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e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기업이나 사람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의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아마도 가장 놀란 사람은 아디다스 관계자였을 것입니다. 3년 동안 피파온라인3 리그를 후원했고 공로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지만 정작 아디다스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냐"며 몸을 낮추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포츠 기업인 아디다스가 e스포츠 리그를 후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죠.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 받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포츠 기업이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과연 몇 년이나 후원하겠냐는 회의론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아디다스는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e스포츠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초반보다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고 그 공을 인정 받아 지난 해 ‘공로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아디다스는 어떤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e스포츠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디다스 코리아 박준호 부장을 만나 아디다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봤습니다.
◆강렬했던 첫 만남
아디다스와 피파온라인3의 만남은 넥슨 아레나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아디다스는 월드컵을 맞아 젊은이들의 공간에서 함께 응원할 공간을 찾고 있었죠. 마침 넥슨 아레나가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을 넥슨 아레나에서 개최 중이었고 양사는 서로가 원하는 부분이 같음을 인지하고 공동 프로모션을 계획했습니다.
"넥슨 아레나를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월드컵 프로모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상황에서 넥슨 아레나라는 장소는 정확한 타깃에게 아디다스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게다가 처음 시도되는 일이었고요. 2014년 월드컵 기간에 넥슨을 만난 것은 신의 한 수였어요."
넥슨 아레나라는 공간은 그렇게 스포츠와 게임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 장소이기에 박준호 부장에게 넥슨 아레나는 아직도 고마운 존재입니다.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시상자로 매 시즌 참석할 때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현장에 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첫 만남의 강렬함은 아디다스와 e스포츠가 3년 동안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현장 열기가 더욱 뜨거워 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시즌도 함께 해야겠다는 박준호 부장의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준 듯 보입니다.
◆e스포츠 마케팅의 효과
e스포츠가 외형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긴 하지만 후원 기업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스포츠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시절 수많은 기업들이 투자에 나섰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난 뒤 투자한 만큼 눈에 보이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죠. 지금은 티켓 유료 판매, 개인방송 등 다양한 수익권이 생겨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기업이 쉽게 뛰어들지는 못하고 있죠.
그렇다면 아디다스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놀랍게도 아디다스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분명하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홍보효과뿐만 아니라 직접 구매로 이어지는 마케팅 효과가 있기에 지속적인 후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게임과 함께 하는 마케팅이 직접적인 구매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지금까지는 ‘매우 만족’하고 있는 수준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게임과 어떤 식으로 프로모션을 기획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겠지만 아디다스와 피파온라인3의 인연은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디다스와 피파온라인3처럼 서로 윈윈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기업들이 e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e스포츠가 ‘이미지’만으로 후원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아디다스의 사례는 e스포츠 산업과 e스포츠에 관심 있는 기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과 스포츠, 그 경계에서
사실 아디다스가 처음부터 e스포츠를 긍정적인 눈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와 게임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산업입니다. 학업이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보낼 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게임과 스포츠는 소비하는 연령대가 비슷한 경쟁상대였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게임과 스포츠는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산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디다스는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후원에 대해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마케팅 효과는 누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행선일 수밖에 없는 이런 고민에 해답을 준 것은 게임을 즐기는 또다른 문화인 e스포츠였습니다. 박준호 부장은 피파온라인3 리그 현장을 방문하고 난 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해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고 하죠. e스포츠 현장에 가보고 깜짝 놀랐어요. 스포츠 현장 못지 않은 열기와 응원 문화 그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선수들과 잠깐 이야기를 해보니 80%가 넘는 선수들이 축구를 직접 즐기는 것을 보고 걱정이 조금은 사라졌어요."
아직까지 게임으로 치러지는 e스포츠가 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게임을 하지 못하게 했던 예전과는 달리 현재 30대 부모들은 게임을 즐기며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기게 하고 있죠. 이 사실만으로도 앞으로 10년 후 게임의 위상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시간을 정해 게임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게임을 하며 자랐던 세대들이 무조건 규제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요즘은 게임이 필수더라고요. 그렇다면 스포츠도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해야겠죠. 게임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디다스가 언제까지 e스포츠와 함께 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 아디다스는 e스포츠와 게임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스포츠 기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10년 후 아디다스와의 인연이 게임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됐을 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은 그저 e스포츠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디다스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고 아껴 주셨던 것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아디다스의 행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