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혁 국장이 프로게임단이 속한 kt 멀티스포츠팀을 맡게 된 것은 이제 갓 4년을 넘었지만 오랜 시간 다른 스포츠 종목의 업무를 해오며 프로게임단을 곁에서 지켜봐왔고, 관련 업무 협업도 진행하면서 e스포츠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다.
2013년부터 시작해 프로게임단 업무를 맡은 지 약 5년차인 신기혁 국장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부임 초기 시절을 회상했다.
"2013 롤챔스 서머 결승전은 제 입장에선 소설 같았죠. 당시 배수로가 넘칠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고, 이 때 운명이 바뀐 듯 우승을 코앞에 뒀던 팀이 '승승패패패'로 졌으니까요. SK텔레콤은 우릴 꺾고 자신감이 생겨 세계를 제패했고, 우리는 '콩라인'이라는 운명적인 굴레에 들어간 느낌을 받았죠."
kt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매 시즌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팀의 명성에 비해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2017 시즌에는 독기를 품은 듯 우승 경험이 있는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슈퍼팀'을 만들었다. 2016년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에서 국내 최고 톱 라이너로 평가받던 '스멥' 송경호를 비롯해 중국 LPL에서 활동하던 '폰' 허원석, '데프트' 김혁규, '마타' 조세형을 영입한 것. 모두 '우승 DNA'를 갖춘 선수들이었다.
"한 종목에서 정점을 찍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인데, 이적 시즌 당시 내부적으로 해결해보려 했으나 안됐고 선수들도 지친 상태였습니다. 회사도 리빌딩에 대해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마침 중국 선수들이 유턴하는 분위기였죠. 내부적으로는 재창단이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스코어' 고동빈 선수는 원년 멤버로 가장 오래된 선수인데다가 포지션 변경에도 성공했고, 인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좋게 평가했죠. 길게 보면 지도자까지 키우고 싶은 선수라 '스코어'를 중심에 놓고 다른 선수들을 모은 케이스죠."
이름값 있는 선수들을 영입한 kt는 2017 스프링 시즌이 시작되기 전 SK텔레콤 T1, 삼성 갤럭시와 함께 '3강' 구도를 만들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시즌 도중 불안한 모습을 몇 차례 보이긴 했지만 kt는 정규리그를 3위로 마무리 지으면서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삼성을 완파하면서 결승에 올라 SK텔레콤과 이동통신사 더비를 성사시켰다.
kt와 SK텔레콤은 스타크래프트부터 이어져온 e스포츠의 대표적 라이벌로, 두 팀의 관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혁 국장은 SK텔레콤과의 라이벌 구도가 "좋다"고 답했다.
"양사는 부담스럽지만 좋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야구나 축구 등 모든 종목에는 라이벌이 있죠. 라이벌이 없으면 그 리그는 인기가 없어요. 자연스럽게 통신사끼리 라이벌이 됐는데 그게 리그 흥행 요소를 만들고 판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느냐보다, e스포츠가 영원히 가고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가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라이벌 구도는 반드시 필요하죠. 그렇게 함으로써 더 노력하고 투자하게 되고요. 팬들 입장에서도 재미있을 겁니다."
kt는 세계 최고의 팀이자 라이벌인 SK텔레콤을 넘어 정상에 서겠다는 의지로 슈퍼팀을 만들었는데 경기력뿐만 아니라 수익과 사업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신기혁 국장은 kt를 응원하러 오는 팬들 중 상당수가 중국팬들이라 귀띔했는데, 중국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덕분에 중국팬들에게 인기 있는 팀이 된 것. kt를 응원하기 위해 상암 e스타디움이나 넥슨 아레나를 방문한 중국 팬들을 보고 있으면 사드로 인한 한한령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kt 롤스터 옷이나 모자 등 MD 상품 기획을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는데 중국내에 수요가 굉장히 많아 해외 판매도 검토 중에 있습니다. 팬 서비스나 수익 확보 차원에서도 필요했는데 이전에는 수익성이 떨어져 머천다이징 전문 업체들이 하려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선수 영입 소식을 듣고 업체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시장이 점점 커지는 것을 아니 관련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죠. 앞으로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e스포츠 시장의 크기와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투자는 얼어붙어 있다. 대기업 프로게임단의 실무를 보는 입장에서 어떤 점이 문제로 느껴졌을까. 신기혁 국장은 "경영진의 이해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령층이 높은 기업 임원들은 인터넷보다 공중파 뉴스나 주요 일간지들을 통해 소식을 접하는데, 해당 미디어들은 e스포츠를 다루지 않고 있는데다가 e스포츠가 아직 메인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지 못해 자연스러운 노출 역시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비중 자체가 낮게 평가되는 것이 아쉬워요. 팬 숫자라든지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규모를 들으면 다들 놀라십니다. 전체적으로 기업들의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아쉬워요. e스포츠가 얼마나 임팩트 있고 큰 시장인지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종목에 비해 적은 돈이 들어가니 젊은 층에 마케팅 할 회사라면 꼭 한 번 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e스포츠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스타크래프트2팀 해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2016 시즌을 끝으로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가 막을 내리면서 kt 롤스터 스타크래프트2 팀 역시 해체 수순을 밟았다.
"2001년부터 스포츠 업무를 하면서 선수들이 떠나고 은퇴하는 것은 많이 경험했지만 어떤 종목을 통째로 없애는 경우는 처음이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았죠. 선수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문제였으니까요. 종목의 인기가 마니아 쪽으로 간 것도 아쉽지만, 승부조작 문제가 가장 컸죠. 화가 나고 안타깝습니다. 스타2는 e스포츠로서 굉장히 좋은 종목이라 대체 종목 찾기도 쉽지 않고, 몇 년씩 데리고 있던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어요. 전태양이나 김대엽 같은 선수들은 팀을 나간 뒤에도 잘해주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타2에 대한 이야기 이후엔 신규 종목 팀 창단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대기업 팀들에게 항상 아쉽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해외 프로게임단들은 빠르게 신규 종목에 발을 들이지만 국내 프로게임단들은 매번 한발 늦거나 너무나도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기혁 국장은 이를 "조직 체계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공통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죠. 클럽 팀들은 오너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기업은 올해 쓸 돈을 작년에 준비하는 구조라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직 체계의 차이죠. 그나마 e스포츠협회가 존재해서 팀들끼리 모여 논의하고 시장을 예의주시하고는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kt 롤스터 사무국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답변은 아주 간단하고 명확했다. '손익분기점'을 뚫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프로게임단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스포츠 팀들은 수익을 내기보다 사회 환원이나 기업 홍보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래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겠다는 신기혁 국장의 단순한 말에도 얼마나 큰 포부가 담겨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손익분기점을 뚫는 것은 어떤 종목도 하지 못한 겁니다. 매출 말고 순익을 내고 싶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는 그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죠. 롤드컵 상금이 올라간 것도 긍정적이고, 라이엇 게임즈가 스킨 판매나 중계 수익을 팀에게 배분하기로 한 것도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선수 자산을 활용해 회사에서 예산을 주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자생에 성공하고 회사에도 이익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선수 몸값에 비례하겠지만 빠르면 3년, 길게 보면 5년 안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t 롤스터가 프로게임단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기 시작한다면 다른 기업들도 e스포츠에 눈을 돌릴 것이 분명하다. e스포츠가 단순히 기업 홍보용 도구가 아니라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의 참여는 국내 e스포츠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 종사자로서, 또 e스포츠 팬으로서 kt 롤스터의 목표가 꼭 이뤄지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