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T1의 서포터 '울프' 이재완의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왠 소화불량이냐고요? 4일 열린 코카-콜라 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2016 2라운드 5주차 진에어 그린윙스와의 3세트에서 탐 켄치로 플레이하면서 동료들을 정말 많이 삼켰기 때문인데요. 이재완의 탐 켄치가 없었더라면 SK텔레콤이 과연 드라마와 같은 역전승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메기와 같은 외모를 갖고 있는 탐 켄치는 아군과 상대를 집어 삼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요. W 스킬인 집어삼키기/역류를 통해 아군은 살리고 적군은 아군 진영으로 끌어 올 수 있습니다. W 스킬을 사용하면 대상은 모두 지정 불가 상태가 됩니다. 탐 켄치의 배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인데요. 아군을 삼켰을 때에는 적에게 다가갈 때 이동 속도 증가 효과를 얻고 적군을 사켰을 때에는 마법 피해를 입히고 탐 켄치가 엄청나게 느려집니다. 적을 뱉어냈을 때 적은 짧은 시간 동안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이재완은 SK텔레콤 선수들의 체력이 빠져 죽을 뻔한 위기에 빠질 때마다 집어삼키면서 안전한 지역으로 빼냈습니다. 역습을 시도할 때에도 삼키면서 적과의 거리를 좁혀 가까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도 했죠.
진에어 그린윙스와의 3세트에서 맹활약했던 이재완의 탐 켄치 플레이를 분석하면서 왜 이재완이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이야기했는지 확인해보시죠.
◆아군 살리기의 백미
진에어와의 3세트에서 이재완의 짝꿍인 원거리 딜러 '뱅' 배준식은 진을 택했습니다. 진은 공격력은 막강하지만 이동기가 없기 때문에 군중 제어기에 당하기 시작하면 체력을 잃을 수밖에 없지요. 진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은 이재완은 W 스킬을 통해 수 차례 살려냈습니다.
그림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진에어의 서포터 '스위트' 이은택의 알리스타가 배준식의 진을 분쇄로 띄웁니다. 알리스타에게 당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어지는 스킬은 박치기입니다. '파일럿' 나우형의 시비르가 뒤쪽에 있었으니 뒤로 밀쳐내면서 진을 잡으려 했겠죠.
배준식의 진이 공중에 뜨자마자 이재완의 탐 켄치는 W 스킬을 사용해 곧바로 집어 삼켰습니다. 그리고는 빨라진 이동 속도를 활용해 최대한 뒤쪽으로 이동켜서 내뱉죠. 이 장면은 초반 라인전에서 두 번이나 등장했습니다. 알리스타를 가져갔던 진에어로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13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듀크' 이호성이었는데요. 배준식의 진을 살리기 위해 이재완의 탐 켄치가 삼켰지만 진에어 선수들이 한꺼번에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잡혔고 순간이동을 통해 합류한 이호성의 트런들도 5인 다이브에 의해 잡힐 위기에 빠집니다.
1차 포탑을 버리고 2차 포탑으로 가는 과정에서 진에어 '쿠잔' 이성혁의 르블랑이 다이브를 시도하자 탐 켄치가 트런들을 집어 삼켰고 포탑 뒤로 가서 내뱉으면서 살려냈죠.
진정한 아군 살리기의 백미는 7분30초에 나왔습니다. SK텔레콤의 미드 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의 빅토르가 이성혁의 르블랑, '윙드' 박태진의 리 신에게 쫓겨 드래곤 뒤쪽 언덕으로 도망가고 있었죠. '트레이스' 여창동의 쉔까지 넘어오면서 이상혁은 꼼짝 없이 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재완의 탐 켄치가 등장해서 집어 삼켰고 알리스타의 분쇄에 의해 공중에 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뚜벅뚜벅 드래곤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상혁의 빅토르를 드래곤이 있는 언덕 아래 쪽으로 내려 놓았죠. 빅토르를 추격하던 르블랑이 내려가서 결국 잡아내긴 했지만 이재완은 슈퍼 세이브에 준하는 참신한 플레이를 펼치면서 동료를 오래 살려 냈습니다.
◆후방 습격을 위한 스킬 활용
이재완의 탐 켄치는 역습에도 유용하게 활용됐습니다. 1대10까지 벌어졌던 킬 스코어를 좁히기 시작한 SK텔레콤은 공격의 주도권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진에어가 공격해 들어오면 받아치는 과정에서 이득을 챙기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갔죠. 상대가 한 명을 희생양으로 내놓으면서 나머지를 살리려 할 때 이재완은 탐 켄치의 궁극기인 심연의 통로에 화력 좋은 동료를 데리고 가면서 추가 킬을 만들어냈습니다.
