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2016년 시작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2013년 롤드컵 제패 이후 2014년에 롤드컵 좌절이라는 좌절을 맛봤기에 2016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짝수 해 징크스'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유인즉 2015년 롤드컵 MVP였던 '마린' 장경환과 안정감을 자랑하던 미드 라이너 '이지훈' 이지훈이 중국 팀으로 이적했고 정글러 '벵기' 배성웅 또한 전성기를 지났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 T1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최병훈 감독 또한 비슷하게 판단했다. 2016 스프링 시즌을 시작할 때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시작해 보니 걱정이 더 많았고 실제로 시즌 초반부터 승보다 패가 많이 쌓이면서 불안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IEM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SK텔레콤은 정상 궤도에 올라섰고 챔피언스(이하 롤챔스) 스프링 시즌을 우승했으며 2015년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롤챔스 서머에서 우승하지 못하면서 롤드컵 성적을 알 수 없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어우슼(어차피 우승은 SK텔레콤)'을 완성시켰다.
최병훈 감독을 통해 2016년 SK텔레콤 T1이 겪었던 우여곡절은 무엇이었는지, 2017년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Q 2016년에도 SK텔레콤 T1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리그 오브 레전드 팀으로 기록됐다. 엄청난 결실을 맺은 소감은 어떤가.
A 2015년에 와신상담하면서 롤챔스 스프링과 서머를 제패한 뒤 롤드컵까지 제패하면서 우리 팀이 강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지만 2016년은 불안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마린' 장경환, '이지훈' 이지훈이 중국 팀으로 이적했고 새로 들어온 정글러 '블랭크' 강선구가 롤챔스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에 대한 실전 검증이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 팀이 강할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지만 기대 반, 우려 반이라는 마음으로 롤챔스 스프링을 시작했고 초반에 많이 지면서 우려가 더욱 커졌다.
Q 롤챔스 스프링 초반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스프링 시즌 초반에 성적이 훌륭할 것이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멤버 구성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우리는 아예 새로운 팀이라고 생각하면서 맞춰가는 상황이었다. 어떤 분들은 1라운드에서 5승4패까지 떨어지면서 '전과 같지 않다'라고 평하신 것도 알고 있다. 비판도 받았지만 언젠가는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Q 스프링 시즌 1라운드가 끝난 뒤에 출전한 IEM 월드 챔피언십이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블랭크' 강선구의 재발견이 이뤄진 대회이기도 한데.
A 사실 IEM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전부터 연습 경기에서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 영입한 정글러인 '블랭크' 강선구가 동료들과 호흡이 맞기 시작했다. 롤챔스 스프링 시즌에서는 승보다 패가 더 많았지만 연습 과정에서는 꽤 실력이 좋았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시기라고 생각했다. '벵기' 배성웅이 힘들어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휴식이 필요했고 실력이 올라오고 있던 강선구에게는 실적이 필요했다. 그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강선구가 자신감을 찾으면서 반등의 계기로 삼았다.
Q MSI에서는 풀리그 단계에서 탈락하는 줄 알았다. 당시 4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우승하긴 했지만 4연패는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A 롤챔스 스프링에서 우승한 뒤에 자신감을 갖고 MSI에 임했다. 이번에야 말로 작년에 준우승에 그쳤던 것을 갚아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서 연습해 보니 '블랭크' 강선구와 '페이커' 이상혁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 또 외국 팀들도 자신의 지역에서 스프링 시즌을 우승하고 왔기에 실력도 물이 올라 있었다. 우리 팀의 사정과 외국 팀의 사정이 묘하게 겹치다 보니 4연패라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Q 롤챔스 서머 플레이오프에서 kt 롤스터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롤드컵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충격이 컸을 것 같다.
