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은 매해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을 '꿈의 무대'라고 부른다. 자국의 리그에서 최고에 올랐음을 입증하고 세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 갤럭시의 정글러이자 1세대 LoL 프로게이머 '앰비션' 강찬용에게 롤드컵은 꿈이 아닌 결함이었다. IEM 월드 챔피언십 시즌7과 2013 WCG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잔뼈 굵은 커리어를 쌓은 강찬용은 롤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한 조각이 부족한 퍼즐과 같았다. 아름다운 그림이 자리를 잡았지만 빈 조각에 눈이 가고 마음이 쏠렸다.
그런 강찬용이 데뷔 첫 롤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1년 동안 합을 맞춘 삼성 갤럭시 동료들과 함께다. 진출이 확정된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강찬용은 눈물을 보였다. 평소 덤덤하고 강직한 인상을 보인 강찬용의 눈물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결함이었기에 더 절박했다는 롤드컵 무대. 완벽한 퍼즐을 완성한 강찬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앓던 이'와 같았던 롤드컵
누가 삼성 갤럭시의 롤드컵 진출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강찬용조차 2016 롤드컵 참가팀에 삼성 갤럭시가 이름을 올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롤드컵 진출을 신경쓰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매경기 최선을 다한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아요. 목표가 롤드컵이었으면 '또 안 되나'하는 좌절감에 빠졌겠죠."
물론 2016 롤드컵 한국 대표 선발전에선 최선을 다했다. 특히 결승전 상대가 삼성에 19세트 연패를 안긴 kt 롤스터이기에 승부욕을 불태웠다. 챔피언 픽과 운영에서 변수를 주며 승리를 차지한 강찬용은 "못 이길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었는데 '인간 승리'를 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인간 승리는 롤드컵과 강찬용의 눈물로 이어졌다. 강찬용은 롤드컵 진출 보다도 동료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랐다고 한다. 약팀으로 분류되고 많은 비난 속에서 오직 연습과 노력만으로 극복한 시간이었다.
롤드컵 진출을 확정짓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동료들은 '우리 정말 롤드컵에 가는 것이냐'며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강찬용 또한 "경기장에 가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다음 대회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강찬용에게 2016 롤드컵은 오랜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담담한 소감 너머로 '앓던 이를 뺀 것 같다'는 후련함이 강하게 전해졌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제가 그동안 롤드컵에 못 간 것도 올해를 위해서인 것 같아요. 그만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올라가서 기뻐요. '강찬용은 프로게이머를 몇 년 동안 했는데 롤드컵도 못 갔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제야 앓던 이가 빠지는 기분이네요."
◆삼성, 지금 이대로만 가기를….
새로운 로스터를 꾸린 삼성은 신인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베테랑을 영입해 무게감을 더했고, 강찬용도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강찬용이 삼성에 합류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매뉴얼을 만드는 것. 하나의 약속처럼 체계가 잡혀갔다.
그럼에도 롤드컵을 꿈꾸기엔 이르다는 판단이었다. 운을 더하면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3위까진 오르겠다고 예상했다. 강찬용은 "무조건 롤드컵을 목표로 두기보단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란 생각으로 임했다"며 "그 동안의 경험으로 동료들과 다툼이 없도록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우선으로 뒀다"고 답했다.
강찬용의 예상과는 달리 삼성은 빠르게 성장했다. 롤챔스 2016 스프링에선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서머 시즌엔 4위로 올라섰다. 더욱이 롤드컵까지 진출했으니 놀랄 만한 성장 속도다. 삼성의 빠른 성장 비결에 대해 강찬용에게 물었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팀과 선수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셔서인 것 같아요.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상대가 무엇을 잘하는지 다 꿰뚫고 계시거든요. 상대팀에 따라 밴픽을 지시해주시니 저희는 경기만 열심히 하면 되죠. 또 선수들이 '신인 마인드'가 있어서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며 무엇이든 배우려고 해요.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으니 실력이 늘 수 밖에 없죠. 저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열심히 하게 되고요."
가장 성장한 선수로는 '크라운' 이민호를 꼽았다. 강찬용은 "미드 라이너라는 팀의 기둥 역할을 맡으면서 부담감이 컸던 선수인데 챔피언 폭을 극복하면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삼성에 대해서 냉철한 진단도 내렸다. 팀 플레이가 강하다는 것이 강점이자 약점이라고. 끈끈한 팀워크가 장점인 반면 개인의 슈퍼 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에선 약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롤드컵에 대한 자신감은 있다. 강찬용은 "선발전 때의 경기력이 나온다면 못 이길 팀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감의 배경엔 무엇보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삼성이 이대로만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강찬용은 "다툼없이 스스로 최선을 다 하면 승패와 관계없이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롤드컵, 결승까지도 올라갈 수 있어요"
첫 롤드컵. 강찬용은 "북미의 솔로미드처럼 유명한 팀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롤드컵 조 편성에 따라 D조에서 솔로미드를 만나게 됐다. 그 외에도 중국의 로얄 네버 기브 업, 유럽의 스플라이스 등 강호들과 한 조에 속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승리의 열쇠라고 말 하는 강찬용은 "조별 리그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말한다. 더욱이 경기력이 올라오면 4강, 결승까지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만만하게 볼 상대는 없지만 해외팀을 다 이겨보고 싶다는 포부만큼이나 자신감은 충분하다.
유럽 기반의 LoL팀 G2 e스포츠의 '트릭' 김강윤은 데일리e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강찬용과 맞대결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강찬용은 이에 "정글 간의 승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누구를 만나고 싶거나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고 화답했다. 다만 "해외팀들 중에서 에드워드 게이밍이 제일 잘 하는 것 같아 이기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첫 출전이지만 강찬용에게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찬용은 롤드컵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팀이 성장하리라 믿고 있었다. 경험에 큰 의의를 둔 셈이다.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점은 강찬용이 먼 미래, 가까운 과거보다 현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챙기며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강찬용의 첫 롤드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