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머 시즌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던 박상면은 2016년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CJ가 챌린저스까지 떨어지는 과정을 함께 겪었다. 2017년 복수의 팀에서 러브콜이 왔고 외국 팀으로 나갈까 고민도 했던 박상면은 강현종 감독과 다시 한 번 뛰고 싶다는 생각에 락스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월드 챔피언십 재출전을 목표로 불꽃을 태우고 있는 박상면을 만났다.
◆강현종 스타일 믿고 락스행
Q 락스 타이거즈로 이적했을 때 코치직을 맡는 것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
A 그럴 뻔했다. 락스 타이거즈의 대표님이 내가 CJ 엔투스와 결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코치로 계약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다.
Q 정말 코치를 할 생각도 했나.
A 플레잉 코치를 고민하기도 했다. 2016년 CJ를 나오자 한국에서 나를 원하는 팀이 둘 있었다. 어느 팀을 갈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강현종 감독님 아래에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가 떠올랐다. 강 감독님 휘하에 있어야 나태해지지 않고 해이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Q 현재 락스 타이거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아프리카 프릭스 시절 강현종 감독의 지휘를 받았던 선수들이다. 박상면도 강 감독 때문에 이 팀에 온 것이라면 강 감독만의 특별한 스타일이 있다는 뜻 같다.
A 강현종 감독님이 이끄는 팀은 색깔이 있다. 경기 스타일은 CJ 엔투스와 아프리카 프릭스가 달랐기 때문에 그것은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색깔이라고 쳐도 팀이 운영되는 스타일은 확실하게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선수, 감독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쉽게 말하면 선수에 대한 신뢰와 감독에 대한 충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 감독님이 아프리카로 가시고 나서 그것을 느꼈다. 박정석 감독님만의 지도 스타일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강현종 감독님 스타일이 잘 맞았던 것 같다. 2016년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강 감독님을 따라서 이적한 것도 그러한 점을 믿고 따라온 것 같다.
Q 출전 기회가 적다(아이러니하게도 이 인터뷰를 진행한 14일 이후 박상면은 매경기, 매세트 출전했다).
A 내가 꼭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CJ 엔투스 시절부터 줄였다. 잘하는 선수가 출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그리는 그림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부합하는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CJ, 계단, 그리고 출전 기회
Q CJ 엔투스가 2016년 서머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고 챌린저스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 그 때는 정말 경기에서 보기가 힘들었다.
A 슬럼프를 겪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팀 입장에서는 세대 교체 분위기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대회 출전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솔로 랭크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연습 때에도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운타라' 박의진이 대부분 출전하다가 서서히 경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조차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Q 선수로서 이런 상황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대회에 나가기 싫을 때도 있나.
A 앞서 말한 요인들이 겹치면 그런 마음이 생긴다. 솔로 랭크에서 연패를 하거나 연습 때 내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감독님에게 못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Q 톱 라이너가 2명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A 상황은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팀이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출전 여부가 가려질 수도 있다. 톱 라이너 포지션에 '린다랑' 허만흥과 나, 정글러에 '성환' 윤성환과 '마이티베어' 김민수 등 2명씩 갖춰지면서 여러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코칭 스태프가 선수들의 컨디션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상대 팀에 따라 맞는 조합을 꾸리면서 변화를 주는 과정에서 선수 기용을 결정한다. 선수가 코칭 스태프에게 의견을 개진할 때도 있고 코칭 스태프가 의사를 전달할 때도 있다. 락스 타이거즈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Q CJ 시절에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박상면의 리더십은 어떤 스타일인가.
A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몸으로, 결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장이 솔선수범하면서 후배들이 따라오도록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안될 때가 더 많았다.
Q 우스개 소리로 '샤이'형 따라 계단으로 간다는 말도 있다.
A 시쳇말로 '한 따까리 하러 간다'는 말인 것 같다. CJ 시절에 팀 기강이 해이해졌을 때는 이야기하러 계단으로 간 적도 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바로 그만 뒀다. 락스 타이거즈에서는 주장이 아니라 최고참이기 때문에 농담처럼만 던진다. "계단으로 한 명 끌고 갈지도 몰라"라고 말하면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한다(웃음).
◆"락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Q 락스 타이거즈 선수들 이야기를 해보자. 같은 팀에서 뛴 경험이 없는 선수들과 지내고 있다. 어떤가.
A 나보다 한참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로게이머로서라는 직업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나키나 아프리카 프릭스 시절을 함께 겪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성숙해지고 있다.
Q 요즘 경기를 보면 '미키' 손영민의 어깨에 많은 것이 올려져 있는 것 같다.