A 그다지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스프링 정규 시즌을 소화하고 포스트 시즌을 거쳐 우승한 뒤 MSI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우리 팀이 서머 정규 시즌에서 잘할 것이라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1라운드에서는 중위권에 머무르다가 2라운드에서 치고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는데 초반에 연승을 달리면서 페이스가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피로감이 한꺼번에 왔고 플레이오프 kt와의 대결에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패하고 나서 선수들에게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롤드컵을 대비하자"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휴가도 줬다. 그 덕분에 롤드컵에서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Q 2016년 롤드컵은 2015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특히 SK텔레콤은 엄청나게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우승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쉽게 이기지 못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A 롤드컵은 16강 조별 풀리그를 넘은 이후에는 토너먼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세트 스코어보다는 승리 자체가 중요하다. 2016년 롤드컵에 임하면서 선수들에게 "주어진 앞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주문했다. 1차 목표는 조별 풀리그를 통과하는 것이었기에 그 목표에 집중했고 이후 토너먼트에서는 당장 만날 상대들에 대해 준비했다. 8강에서 로열 네버 기브업을 만났고 4강에서 락스 타이거즈, 결승에서 삼성 갤럭시 등 강호들을 연달아 만났기에 많은 세트를 내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상대 팀들이 잘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팀 선수들도 큰 경기 경험을 앞세워 집중력을 발휘했기에 우승할 수 있었다.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노련미를 발휘해준 선수들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Q 롤드컵에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
A 락스 타이거즈와의 4강전은 질 뻔한 경기였다. 1세트에서 이기고 나서 2세트에 락스 타이거즈가 애쉬와 미스 포츈이라는 새로운 하단 듀오 조합을 들고 나왔는데 한 번에 피드백이 나오지는 않았다. 2세트에서 패한 것이 애쉬 때문인지, 미스 포츈 때문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3세트에서도 미스 포츈을 풀어줬는데 확실히 세더라. 락스와의 경기에서는 하단 듀오간의 자존심 대결이 판세를 가를 수 있기 때문에 미스 포츈을 금지하지 않은 점도 있다. 3세트에서 락스가 미스 포츈을 했어도 우리가 이기기를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4세트에서 니달리를 먼저 가져오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도박을 걸었다. 미스 포츈과 애쉬를 함께 금지하려 했는데 밴 카드가 모자랐고 도박적으로 니달리를 풀어줬는데 락스에서도 금지하지 않았다. 배성웅이 그동안 니달리를 연습하고 있었기에 믿고 가져갔고 엄청난 플레이를 연거푸 보여주면서 우리가 기세를 탈 수 있었다.
Q SK텔레콤이 우승하지 못한 대회는 KeSPA컵 뿐이다. 이번 KeSPA컵에서도 4강에서 탈락했는데 아쉽지는 않았나.
A 사실 KeSPA컵에 대한 기대는 작년이 더 컸다. 2년 만에 롤드컵을 우승하고 나서 국내에 돌아온 뒤에 치른 대회라서 팬들도 엄청나게 기대하셨을 것 같은데 4강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올해에는 부산에 내려가서 경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락스 타이거즈 선수들이 우리보다 훨씬 준비를 많이 했기에 패했다고 생각한다.
Q 2017 시즌을 앞두고 '듀크' 이호성, '벵기' 배성웅 등 롤드컵 멤버 2명이 팀을 떠났고 '후니' 허승훈, '피넛' 한왕호가 영입됐다. 2017 시즌에도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할 것 같은지.
A 2016년 롤챔스 스프링, IEM 월드 챔피언십, MSI, 롤드컵을 우승할 때 많은 힘이 됐던 선수들과 헤어졌다. 이들이 쌓은 노하우와 경험이 아쉽기는 하지만 허승훈이나 한왕호도 롤드컵 4강 무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다. 다른 팀에서 활약할 때 두 선수 모두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줬기에 우리 팀의 컬러가 공격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17 시즌의 구도에 대해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kt 롤스터가 엄청난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강화했고 뿔뿔이 흩어진 락스 타이거즈 출신 선수들도 제 몫을 할 것이라고 본다. 또 '마린' 장경환이 입단한 아프리카 프릭스도 복병일 것 같고 롤드컵에서 진가를 발휘한 삼성이 멤버 변동이 없기 때문에 강세를 나타낼 것 같다. 우리는 도전하는 자세로 임할 생각이다.
Q 2015년 말에 비슷한 인터뷰를 할 때 '2016년은 건강을 챙기면서 성과를 내자'는 모토를 내걸었다. 2016년 말에는 어떤 모토를 걸고 싶은가.
A 선수단과 연말을 보내면서 "2017년은 즐기면서 게임하자"라고 이야기했다. 국내 팀들 대부분이 선수와 코칭 스태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큰 투자를 했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이 딱히 없어 보이기에 여느 때보다 긴장해야 하는 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초반부터 집중하지 않으면 중위권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팀간의 전력 차가 매우 적은 시기이기 때문에 긴장해야 하겠지만 그 과정까지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2016년은 즐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017년에는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모두 즐기면서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 공격적인 선수들이 들어왔으니 공격적으로 풀어가면서, 즐기면서 리그를 소화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것 같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