을 뺏고 싶어 고민할 때 쓸데 없는 질문을 던지죠. 태훈을 이용해보라는 힌트였어요. 대사가 많지 않은 캐릭터인만큼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보시면 명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3P와 명산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도 들을 수 있었다. 김우준 작가는 "명산이 정보를 모으는 시간은 끝났다. 움직일 때가 됐다"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명산이 유일한 끝판왕 답게 섬과 태훈의 비밀을 가장 먼저 푸는 캐릭터로 활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스포츠, 소재로의 가치 충분하다
어릴 적 슬램덩크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농구 코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 다니는 캐릭터들과 1초도 방심할 수 없는 박진감까지. 스포츠 만화라면 응당 기대하게되는 빠른 움직임과 열정이 만들어 낸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긴 만화였다.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e스포츠도 만화로 표현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게임 내에서 아무리 치열해도 선수들은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만을 딸깍거린다. 가끔 가다 보이는 표정 변화 빼고는 움직임이 없다. 그렇다면 e스포츠는 소재로써는 부족한 것일까.
"정적인 e스포츠의 특성을 바꾸기는 힘들어요. 역동적으로 표현하려기 보다는 10분, 15분이라는 경기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 것 같아요. 매일 승부하는 캐릭터니까 승부, 심리, 성장에 집중하면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 거리가 나오죠."
김우준 작가는 고스트 바둑왕을 예로 들었다. 두 선수가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앉아 놓는 한 수로 전개되는 만화는 지루할 새가 없다. 바둑판 위에 놓이는 돌 하나에 심리전과 전략이 있으므로 충분한 박진감과 긴장감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우준 작가는 e스포츠로도 충분히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라면 무명에 실력이 없던 캐릭터가 성장하는 스토리를 구상할 수 있죠. 만약 팀전이라면 각각의 특기를 가진 선수들이 꾸린 팀 대결 구도에 맞춰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요. e스포츠는 몸이 아닌 머리를 움직이는 스포츠예요. 만화로 표현하면 일반 스포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계속 재미있는 순간을 만들테니 e스포츠도 3P도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일수도, 다짐일수도 있는 마지막 말로 인터뷰는 끝났다. 오랜만에 e스포츠에 대해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는 김우준 작가만큼이나 나 또한 즐겁고 또 유익했다. e스포츠와 웹툰.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이 만남은 이제 시작이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