A 손영민이 잘하면 이기고 못하면 지는 패턴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손영민도 그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 초기에는 '모 아니면 도'였다. 지고 있을 때에 '내가 풀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뛰어들다가 확실하게 졌고 이기고 있을 때에는 '내가 잘 컸으니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격적으로 하다가 손영민이 잡히면 지는 패턴이 많았다. 자기가 돋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고 이겨도 혼자 이기는 식의 플레이를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팀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Q 어떤 방식의 팀플레이인가.
A 요즘은 연습 경기나 공식 경기나 치고 들어가려고 할 때 한 번 물어본다든지 "들어간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말 한 마디가 엄청나게 크다.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다가 손영민 쪽을 쳐다보고 그 쪽으로 한 발이라도 더 간다. 영민이가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동안에 살려줄 수도 있고 잡히더라도 우리 팀이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온다.
Q 톱 라이너로 경쟁 관계에 있는 '린다랑' 허만흥은 어떤가.
A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이긴 하지만 이론이 강하고 기본기가 좋다. 팀워크가 잘 맞아 들어간다면 제2의 '스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송경호도 IM에 있을 때에는 돋보이지 않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좋은 조력자들을 만나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톱 라이너가 됐다. 나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아마추어 고수 시절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프로게이머가 되고 보니까 엄청난 선수들이 많더라. 정확히 말하면 팀워크가 좋은 팀들이 많았다. 프로가 되고 나서 리그 오브 레전드가 5대5 게임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엄청났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허만흥이나 윤성환도 그 단계를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3년 '샤이'는 프로의 세계에서도 잘한다고 인정받기 위해 악이 받쳐서 연습하고 공부하고 선배들에게 물어봤다. 허만흥과 윤성환이 아직 대회에서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승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Q 톱 라이너라는 포지션이 재미 없지는 않은가.
A 예전에는 재미가 없었다. 마오카이, 노틸러스, 쉔만 나오던 시절에는 그랬다. 직업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해도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도 했다.
Q 레넥톤과 쉬바나만 나오는 '노잼톤또바나' 시절도 겪지 않았나.
A 그 때가 오히려 나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잘 크면 게임을 지배하는 재미라고 있었다. 하지만 마오카이, 노틸러스, 쉔이 지배하던 때에는 잘 맞는 사람이 이기는 형국이어서 재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Q 요즘은 어떤가.
A 여러 챔피언이 나오다 보니까 단순하지 않아서 좋다. 물고 물리는 메커니즘이 있다. 상대가 탱커를 먼저 고르면 단순히 탱커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챔피언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카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카운터 챔피언이 있다 보니 팀이 추구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다.
◆"마지막 불꽃 태우려 휴학"
Q 중앙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e스포츠 특기생이 생기고 나서 1호 입학생이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나.
A 휴학 상태다. 선수 생활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더라. CJ와 락스 모두 숙소가 일산에 있는데 학교는 안성에 있다. 강형우와 함장식이 요즘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데 그들도 거리가 부담이 되긴 한다고 하더라.
Q 나이가 꽤 많다. 군입대도 곧 해야 할 것 같은데.
A 그래서 휴학했다.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 생활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정도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Q 모든 선수들의 목표는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이다. 2012년에 롤드컵 무대에 서본 이후 아직 못 갔는데 불꽃을 태워볼 시기인 것 같다.
A 2년 안에 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6년에 CJ를 떠날 때 외국 팀으로 가볼까라는 생각도 농담처럼 던진 적이 있다. 전력이 좋은 팀에서 영입 제안이 오면 그 팀에 들어가서 롤드컵에 나가는 것이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락스 타이거즈에 오면서 우리 팀을 롤드컵에 나갈 수 있는 팀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한국에서 3위 안에 들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 목표를 이뤄낸다면 세계 무대에서는 진검 승부를 펼쳐볼 수 있을 것 같다.
Q 6년간 활동하면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있다면.
A 2015년 스프링이었던 것 같다. CJ 엔투스가 단일팀이 되면서 포스트 시즌에 나갔고 SK텔레콤 T1과 플레이오프를 치렀을 때였다. 2대0으로 이기고 있다가 2대3으로 패했는데 그 때 우리가 결승에 올라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Q 그 경기로 인해 CJ와 SK텔레콤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다.
A '뱅' 배준식이 인터뷰에서 그런 내용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SK텔레콤 T1이 강팀으로 변한 계기가 그 경기였다고 하더라. 나도 그 생각을 한다. 그 때 패하고 나서 CJ가 계속 하락세를 겪었다. 혹자는 그 때가 나와 CJ의 정점이었다는 평가도 하더라.
Q 박상면과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한 팬이 트위터로 질문을 해왔다. 콩두팬 황충(@kongdoobug)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인데 "예전 팬들과의 질의 응답 시간에 올해는 솔로 랭크 아이디를 공개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라고 묻더라. 이유가 있나.
A 내가 원하는 수준의 티어까지 올라가지 못해서다. 지금 마스터 티어인데 챌린저에 올라가면 공개할 것이다. 열심히 올리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