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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첫 해외 진출 지도자' 이인철 감독, 그가 말하는 동남아와 와일드카드

[피플] '첫 해외 진출 지도자' 이인철 감독, 그가 말하는 동남아와 와일드카드
조금은 어색한 이름과 낯선 얼굴이다. 이인철 감독은 쭈뼛한 얼굴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텐데'라고 웃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5년이 지났다. 이인철 감독은 한국에 리그 오브 레전드가 자리 잡기 시작한 2012년, 제닉스 스톰을 창단하고 해설자 등으로 활동하다 훌쩍 해외로 거취를 옮겼다. 베트남에서 3년, 중국에서 1년. 꽤 오랜 기간 해외에서 머물렀다.

이인철 감독은 동남아 지역에서 LoL을 퍼블리싱하는 가레나에서 e스포츠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각국의 선수 및 코치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고. 지금은 해체된 사이공 조커스의 감독을 겸하기도 했다.

해외, 그것도 동남아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이인철 감독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 놓았다. '백지 상태'였다는 동남아 지역의 초창기부터 성장, 미래 등이다. 최근 2년 간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선전하고 있는 와일드카드 지역의 전망도 들을 수 있었다. 이인철 감독은 확실하게 "격차는 좁혀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약자로 평가됐던 동남아 지역.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뒤를 좇아오고 있는 복병. 이인철 감독과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이제는 숙지해야 할 동남아와 와일드카드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오랜만에 만나는 팬들, 낯선 팬들이 꽤 많을 것 같다. 자기 소개를 하자면.
베트남 LoL팀 사이공 조커스에서 활동했었다. 해외를 전전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 팀을 기다리고 있는 이인철이다.

Q 그간의 활동을 얘기해줄 수 있나.
와일드카드 지역, 그 중 베트남에서 3년 가까이 있었다. 동남아 전체 지역에 LoL을 퍼블리싱하는 가레나에서 e스포츠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며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폴, 말레이시아 쪽에서 선수, 코치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사이공 조커스 감독을 겸직했다. 사이공 조커스는 영 제너레이션(이하 YG), 기가바이트 마린즈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팀이다. 현재 YG에 소속돼 있는 선수들은 사이공 조커스의 유스 팀에 있던 선수들이고. 사이공 조커스에서 데뷔한 선수들이 기가바이트 마린즈에서 여럿 활동했다. 그 이후에는 1년 간 중국 2부 리그 팀에 있었다.
[피플] '첫 해외 진출 지도자' 이인철 감독, 그가 말하는 동남아와 와일드카드

Q 해외에 진출한 첫 번째 LoL 지도자다. 당시 어떤 판단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나.
팀 자체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나 또한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지탱하기가 힘들어서 이직을 결정했다. 원래는 해외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현재 가레나에 e스포츠 책임자로 있는 '다비치'라는 친구의 제의가 있었다.

친구의 권유로 베트남으로 향했고, 그 뒤로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한 번에 결정됐다. 나도 회사가 마음에 들었고, 그 곳에서도 나를 필요로 했다. 한국에서 힘든 일이 있기도 했고, 나를 채용해줄 만한 곳도 없을 것 같아 자리를 잡았다.

Q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선택이라기 보단 흐름에 넘어갔다. 나쁘진 않았다. 3년 간 팀을 교육하면서 한국에선 하기 힘든 경험을 했다. 한 지역 전체를 보면서 팀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경험이지 않나. 사이공 조커스에만 집중했으면 선수의 이탈, 영입에 민감했을텐데 리그 전체를 보면서 운영하니까 느낌이 달랐다. 또 베트남 리그가 단단해져서 인정받고, 가르친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다.

