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가 창간 8주년을 맞은 2016년에는 인기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ESC 에버와 MVP가 챔피언스 코리아에 승격하면서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비기업 팀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매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락스 타이거즈도 마찬가지입니다.
SK텔레콤, kt, 삼성, CJ 등 대기업 위주로 꾸려진 국내 e스포츠 업계에서 비기업 팀들의 생존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이에 락스의 정재훈 단장, ESC 송성창 대표, MVP LoL 팀의 권재환 감독을 한 자리에 모시고 각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비기업 프로게임단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로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부장이 진행을 맡은 좌담회는 상편과 하편으로 나뉘어 게재됩니다. 하편에서는 선수의 이적과 영입에 대한 고민, 외국 팀과의 파트너십, 앞으로의 비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기업 팀은 돈으로 선수의 이적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반면, 비기업 팀에서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A 정재훈=우승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우승해도 고민인 것이 맞습니다. 당장 몸값이 뛴 선수들과 연봉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엄청난 고민이죠. 더 큰 고민은 선수 수급 문제에요. 선수가 중간에 빠지면 채워야하는데, 일반 스포츠처럼 2군, 3군이 있고, 구단의 트레이닝 시스템에 맞춰 신인을 키우질 못하니 로스터 제한이 없어도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기가 어렵죠. 선수 수급이 제일 머리 아프고, 당장 누가 좋은 제안을 받아서 나간다 하더라도 말릴 명분이 없어요. 한국은 병역 문제가 있다 보니 상무 같은 팀에 있지 않은 이상엔 군대에 다녀오면 감각이 떨어질 테니 갈 수 있을 때 보내줘야 하죠.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SK텔레콤 T1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것처럼 저희도 프랜차이즈 스타를 유지하고 싶어요. 이건 어느 팀이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런 선수들을 잡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꽤 머리 아픈 고민이죠. 자금적인 문제에 직면하지만 스폰서를 유치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선수들을 이용해 돈 버는 것은 너무 장삿속인 것 같고. 그런 단점이 있죠.
Q 수익 외에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A 송성창=e스포츠가 사업적으로 살릴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생각해요. 기업 팀이라면 동원할 수 있는 리소스가 많고 풍부한데, 비기업 팀은 그런 게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죠. 제가 생각한 솔루션은 각 분야의 역량을 가진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거예요. 서로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영역에 대해 같이 고민해서 돌파구를 만드는 거죠. 팀 혼자서는 어려워요. 상생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죠.
Q 팀의 수익활동을 돕기 위한 유니폼 판매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어떨까요?
A 송성창=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큰 자금이 들어오는 스폰서 작업에만 매달리다가는 다양한 수익원을 창출하기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팀이 팬들과 만나는 접점을 더 많이 찾아야 해요. 유니폼 판매와 같은 것이 시작이 되겠지요. 산업 자체가 망하진 않겠지만 발전이 더뎌질 수 있죠. 내년이 분수령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같이 살 수 있어야 해요. 내가 있는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면 밥그릇 뺏기는 걸 걱정할 게 아니라 상생을 고민해야죠.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팬들에게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을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채널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권재환=실제로 유니폼을 판매하던 팀이 있었는데, 제가 듣기로는 큰 이득이 되지 않았다고 해요. 팀 이미지나 판매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총투자비용과 이득을 저울질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주체들이 모여 논의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송 대표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A 송성창=관련해서 협회나 라이엇 게임즈와도 많이 얘기가 오가고 있지만 회의적인 부분들이 있죠. 외국에서는 유니폼 판매와 같은 이슈가 생기면 좋아하는데 국내에선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관람 문화 측면에서 봤을 때 팬들도 각 팀의 유니폼을 입고, 팔리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터키에서 우리 유니폼을 500장 정도 사고 싶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는데, 한국에선 문화가 다르다 보니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관람 문화가 좀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e스포츠 팬들은 너무 조용히 봐요. 야구에선 카메라가 잡히면 키스를 하는데, e스포츠에선 얼굴 가리기 바쁘죠. 자격지심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에요.
