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6 리그 오브 레전드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4일차 SK텔레콤 T1과 카운터 로직 게이밍(이하 CLG)의 경기에서 OGN의 영어 동시통역을 맡은 채동희씨는 위의 말 한 마디로 LoL 팬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SK텔레콤과 CLG가 박빙의 승부를 펼쳐 모두가 긴장한 순간, 뜻하지 않게 내뱉은 속마음이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팬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해당 멘트와 영상은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MSI를 진행하면서 아이유를 닮은(?) 외모로 인해 채동희씨에겐 온게임넷의 아이유라는 뜻으로 '온이유'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후 팬들은 '통이유', '통켄치' 등 다양한 별명으로 그녀를 불렀다.
채동희씨는 MSI에 이어 롤드컵에서도 통역을 맡아 해외 팬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재치 넘치는 입담을 선보여 중계진과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OGN 유튜브 채널에서 '통누나의 롤드컵 훔쳐보기'라는 코너를 통해 롤드컵이 열리는 미국 현지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 팬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서는 모습도 보였다.
장장 한 달에 걸친 롤드컵은 막을 내렸고, 채동희씨는 본업인 글로벌사업팀의 일원으로 돌아가게 됐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은 '통이유'를 볼 수 없을 터. 아쉬워할 팬들을 대신해 데일리e스포츠가 채동희씨와 인터뷰를 나눴다. 롤드컵 이후 짧은 휴가를 마친 뒤 가진 생애 첫 인터뷰였다.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OGN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채동희다. 본 업무는 글로벌사업팀에서 막내를 담당하고 있다. 마케팅 쪽 업무를 맡고 있는, 이제 1년차 사원이다.
Q OGN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A 원래 e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성인이 돼서 앞가림은 해야겠는데 내 적성이 뭘까 방황하던 차에 OGN에서 일하고 계시던 학교 선배가 이쪽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처음엔 글로벌 중계진의 일을 돕는 파트타이머로 있다가 글로벌 사업 쪽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 지원해서 입사했다.
Q 영어는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하다. 유학파인가?
A 중학교 때 뉴질랜드에서 2년을 지냈다. 이후 한국에서 외고를 다녔고, 고려대학교 국제학부에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영어를 쓰게 됐다.
Q 처음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A 올해 MSI에서 첫 방송을 했다. 이전에는 몬테크리스토의 카운트다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통번역을 하고 있었다. 당시 LoL 해외대회 쪽 통역이 공석이었고, 마침 제가 유일하게 LoL 통역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서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Q 첫 방송 출연 경험이었을 텐데, 떨리진 않았나.
A 엄청 떨렸다. 처음엔 방송에 나간다는 생각은 못하고 현장 스태프라고만 생각했었다. 방송을 하면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면서 긴장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방송보단 통역이 주된 일이어서 카메라에 대한 긴장보다는 시청자가 워낙 많은 대회여서 그 무게감이나 책임감이 느껴져 그런 부분에서 긴장이 됐다.
Q 방송에 출연한 이후 같은 부서 직원이나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A 같이 있을 때는 별말씀 안하시고, 몰래 방송 잘 봤다고 말씀해주실 때 감사했다. 롤드컵이나 MSI 출장으로 인해 업무 공백이 생기면 선배들이 많이 커버해주시는데, 그런 부분에서 회사원의 입장으로서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도 든다.
Q MSI 때 "아 정말 스트레스 받습니다" 발언이 큰 화제였다.
A 그 때 SK텔레콤 T1이 전승 우승할 줄 알았는데, CLG가 예상 외로 잘했다. 롤챔스에서 특별히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국제대회니 자연스레 롤챔스 팀을 응원하게 됐다. 그 경기에서 SK텔레콤이 지면 큰일 나는 상황이었는데, 엎치락뒤치락하니 스트레스를 받더라. 속으로는 '지면 레딧 폭발각인데'하면서 마이크를 떼고 있었는데 소리가 흘러들어갔다. 다행히 옆에 계신 중계진이 잘 받아주셔서 화기애애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방송 사고각이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Q e스포츠 동시통역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게임을 모르면 하기 어려운 일인데.
A 주로 회사에서 하는 업무는 게임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영문 계약서 등을 검토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용어를 정확히 한국어로 옮기면 되지만 게임은 또 다른 전문성이 요구된다. 처음 방송하게 됐을 때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LCS를 주로 보면서 어떤 식으로 질문하는지, 선수들은 어떤 식으로 답변을 하는지 파악했다.
Q 게임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A 게임을 하드코어하게 하진 않아서 LoL 실력은 좋지 못하다. 집에서 몰래몰래 하는 수준이다. 하는 것보다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를 많이 보던 세대고, LoL은 시즌5로 넘어오면서 단일 팀 체제가 됐을 때부터 열심히 봤다. 그래서 LoL 관련 히스토리나 올드 게이머에 대한 정보는 하드코어 팬들 만큼 알지는 못하지만 업무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 중이다. 정말 좋아하는 게임은 스마이트인데, 국내에 리그가 없다.(웃음) 스마이트는 보는 것보다 하는 걸 더 좋아한다.
Q 방송 출연 후 정말 다양한 별명이 생겼는데.
A 뒤틀린 황천의 아이유, 통이유, 통켄치…. 회사 분들이 통켄치라고 부르셔서 그게 가장 친숙한 별명인 것 같다.