Q 소통의 문제는 없었나.
나는 어느 정도 영어를 한다. 그래서 상사랑 얘기할 때는 영어로 하는데, 선수들은 베트남어를 사용하니 통역이 필요했다. 말을 쉽게 하고, 반복하고, 통역과 같이 잘 맞추면서 극복하는 수 밖에 없다. 지원도 많이 받았다. 내가 할 일이 많다보니 필요할 때 통역이 2명씩 붙기도 했다. 사실 언어 장벽보다 높은 것은 문화의 벽이었다. '그러면 안 되지'라고 하면 '왜'라는 질문이 붙는 것들. 서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Q 처음 이적했을 때 본 베트남의 수준이나 환경은 어땠나.
한국도 자리 잡지 못한 시기였는데 당연히 베트남은 더했다. 내가 이적했을 때 한창 게이밍 하우스를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면 되냐고 물어보고, 난 이런 것들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가자마자 게이밍 하우스 공사를 했고, 체계적으로 시간 분배와 연습 스케줄을 잡았다.

가레나 프리미어 리그(GPL)는 다수의 리그가 참가하는 연합 형태인데, 내가 처음 갔을 때 베트남 리그는 싱가폴, 필리핀에 밀리고 있었다. 싱가폴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우리가 밀리는 것 같다,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내가 '5미드로 가라'고 지시했다. 선수들에게 공격적으로 무언가를 해서 움직이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와일드카드 지역의 약팀들은 수비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다가 진다. 그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선수들에게 두 세 가지 정도를 강조했는데, 우선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 직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선수들을 조금 혼내면서 팀플레이를 강조하기도 했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동남아에선 내가 '악마'로 통했다.
[피플] '첫 해외 진출 지도자' 이인철 감독, 그가 말하는 동남아와 와일드카드

Q 지도함에 있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기술과 멘탈이 있다고 볼 때, 나는 멘탈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정신이 없으면 기술이 실현되지 않고, 선수들이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와일드카드 지역 팀들은 좋은 성적을 거둔 뒤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라서 멍하니 하던대로만 하다가 승리의 맛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 맛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재능이 있었던 선수는 'Optimus' 트란반퀑이다. 베트남이 의외로 미드 라이너가 귀하다. 좋은 정글러는 많은데 미드 라이너는 찾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Optimus'는 굉장히 좋은 자원이었다. 롤드컵 2017에서 기가바이트 마린즈가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데는 'Optimus'의 공이 컸다. 재능도 뛰어나고 노력도 많이 하고, 포부도 큰 선수다.

Q 베트남 현지의 LoL 인기도 궁금하다.
베트남은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시청자를 가지고 있다. 전세계에서 랭크 게임을 두 번째로 많이 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베트남 인구가 그만큼 많기도 하지만 그 중 많은 사람들이 LoL을 즐긴다. 축구와 더불어 국민 스포츠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상당히 큰 시장이고, 노력을 하다보면 성과가 나올 곳이다. 이제 노력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 같더라. 올라올 때가 된 것 같다.

Q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없나.
GPL 2016 서머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터키에서 IWC 대회가 있었는데 베트남에서 터키로 가는 비자가 안 나오더라. 왜 안나오냐고 물어보니 터키 내전 때문에 터키에서 베트남으로 오는 라인이 끊겼다고 했다. 터키 외교부와 대사관에서도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하고. 공교롭게도 가레나 지역에서 비자가 필요한 팀은 베트남 뿐이었다. 그래서 그 때, 방콕 타이탄즈가 대신 출전했다. 밤중에 선수들을 보냈는데 새벽에 기사를 통해 베트남 외무부에서 외교관 비자를 발급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늦은 것을 어쩌나. 그 때 정신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팀을 3년 간 맡으면서 가장 좋은 전력을 갖췄을 때인데 이기고도 대회에 나가지 못해 굉장히 억울했다.

그리고 베트남 선수들은 정말 쌀국수를 안 먹으면 병에 걸리는 것 같다. GPL은 동남아에 있는 선수들이 한 지역에 모여 경기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베트남 선수들은 다른 지역에 나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 반대로 베트남에서 경기를 하면 다른 지역 선수들이 음식 때문에 고통을 호소한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되게 힘들어하더라. 사실 나도 토종 베트남 음식은 아직 잘 못 먹는다.

Q 베트남 및 동남아 지역에서 우리가 가져올 만한 시스템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실 베트남 지역에는 없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을 생각해보면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경기 분석 시스템. 한국에서 걸음마 수준으로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들이 중국에선 돈을 주면 엄청 자세하게 얻을 수 있다. 곧 데이터 산업이 중시되는 시기가 올 것 같은데 한국의 경쟁력이 뒤처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좋은 선수들과 코치들이 노력해서 성적을 내고 있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선 분명하게 밀리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되돌아 볼 때가 된 것 같다.