Q 정책적으로 원하는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정재훈=바뀌었으면 싶은 것은 많지만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죠. 쉽게 오픈해서 코멘트 하긴 어렵다 생각해요. 머천다이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생태계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프로야구가 언제 가장 큰 성장을 했나 되짚어보면 그리 오래 되지 않거든요.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이 됐죠. 많은 분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고 봐요. 한국의 스포츠 시장은 결국 내수 싸움인데, 한국은 북미나 중국과 비교해서 규모가 작기 때문에 머천다이징 상품도 판매할 수 있는 양에 큰 차이가 있죠. 해외에는 클럽 팀이 많은데 그들과 교류해서 같이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팬덤이 커지면 할 수 있는 부가 사업들이 생기죠. 그게 국내에선 한계가 있으니 해외로 확장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페이스북을 몇 만 명이 구독한다고 해서 마케팅에 큰 의미는 없어요. 프나틱 같은 경우는 몇 백만 명이 보는 수준이죠. 그러니 같은 후원을 받아도 그 규모가 다를 수밖에요. 스페인 프로축구에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있듯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e스포츠 프랜차이즈 스타가 나오는 한국과 해외의 팬들이 합쳐지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득실을 따지지 않고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프로 스포츠 종목은 각 팀마다 구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프로게임단은 홈 경기장이 없고 방송사가 정해져있으니 어려운 구조죠. 멀티숍을 운영해도 관중석 규모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요. 대신 스트리밍을 통해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팬들이 응원을 하다가 다이렉트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해외 팀과 추진 중인 부분이기도 하고요. 리그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원하는 사항이 있거든요. 해외 팀에게 배워야할 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해외 팀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자생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Q 비시즌에는 우리나라 팀들이 해외 투어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정재훈=하면 좋죠. 이 부분은 라이엇게임즈가 해결해 줘야하는 숙제인 것 같아요.
Q 라이엇 게임즈의 규제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A 정재훈=지금도 중국에서 초청 제안이 많이 오고 있는데, 나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축구 팀들이 비시즌에도 친선 경기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외국 팀들이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오는데, 한국 팀은 나가지 않죠.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경비 문제가 있으니 어려워요. 그런 부분들을 이벤트 경기를 통해 해결하면 수익도 창출하고 전지 훈련도 가능할 거라 봅니다. 해외에서는 오히려 반길 것 같은데, 지금은 제약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게 해결돼야 저희 같은 클럽 팀들이 자생하고 롱런할 수 있죠. 그래야 선수들도 믿음을 갖고 자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될 거라고 봅니다.
Q 비전이나 보완책이 있을까요?
A 권재환=사업적 플랜이든, 스포츠로서의 부트 캠프 같은 요소든, 외국 팀들과 연계가 많이 돼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이엇 게임즈도 규제를 풀어주고, 게임단들도 기업 팀, 비기업 팀 상관없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한국 e스포츠 협회도 많이 도와주길 바랍니다. 협회가 푸시해주면 비기업 팀들이 자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릴 도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단체가 게임사와 협회잖아요. 게임단들의 노력만큼이나 두 단체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숙고해서 좋은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전적으로 따를 용의가 있습니다.
Q 팀을 위한 변호사도 있는지 궁금하네요.
A 정재훈=법무법인과 계약을 맺어 인신공격 등에 대응하고 있고 선수들이 세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회사에서 세무법인을 통해 대신 관리도 해주고 있습니다. 해외 이적이 발생한다면 좋게 계약할 수 있도록 관리도 할 생각으로 법무, 세무 등을 처리하고 있어요.
Q 어느덧 마무리할 시점이네요.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선수들이 중국이나 해외로 나갈 때 비자를 받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이도 풀어야할 숙제인 것 같은데요.
A 권재환=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잦아지고 있는데 비자 발급 문제나 계약 분쟁 등을 해결하기 위해 협회도 도움을 주고 있지만 더 확실한 소통창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법적 문제가 생기면 계약서상으로 국내와 해외의 법이 다른 부분이 있어 대개는 불리하게 재판이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중간에서 선수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단체나 체계가 마련됐으면 좋겠네요.
A 정재훈=선수들의 비자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임대밖에 안 되는 상황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해외에 나가면 팀플레이도 안 되고, 실패해서 돌아오면 냉소적인 시각에 복귀도 힘들죠. 군대도 가야하고, 프로생활은 언제까지 할지도 모르고요. 군대를 다녀와도 배운 게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목돈 마련을 위해 불꽃을 사르는 모습들이 가슴 아파요.
토양이 탄탄해야 코치나 감독도 되고 프런트 일도 할 수 있죠. 선수들 나이가 어리다보니 특정 종목을 위해 외길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 다음의 인생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게임단뿐만 아니라 언론과 협회, 종목사, 방송사 등 모두가 힘을 모아야하지 않나 싶어요. 언론의 기본 생명이 계도인데, 데일리e스포츠도 그런 계도를 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Q 그래서 스타크래프트 때 만들어진 게 공군 에이스였는데, 지금 다시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네요.
A 권재환=데일리e스포츠 창간 8주년과 맞물려 그런 논의를 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오버워치도 등장하고 새로운 판이 짜이는 시기잖아요. 경쟁 종목이 생겼을 때 선순환 구조를 위해 풀어줄 것은 풀어주고, 상생 방안과 의견 수렴을 많이 해줘야 좋은 문화가 조성될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선 e스포츠를 브랜드 마케팅 비용이라 생각하지만 저희 같은 팀은 달마다 입술이 바짝 타는 운영을 하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할 부분이죠.
진행=남윤성 기자(thenam@dailyesports.com)
정리=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