심연의 통로를 가장 잘 쓴 장면은 40분에 나왔습니다. 하단을 압박하던 진에어의 공격을 받아친 SK텔레콤은 여창동의 쉔이 맷집이 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던 것을 이재완의 탐 켄치가 무시하고 단거리 순간이동을 시도하면서 추가 킬을 만들어냈습니다.
심연의 통로를 쓰면 아군을 동반해서 이동할 수 있는데요. 화력이 가장 좋았던 이상혁의 빅토르가 들어갔고 나우형의 시비르를 노렸습니다. 시비르가 당장 잡히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쫓아가면서 킬을 냈는데요. 이재완이 궁극기를 제 타이밍에 쓰지 않았다면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두꺼운 피부만큼 질긴 생명력
탐 켄치의 탄탄한 맷집이 빛난 장면도 있었습니다. 후반이라 할 수 있는 44분경 SK텔레콤은 '페이커' 이상혁의 빅토르, '블랭크' 강선구의 그라가스가 중앙까지 치고 나갔다가 봉변을 당합니다. 중앙 우측 수풀에 매복하고 있던 진에어 선수들의 포위 공격에 두 선수가 순식간에 잡혀 버리면서 위기가 찾아왔죠.
이재완의 탐 켄치는 심연의 통로를 통해 이상혁 근처로 이동했지만 이미 잡혀 버리면서 살려낼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박태진의 리 신과 여창동의 쉔 사이로 파고든 모양새가 됐습니다.
진에어 선수들 둘 사이에서 맞기 시작한 이재완의 탐 켄치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45분 00초부터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 탐 켄치는 무려 47초 동안 탱킹을 해냈습니다. 서포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E 스킬인 두꺼운 피부 덕분인데요. E 스킬을 사용하면 3초 동안 얻은 회색 체력을 보호막으로 전환하면서 버틸 수가 있죠. 그리고 경기 시간이 오래되면서 80개 이상 미니언을 잡아낸 이재완은 수호천사 아이템까지 확보했기 때문에 두 번 죽어야만 1킬로 기록되죠.
도주로 선택도 훌륭했습니다. 박태진의 리 신에게 맞으면서도 이재완은 벽으로 이동했고 점멸로 넘어가면서 실낱같은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벌었죠. 리 신을 집어삼키면서 공격을 덜 받은 것도 좋은 판단이었죠. 결국 진에어의 미드 라이너 이성혁이 합류하면서 이재완을 잡긴 했지만 47초 동안 버텨낸 이재완 덕에 SK텔레콤은 불의의 사고로 잡혔던 빅토르와 그라가스가 부활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만약 이재완의 탐 켄치가 10초만에 순간 삭제됐다면 어땠을까요? 중앙 억제기가 파괴된 상황에서 진에어 선수들 5명이 모두 살아 있었기에 SK텔레콤은 쌍둥이 포탑을 공략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뿌리가 필요하다
이재완은 SK텔레콤 선수들 중에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선수였습니다. 2015년 단일 팀 체제로 변모한 뒤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시즌에서 우승해 다른 포지션에 있던 선수들에 대해서는 평가가 높았지만 이재완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했을 때에도 중국 대표 에드워드 게이밍에게 2대3으로 패하자 이재완이 받쳐주지 못했다며 혹평을 들어야 했죠.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거쳐 서서히 제 역할을 찾아간 이재완은 2016년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에서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외국 선수들이 자주 쓰는 챔피언을 현지에서 익히면서 SK텔레콤적으로 재해석했고 수 차례 슈퍼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죠. 그리고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시즌에는 뒤늦게 MVP를 받기 시작하더니 하루 두 번 수상하기도 하면서 벌써 네 번의 MVP를 받았습니다.
이재완이 탐 켄치로 다재다능한 플레이를 보여준 덕분에 SK텔레콤은 진에어와의 68분 전투를 역전승으로 마무리했고 이재완에게는 3세트 MVP가 수여됐습니다. MVP 인터뷰에서 이재완은 지친 표정으로 "머리가 아프고 소화불량 날 정도로 많이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웃었습니다.
꽃은 아름답습니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줄기, 잎 등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도 중요하지만 땅 속에서 흙을 묻히면서 자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이는 뿌리도 필요합니다. SK텔레콤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고 있는 이재완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해 봅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