Q 최근 와일드카드 지역이 크게 성장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난 롤드컵에서 활약했던 ANX(알버스 녹스 루나)는 굉장히 유쾌한 팀이었다. 그 선수들은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다. 너무 즐겁고 좋다고. 그런 자세가 격차를 줄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미국, 유럽, 와일드카드 지역의 기술적인 부분은 비슷하다고 본다. 미국은 시스템이 너무 과해지고 있는 추세고. TSM(솔로미드)은 코치가 7-8명이나 된다. 시스템이 과해지니까 선수들이 무엇을 할 수가 없다. 유럽은 마켓이 줄어들고 있고. 실력이 비슷한 상황에서 심리적 격차는 크게 작용한다. 와일드카드 지역 선수들은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부담감 없이 경기에 임한다. '페이커' 이상혁이 지나가는 것을 신기해 하고, 신나게 경기하고 즐긴다. 그리고 미련없이, 후회없이 하자는 마인드가 경기에서 통한다. 현재 와일드카드 지역의 성장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피플] '첫 해외 진출 지도자' 이인철 감독, 그가 말하는 동남아와 와일드카드

Q 라이엇 게임즈가 별도의 와일드카드 지역 선발전없이 플레이-인 스테이지 자격을 부여했다. 이 점이 지역 성장에 도움이 될까.
사실 선수들은 IWCI(와일드카드 지역 선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해외 지역에서 얘기하는 '롤드컵에 가고 싶어'는 플레이-인 스테이지가 아니라 16강 진출이다. 이런 심리적인 부분 보다는 오히려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된다. 기존 IWCI는 체력적 부담이 컸다. 나같은 경우에도 베트남에서 지역 리그 우승을 하고, 싱가폴에 가서 GPL 우승을 하고, IWCI를 위해 멕시코로 가는 고된 일정을 겪었다. 그 지역 팀들이 잘할래야 잘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경기하는데 메타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어디있겠나. 플레이-인 스테이지 신설로 연습할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를 한 바퀴 돌 시간을 줄여줬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Q 와일드카드 지역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나를 가지고 뭉뚱그려 얘기하기엔 지역별로 특색이 달라서 곤란하다. 라이엇 게임즈는 여러 나라를 묶어 하나의 리그로 크게 뭉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GPL도 크게 뭉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실제로 합칠 수 없는 지정학적 문제가 있다. 우선 GPL 지역도 들여다 보면 나라별로 소득 격차가 굉장히 심하다. 그렇다보니 상금, 선수들의 대우를 책정하기가 어렵다. 이 것을 생각하면 LCS나 LCK처럼 분리주의적으로 가야하는 셈인데, 라이엇 게임즈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일단 라이엇 게임즈는 지역 전체를 바라보고 리그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물론 하고 있을텐데 더 말이다. 솔직히 지역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어려운 일이다.

Q 와일드카드 지역과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까.
기본적으로 맨 앞에서 개척하는 것이 어렵지, 뒤에서 좇아가는 것은 쉽다. 격차는 리그가 지속될수록 좁혀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한국 선수들이 가진 메리트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Q 이후 활동 계획은.
해외에 나가서 생활한 지 5년이 됐다. 그래서 한국에 있고 싶단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럴 여건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 한국에선 쓸모 없을 수도 있으니까. 개인적인 바람과 현실의 차이는 조금 있는 것 같다(웃음). 그럼에도 한국에 남아 LoL 초창기 때처럼, 소통이 원활한 친구들과 쌓아온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나는 뒤에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앞에 나서서 무엇을 한 것도 아니고, 나처럼 뒤에서 노력하는 사람은 또 많다. 스스로 잘났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거취도 정해지지 않아 포부를 얘기하기도 어색하고.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알아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뒤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여러분들이 재밌게 보고 계신 e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꿀잼 동남아'의 배경에도 한국인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존재한다. 어쨌든 한국에서 가능하면 자리를 잡고 싶다는 것이 다음 시즌의 목표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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