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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기획] '10년차 감독' kt 이지훈이 말하는 e스포츠 지도자

[창간 9주년 기획] '10년차 감독' kt 이지훈이 말하는 e스포츠 지도자
프로게이머의 생명은 짧다. 워낙 어린 나이에 시작하기 때문에 10년 넘는 경력을 가진 선수들도 많지만 30대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직장인 또는 다른 프로 스포츠 종목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처럼 오래도록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데일리e스포츠는 창간 9주년을 맞아 은퇴 이후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전직 프로게이머 출신자들을 만났다. 국가 고시를 봐서 공무원이 된 사례도 있었고 시스템 엔지니어, 보험 회사 지점장, 게임 회사 직원, 한국 e스포츠 협회 직원 등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들이 은퇴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직업은 아무래도 지도자일 것이다. 협회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은퇴 후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감독이나 코치 등 코칭 스태프였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동안 얻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고 계속 업계에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데일리e스포츠는 은퇴 기획의 마지막으로, 현역 감독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지휘봉을 잡고 있는 kt 롤스터 이지훈 감독을 만나 감독으로서의 희로애락과 갖춰야 하는 소양, 비전 등을 들었다.

Q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이 한창인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다.
A 최근에 SK텔레콤 T1에 이어 락스 타이거즈에게 연달아 역전패를 당하면서 선수단 모두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연패도 문제이지만 다 이긴 경기를 졌다는 것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있다. 리프트 라이벌스 출전 기간 동안에 정확한 원인 파악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래도 e스포츠계의 가장 큰 고민인 은퇴 후 선수들의 진로와 관련된 인터뷰라고 해서 응했다.

[창간 9주년 기획] '10년차 감독' kt 이지훈이 말하는 e스포츠 지도자

Q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패배를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나.
A 2008년 3월에 수석 코치로 발령을 받았고 8월부터 사령탑이라는 중책을 이어받았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1)가 아니라 피파로 선수 생활을 했기에 코치를 거치면서 적응했고 여러 코치들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kt는 스타1 시절 다른 어떤 팀보다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프로리그에서 연속 우승도 했지만 이영호 원맨팀이라는 평가가 계속 따라다녔고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으로 넘어왔을 때에는 서머에만 강하다는 인식도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패배는 충격적이다.

Q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지도자가 되기 전에 피파 선수로 뛰었을 때에는 코치라는 직종이 없었다. 그래도 혼자 엄청나게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A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시기다. 2000년대 초반에는 e스포츠가 막 싹을 틔우는 시간이었고 그 중에도 스타1이 인기였다. 피파에 신경 쓰는 팀은 많지 않았다. 피파는 1대1 게임이었고 팀에 한두 명 정도밖에 인원이 없어서 코치까지 배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Q 선수 생활을 그만 두고 군에 다녀온 뒤에 다시 kt에 들어온 이유가 있나. 또 감독을 맡으라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A kt 롤스터의 전신인 KTF 매직엔스 때 사무국 인턴으로 들어왔는데 당시 팀에 코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사무국이 아니라 지도자를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했고 내 전공이 체육교육학이기도 해서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내가 피파 종목의 선수를 했기에 스타1을 모를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가 있기도 했지만 국민 게임이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e스포츠 지도자는 게임에 대한 전문 지식도 중요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스타1, 스페셜포스,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세 가지 종목으로 팀을 이끌었다. 세 종목 모두 한 번 이상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의 지도자와 e스포츠 지도자는 무엇이 다른가.
A e스포츠 지도자는 여러 종목을 다뤄야 한다는 숙명을 갖고 있다. 스포츠의 경우 해당 종목이 부침을 겪을 수는 있지만 사라진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e스포츠는 게임의 인기에 따라 수명이 발생한다. 내가 피파 선수로 뛰었지만 코치 생활을 스타1으로 했고 감독이 되고 나서는 스타1과 스페셜포스를 병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6년째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종목의 운명이 존재하는 e스포츠 업계에서 지도자로 오래 활동하다 보면 여러 종목을 접할 수밖에 없다.

이영호의 경기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 이지훈 감독(오른쪽).
이영호의 경기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 이지훈 감독(오른쪽).

Q 스타1 시절에 kt는 이영호 원맨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영호라는 S급 선수의 컨디션이 팀의 성적에 직결될텐데 어떻게 관리했나.
A 당시 우리 팀에는 두 가지 미션이 있었다. 이영호의 기량을 유지시키는 것과 이영호를 뒷받침하고 나아가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이영호 관리는 김윤환 코치가 전담해서 맡았다. 천재성이 있는 테란 선수였지만 선수로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던 김윤환이 이영호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특별 관리했다. 새로운 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은 강도경 코치가 주도했다. 김대엽과 우정호 등이 신인일 때 가능성을 확인했고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쳤다.