Q 그런 별명들이 싫지는 않나.
A 관심과 애정이 있으시니 그렇게 불러주시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낙관적인가.(웃음) 괜찮은 것 같다.
Q 어쨌든 아이유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은데.
A 아이유씨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웃음) 정말 안 닮았다. 뭘 보고 닮았다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할 따름이다.
Q 93년생인 아이유는 '국민 여동생' 이미지인데, 92년생인 본인은 '통누나'로 통한다. 억울하지 않나.
A 이제 누나가 될 나이다. 그렇다. 수많은 게임계 어린이들이 누나라고 불러주니 마음이 흐뭇하고 동기부여가 되고 그렇다.(웃음)
Q 방송에 나오면서 악플에도 많이 시달렸을 것 같다.
A 방송에서도 그렇지만 본 업무가 해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보니 국내 커뮤니티 모니터링은 늦은 면이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미 종결된 후에나 보게 된다. 오늘도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더니, 주변에서 '괜찮냐'고 여쭤보시더라.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있는지도 몰랐다. 욕먹으면 '쭈구리'가 됐다가, 다시 '잘 해야지'하면서 회생한다. 무한반복이다. 익명성 때문에 인터넷에서의 반응은 실제로 받는 피드백보다 공격적이고 무차별적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반응들이 생기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송에 나가는 만큼 좀 더 실수를 없애고 단점이 보완된 모습을 보여드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피드백에 유연한 태도를 취하면서 무던한 마음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건, 지금의 상황이 강한 멘탈을 갖게 해줄 것 같다.
Q '~입니다'라는 군대식 말투가 독특하다. 원래 말투가 그런가.
A 아무래도 신입이고 '쪼렙'이라 오해를 사는 것보다는 최대한 예의 있는 말투를 사용하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태양의 후예'가 나오기 전부터 다나까 말투를 사용했다. 회사만큼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도 다나까 말투를 사용했던 것 같다.
Q 말 할 때 몸동작이 큰 편이다.
A 모니터링을 해봤는데 몸이 가만히 있질 않더라. 그건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웃음) 학교 있을 때 디베이트 토론 활동을 주로 했는데, 그 때 제스처를 많이 쓰는 게 버릇이 된 것 같다. 방송 할 때 두뇌 파워를 쥐어짜서 멘트를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 중이다. 고쳐야지 생각은 하고 있다.
Q 방송에 나오면서 나름 팬도 많이 생긴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은?
A 아무래도 LoL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애정이 커서 국제대회의 일부가 된 제게도 그 관심과 애정을 나눠주시는 것 같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 더 신선하게 봐주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방송에서 통역하는 친구가 있는데 노출된 정보가 많지 않고, 가끔 재밌는 멘트를 하니 관심 주시는 것 같다. 본분을 잃지 않고, 겸허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관심을 많이 받는 자리인데 너그럽게 봐주시는 것 같다.
Q '롤드컵 훔쳐보기'를 통해 방송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A 촬영하면서 OGN에 계신 분들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직접 해보니 촬영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 비하인드 스토리나 스테이지 뒤편의 모습, 흥미로운 사람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바쁜 현장이고 출연자분들도 준비하는 시간이 길고 해서 아쉽고 어려운 면이 있었다. 방송분량 걱정이 컸다.
Q '롤드컵 훔쳐보기'에서 스스로를 '귀여움보다는 도발적이고 섹시한 스타일'이라고 밝혔는데?
A 아무래도 25살 먹은 성인 여성이다 보니 앞으로 나아갈 길은 성숙미밖에 없어 지향하는 방향이 섹시라고 말씀드렸다. 사람이 꿈은 크게 가져야하는 것 같다. 어렵고 험난한 길이라도….(웃음)
Q 롤드컵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Sjokz' 에피 드포트르의 엄청난 팬이다. 'Sjokz'가 LoL을 하기 전부터 e스포츠 관련 인터뷰를 하고 글을 기고할 때 멋있다고 느꼈다. 처음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섹시하다'고 말했는데 잘 받아줬다. 평소 존경하던 인물을 만나게 돼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 외에는 해외 e스포츠 관계자들이 OGN에 많은 관심을 표해서 뜻 깊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Q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나.
A 팬들이 많이 계신 곳에서 선수들 코앞까지 가면 알아보시는데, 그 정도가 아니면 별로 알아보시는 것 같진 않다. 방송용 얼굴과 실물이 많이 다른 것 같다.(웃음)
Q 롤드컵 말고 다른 방송에서 채동희씨를 볼 기회가 있을까.
A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전문 통역이라고 불리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서 보완되지 않으면 보시는 분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사실 방송은 완성도와 질이 가장 중요하다. 당장 '다음에 방송 뭐하지'라는 생각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개선되지 않으면 섣불리 통역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도 있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Q 제작진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 않나.
A 그건 잘 모르겠다. PD님 많이 좋아한다.(웃음) 부족해도 맡겨주시는 부분이 있어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Q 당분간 방송에서는 볼 수 없다니 아쉽다. 마지막으로 OGN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우연치 않은 계기로 방송에 출연하고, 과분한 관심과 애정을 많이 받았다. 언제 다시 뵙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시즌에는 양질의 통역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서 관심과 애정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