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는 창간 9주년을 맞아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사람들 가운데 은퇴하고나서 특이한 직업을 택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게이머 은퇴자 특집 인터뷰는 총 5회로 기획됐고 세 번째 주자는 여성으로 스페셜포스 선수와 프로게임단 감독까지 맡았고 현재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일하며 e스포츠 행정가가 된 임수라다.<편집자주>
2008년 MBC 게임 히어로에 입단하며 스페셜포스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임수라의 인생은 도전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MBC 게임이 해체된 뒤,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던 임수라는 구두 쇼핑몰 사업을 벌였고, 이후에는 IT뱅크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스페셜포스 최초의 여성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협회)의 일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MBC 게임 히어로의 해체, 스페셜포스 프로리그의 폐지. 극의 1부가 끝났을 때, 임수라를 2부로 이끌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자각과 깨달음이었다. 거기에 노력을 거름으로 한 자신감이 임수라를 성장시켰다.
임수라는 노력하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스페셜포스 프로로 활동했던 무대에서 인정 받았고, 남다른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와 사회로 나온 임수라는 말그대로 초보였다. 배울 것도 많았고, 받아들일 것도 많았다. '만렙'에서 '0레벨'이 된 임수라. 그래서인지 후배 프로게이머들이 사회에서 겪을 일들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저도 한 때는 감독으로까지 활동했지만 협회에선 막내의 입장에서 일을 배웠어요. 선수들도 게임에선 최고지만 사회에 나오면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수들은 현재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일반인보다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잖아요. 지금은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일반 사람들이 월급을 어느 정도 받는지 모를거예요. 눈 앞만 보고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은 넓게 봐서 현실은 전쟁터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스페셜포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임수라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여기를 떠나거나 다른 길을 가게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임수라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막연함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꾸었다. 당차게 협회의 문을 두드려 심판 교육을 받았고, 공인 심판 자격증을 획득했다. 협회 입사를 준비하면서는 스포츠 마케팅과 행정적인 사무에 대해 공부했다.
'잘 풀린 케이스'라고 불리는 임수라의 이력에는 숱한 고민과 노력이 있던 셈이다. 임수라는 현직 프로 선수들에게도 이 부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가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조사했고, 자격증이 필요하면 취득했어요. 특히 자격증은 그대로 나의 스펙이 되는 거잖아요. 쉽지 않겠지만 하루 1시간이라도 투자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후에 나는 프로 게이머로 활동하면서 팀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이런 자격증과 지식이 있다고 어필할 수 있으니까요."
다수의 선수들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대부분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게임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정도. 자기 계발은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임수라 대리는 여가 시간도 중요하지만 연습 외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선수들의 발목을 잡는 학업 문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저는 학업을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습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긴 쉽진 않죠. 실제로 휴학, 혹은 고등학교 자퇴를 하는 선수들도 많고요. 전 고등학교 자퇴를 한 선수들이 검정고시를 봐서 학력에 대한 부분을 보충했으면 좋겠어요. 또 사이버 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팀 생활을 하면서 대학도 마칠 수 있고요."
"사실 다른 사람이 시켜서는 못하잖아요. 스스로 학력에 대한 의지와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저 학력에 대해 의외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하루에 조금씩 투자하면 된다는 것을 선수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프로 게이머라는 경력은 굉장히 특이하다. 업무에 대한 몰입도, 경쟁 의식, 팀 생활 등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지만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가 어렵다.
자기 PR이 중요한 시대에서 프로 게이머는 뒤처져 있는 것일까. 임수라는 아니라고 답했다. 프로로 활동했다는 경력과 경험에서 얻어낼 수 있는 이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선수들의 합숙 생활은 작은 사회거든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은 사회도 마찬가지잖아요. 합숙 생활을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성실히 임했으면 좋겠어요."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들은 언어를 반드시 익혔으면 좋겠어요. 게임을 통해서 대회에 출전하고, 팀 단위로 생활하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최적의 환경에서 값진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사회에서 경력이 부족해도 언어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 많은만큼 언어는 꼭 배워왔으면 해요."
임수라는 선수들에겐 자신이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선수들은 이미 한 차례 고민했고 성과를 냈다. 재능과 흥미가 있는 게임을 통해 프로 단계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임수라는 프로 게이머를 선택했던 '초심'에 높은 가치를 매겼다.
"은퇴해서 다른 길을 가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처음 대회에 출전해서 손을 떨면서 경기를 했을 때. 그 때를 잊지 않으면 어디에서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은퇴 후 진로 설계를 위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라는 임수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라, 프로 게이머의 경력에서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라는 쓴소리. 자신의 경험에 비춰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임수라는 협회의 일원다운 멘트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협회는 은퇴 후 프로그램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어요. 영어 수업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선수들의 참여가 적어서 진행이 어려웠죠. 지금도, 앞으로도 선수들이 은퇴 후 안정적으로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거예요. 체계적으로 준비할테니 선수들도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