Q 세 종목의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차이점이 있을 것 같다. 선수 육성 차원에서 각 종목의 특색이 있나.
A 스타1은 선수들을 오래 봐야 한다. 드래프트, 연습생 등 선수를 뽑는 공식 루트가 있긴 했지만 완성된 선수를 프로게이머로 뽑는 방식은 아니다. 내부 평가 과정을 거치고 프로리그나 개인리그에서 이길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1대1 게임이기 때문에 기량을 끌어 올리는 것은 쉽지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기까지는 쉽지 않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솔로 랭크라는 지표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능력을 알아보기가 쉽다. 한국 서버에서 챌린저 티어라고 하면 어떤 팀에 들어가도 실력은 검증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하나의 팀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투에 있어 호흡이 중요하고 운영 과정상 발생하는 희생도 필요하다. 특히 밴픽이라는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원하는 챔피언을 고르지 못하고 희생해야 하는데 솔로 랭크에서 높은 점수를 가진 선수일수록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 코칭 스태프는 선수들의 인성을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게임단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은 기량 면에서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성은 꾸준히 연마해야 하고 팀에 맞는 방식으로 트레이닝이 되어야 한다.

올킬하고 들어오는 주성욱(오른쪽)을 맞이하고 있는 이지훈 감독.
올킬하고 들어오는 주성욱(오른쪽)을 맞이하고 있는 이지훈 감독.

Q e스포츠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있나.
A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하나의 게임에서 일가를 이룬 선수라면 더욱 좋다. 종목이 바뀌더라도 게임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운영 원칙은 비슷하기 때문에 금세 적응할 수 있다.

게임 실력 이외에도 갖춰야 할 것이 있다. 역지사지의 자세다. 지도자는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무슨 생각으로 이 플레이를 했는지 위치를 바꿔서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 지도자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꾸짖거나 플레이를 강요하면 선수나 지도자 모두 성장하기 어렵다. 특히 팀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또 한 가지는 지도자가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도자는 지도를 하는 사람이지 직접 경기를 뛰는 사람이 아니다. 게임은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승패가 결정되는 것도 선수들에 의해서다. 지도자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선수들이 지면 못했다, 실력 없다고 평가될 수도 있고 지도자가 제대로 포인트를 잡아주지 못했어도 선수들이 이기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지도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기 플랜을 짜서 실천하면서 좋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긴 안목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Q 팀을 운영하고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있어 장기적인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사무국의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다. 코칭 스태프와 사무국의 관계는 어때야 하나.
A 팀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좋을 때보다 좋지 않을 때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팀에 많은 투자를 했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1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원하는 대로 성적이 나온다면 문제가 없지만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원인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팀의 케미스트리가 깨지기도 한다. 이럴 때 코칭 스태프는 사무국을 이해시켜야 한다. 원인 분석을 미리 내놓고 개선 방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사무국이 직접 선수들에게서 원인을 찾게 만든다면 코칭 스태프가 역할을 잘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코칭 스태프는 선수들과 사무국의 가교이자 우산이 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무국과 코칭 스태프가 시즌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다. 필요한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지원을 받고 그에 따른 성적을 내고 다음 시즌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창간 9주년 기획] '10년차 감독' kt 이지훈이 말하는 e스포츠 지도자

Q 오래도록 감독을 맡으면서 기억에 남는 선수들이 있을 것 같다.
A 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데뷔 초부터 S급 활약을 했던 선수들보다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목표를 잃지 않고 노력해서 정상에 선 선수들이 생각이 난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김대엽이 대표적이다. 연습생으로 뽑혔을 때 '과연 이 선수가 2년 이상 버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성실하게 훈련하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코치들과 이야기하면서 프로리그에서 우리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됐고 이제는 팀을 떠났지만 개인 리그에서도 우승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스코어' 고동빈을 꼽고 싶다. 선수단 변화가 정말 많았던 우리 팀에서 창단 멤버로 지금까지 뛰고 있어서 뽑은 것은 아니다. 6년 내내 가장 먼저 연습실에 나와서 훈련하고 동료들이 바뀔 때마다 먼저 나서서 커뮤니케이션하며 동화시키려 하는 자세가 멋지다. 또 원거리 딜러로 우리 팀에 들어왔다가 우여곡절 끝에 정글러로 변신했고 굴곡 없는 플레이로 팀을 지켜주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Q e스포츠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앞서 이야기한 역지사지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생활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다고 해서 다 봐주라는 뜻이 아니다. 선수들을 이끌어가야 할 방향을 갖고 있는 지도자라면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무엇이 최선이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e스포츠는 지도자가 최고의 플레이를 직접 보여줄 수는 없다. 선수로 뛰고 있는 사람이 퍼포먼스 면에서는 현 시점에서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끌어가야 하는가. 지도자가 선수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방법은 대화다. 진실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선수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마음을 움직인다면 팀이 원하는대로, 지도자가 원하는대로 선수들을 끌어갈 수 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가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한계를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슈퍼 플레이를 밥 먹듯 하던 사람의 눈에는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가 성에 차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한 지네딘 지단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점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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