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병이 생긴 것을 알게 됐을 때,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욱이 그 병이 '암'이라면 말이다. 이재민 코치 또한 지방육종암의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크게 당황했다. 당장의 은퇴부터 몸 상태와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어 놨다. 혼란스런 와중에 이재민 코치는 당장 해야될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반 년간 항암 치료를 받았다.
"다신 겪고 싶지 않다"는 한 마디로 정리되는 인고의 시간. 끝끝내 버텨낸 이재민 코치는 당시 콩두 몬스터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채우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코치로 복귀했다. 하지만 암은 쉽게 떠나지 않았고, 재발과 치료가 몇 번씩이나 반복됐다.
이재민 코치는 재발 치료 또한 꿋꿋이 이겨냈다. 그리고 코치로서의 자질을 발휘하며 훨훨 날았다. 팀을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2018 스프링에 승격시킨 것이다. 이재민 코치의 발을 붙잡고 늘어졌던 병마 또한 꿈과 비상을 막을 순 없었다.
암을 이겨내고 LoL 무대에, 그리고 롤챔스에 돌아온 이재민 코치. 그의 힘들었던 시간과 힘이 넘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신 겪고 싶지 않은" 항암 치료
나진 e엠파이어에서 원거리 딜러로 활동하던 '제파' 이재민 코치는 어느날 몸에 볼록 튀어나온 혹을 발견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하루 이틀, 병원을 찾았더니 "대학 병원으로 가봐야겠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여러차례 검사를 마친 그의 병명은 지방육종암. 이재민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암에 의도치 않은 은퇴를 맞아야 했다.
"착잡했죠. 치료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쉬어야 하니까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은 괜찮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은 몸 상태가 최선이니까 치료에 집중했죠."
"암마다 5년 이내의 생존율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항암 치료 받기 전에 제가 들었던 생존율은 40%대였어요. '내가 반 이상의 확률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에 여러번 재발했을 때도 싱숭생숭했죠. 항암 치료를 힘들게 받았는데도 계속 재발하니 지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우울한 채로 지냈죠."
이재민 코치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말로 항암 치료의 고통을 표현했다. 실제로 그에게서 들은 투병 생활은 예상보다 고된 것이었다.
"지방육종암은 전용 항암제가 따로 없어서 가장 강한 것을 맞는다고 들었어요. 제가 맨 처음 항암 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굉장히 긍정적이었거든요. '항암 치료가 힘들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일지 기대된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한 번 해보니 생각이 확 바뀌더라고요."
"처음 일주일 동안은 하루에 20시간을 잤어요. 깨있기도 힘들었거든요. 조금 상태가 나아졌을 땐 입맛이 없어서 음식을 못 먹었어요. 2주 정도 밥을 잘 못 먹은 것 같아요. 퇴원하고 집에 누워 있다가 몸 상태가 나빠지면 수혈 받으러 가야하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고통의 시간을 감내한 이재민은 콩두의 코치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다만 활동에 여러차례 제동이 걸렸다. 암의 재발이었다.
◆잦은 재발, 고맙고도 미안했던 콩두
"의지와 상관없이 프로 생활을 그만둬서 아쉬웠다"는 이재민 코치는 e스포츠로의 복귀를 희망했다. 선수로 복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고, 코치는 가능할 것 같았다. 이는 프로 게이머로 활동할 때도 꿈꿔온 일이었다.
"당시 콩두에 계셨던 채우철 감독님과 종종 연락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코치 얘기가 나오기도 했었고요. 저 스스로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에 욕심내고 있었죠."
"코치가 되기로 마음 먹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처음이고,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잘 해낼 수 있을까'였어요. 다행히 선수 때부터 경기를 보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적응이 어렵진 않더라고요."
코치로 올랐던 첫 무대에 대해 이재민 코치는 "머리가 새하얘졌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실수도 하고, 채우철 감독의 도움도 받고, 이재민 코치는 점차 적응해 나갔지만 머지않아 다시 무대를 떠나게 됐다. LoL 챌린저스 코리아 2016 서머 결승을 앞두고 병이 재발된 것이다.
"암이 재발된 것을 확인했을 때가 에버8 위너스와의 플레이오프를 하기 조금 전이었어요. 팀 차원에서 너무 중요한 시기잖아요. 일단 에버8을 이기고 결승, 승강전을 확정 짓잔 생각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렀어요. 이후에 치료를 받았죠. 이전에도 몇 차례 재발됐을 땐 일주일 내외로 퇴원했거든요.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수술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한 달 가까이 입원해 있었어요. 결승전을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했죠."
병원에 노트북을 가져가서 스크림이라도 돌려볼까 생각했지만 기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까 피드백도 삼켰다. 그리고 이재민 코치는 롤챔스 2017 스프링 승강전에서 부스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온 힘을 쏟아낸 승강전. 이재민 코치는 "당시에 승격해서 다행"이라며 마른 침을 삼켰다.
◆암을 이겨낸 그가 2018년에 꾸는 꿈
꼬박 1년이 걸렸다. 스프링 시즌 이후 강등의 수모를 겪었던 콩두는 롤챔스 2018 스프링 진출에 성공했다. 물론 이재민 코치의 공이 컸다.
"승격해서 좋기도 하지만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요. 다시 제대로 시작한다는 느낌.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중요하니까,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물론 아프지 않고요."
이재민 코치가 2018년에 꾸는 꿈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목표는 콩두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이재민 코치는 콩두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물론이고, 팀플레이가 좋아졌다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이상적인 목표는 롤챔스 2018 스프링 우승이죠. 현실적인 목표는 승강전을 벗어나는 것. 소박하게 욕심을 내자면 포스트시즌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모든 팀이 그렇듯이 저희도 롤드컵(LoL 월드 챔피언십)을 꿈꾸고 있죠. 저도 e스포츠에 뛰어든 김에 우승 한 번 해봐야 죠. 선수 때나 코치 때나 우승을 못 해봤으니 말이에요(웃음)"
호성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한 시즌을 탈없이 넘겨야 성적도 따라오는 것이니 말이다. 투병 샐활 동안 '건강이 최고다'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이재민 코치 또한 건강 유지를 간절히 바랐다.
"재발하지 말자. 재발 안 했으면 좋겠다.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가 없으니까 바랄 수 밖에 없죠. 제가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것 같진 않지만…. 건강해라! 재발하지 마라!"
다행히 이재민 코치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 오랫동안 재발되지 않은 것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롤챔스 2018 스프링 승강전을 앞두고 검사를 받았을 때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재민 코치가 조금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이재민 코치는 쉽게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암이라는 장벽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우뚝 섰다. 그런 이재민 코치의 앞을 가로 막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재민 코치가 이겨내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일까. 병마와 승리와 꿈을 쟁취한 그는 누구보다 강한 영웅이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